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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08월18일 07시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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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존댓말의 권력관계
존대법이 존재하지 않으면 하대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병기(영남대, 편집위원) byungkee@ynu.ac.kr

몇 달 전 조선일보의 한 칼럼에서 엉터리 존대법에 대한 지적을 봤다. 그중에서도 문장의 주체를 높이는 주체 존대의 오류에 대한 지적은 매우 날카로웠다. 주로 물건을 살 때나 주문할 때 혹은 안내 데스크에서 이 오류를 자주 접한다. “커피는 5,000원이세요.” “화장실은 왼쪽이세요.” 커피와 화장실에까지 존댓말을 쓰는 꼴이다. ‘커피는 5,000원이에요.’와 ‘화장실은 왼쪽이에요.’가 맞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국어학자에 따르면, 위와 같은 존대법은 오류가 아니라 확장이라는 것이다. 사실 ‘커피는 5,000원이오.’라거나 ‘커피는 5,000원이에요.’라고 할 때보다 ‘커피는 5,000원이세요.’라고 들을 때 손님들은 더 기분이 좋은 게 사실이다. 위의 예에서 ‘이세요’는 주체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청자를 높인다는 것이다. 문법적으로도 이미 비격식체 존댓말인 ‘에요’가 사용되었다. ‘에요’는 ‘해요’체 자리에 쓰이는 ‘해’체의 존대다. ‘이세요’는 이 존댓말에 ‘시’를 붙여 극존대로 사용된 경우일 뿐이다.

잘못된 존대가 일상화되어 우리의 감각까지 변했다고 한다면, 그것이 새로운 맞춤법이나 존대법으로 정착할 수도 있다. 과거의 문법을 고집하기보다 변화된 언어에 문법을 맞추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 존대법이 귀에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다. 두 입장이 모두 옳을 수도 있고 모두 틀릴 수도 있다. 여기서는 두 입장 중 어느 것이 잘못됐다는 판단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존대법의 오류든 확장이든 왜 이러한 언어 관행이 생겨났는가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보고자 한다.

존댓말의 발달은 우리 어법의 특징이면서도 유교적 가부장제에 의해 더 심화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도입된 후 존대의 대상은 윗사람이나 윗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돈을 벌게 해주는 손님들에게 확장되었다. 특히 손님들에게는 위와 같이 극존칭으로까지 대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고객분’, ‘고객님’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고객’이라는 단어 자체가 ‘손님’이라는 뜻의 한자어로 ‘손’의 높임말이다. 거기에 ‘분’이라는 말을 덧붙여 마치 ‘선생님분’, ‘부친님’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이중 존대가 된 것이다. 오류가 아니라 확장이라고 해도 특히 서비스 업계에서 이러한 현상이 심화된 것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팽창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커지고 원자재값보다 선전이나 판촉을 통한 부가가치의 상승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전통적 가부장질서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의 혁명’으로 움튼 민주화가 억압된 1980년대는 군부독재가 재창출되었지만 이미 민주화의 거센 흐름이 수면 아래에서 숨을 고르고 있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서도 여성의 지위에 대한 자각이 깊어졌다.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라는 요구가 생겨났고, 이것은 이른바 배운 가정과 중산층 가정의 표본이 되었다. 그리고 상류층 가정의 경우에는 남편이 부인에게 ‘하시오’보다 한 단계 낮은 존대법인 ‘하오’체를 쓰는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보다 일상생활을 더 많이 반영하는 TV 드라마에서 이러한 현상은 다소 약화되기는 했어도 아직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그 존대의 대상이 되는 여성은 조선 시대처럼 어머니와 ‘정실’부인에게만 한정된다. 이것은 외국 영화를 더빙한 경우를 보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알파벳 문화권에서는 우리와 같은 존대법이 없다. 있어도 지위가 높거나 편한 관계가 아닐 때에 한정된다. 그런데 우리말로 더빙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단란하거나 교양 있는 가정의 경우 남편은 부인에게 낮은 단계의 존대법인 ‘하오’체나 하대법인 ‘해라’체를 쓰고 부인은 남편에게 깍듯이 존대를 한다. 반면 이른바 막돼먹거나 무지한 가정의 경우에 부부가 서로 하대법인 반말을 쓴다. 게다가 연애 시절 서로 존대를 하다가 하룻밤을 같이 지낸 다음 날 아침에는 영락없이 남자는 여자에게 반말을 쓰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여전히 존댓말을 한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그러한가? 일상생활에서 부부는 서로 반말을 쓰며 연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현실의 모습과 상반된 영상세계의 언어 관행을 아무런 괴리감 없이 받아들인다. 현실과 달리 우리의 정신은 여전히 가부장적 질서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 사용의 변화가 문법을 바꾸듯이 현실 생활의 변화가 언젠가는 정신세계를 바꿀 것이다. 그러나 모순의 인식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촉진하고 그 방향을 올바로 잡아나가도록 한다.

존댓말이 꼭 필요한가? 존대법의 다른 표현은 하대법이다. 물론 상호 존대의 관계와 상호 하대의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상호 하대를 가정하고 상호 하대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상호 존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반대로 존대의 대상이나 존대법이 존재하지 않으면 반대 개념인 하대의 대상이나 하대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사회에서 적어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함부로 반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여전히 연상이나 상급자가 연하나 하급자에게 반말을 쓴다. 가정에서도 자식이 부모에게 존댓말을 쓰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존댓말을 쓰지는 않는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반말을 쓰는 것은 인격 모독이지만 비공식인 자리에서는 친밀감의 표시가 된다. 그렇다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연하나 하급자는 연상이나 상급자에게 친밀하면 안 되는가?

모두 존대를 하거나 모두 하대를 하면 어떨까? 존대와 하대가 공존하는 상황에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상호 존대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상호 ‘하대’를 한다. 내 딸은 성인이 된 지금도 나에게 반말을 한다. 내 딸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서로 ‘하대’를 하는 우리가 상호 인격 모독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딸과 내가 서로 존댓말을 쓴다면 ‘미친 가정’이라거나 ‘콩가루 집안’이라고 욕할 것이다. 이제는 서로 반말을 쓰는 부모 자식 관계가 콩가루 집안이 아니라 서로 존대하는 부모 자식 관계가 콩가루 집안이 된다. 결국, 공식적인 관계든 비공식적인 관계든 상호 존대로 통일하기보다는 상호 하대로 통일하는 것이 옳다는 얘기다. 적어도 언어상 존대법에는 하향평준화가 궁극적으로 인격 모독 어법을 해소하는 길이다. 이때 ‘하대’는 더 이상 하대가 아니다. 존대가 없어짐으로써 하대도 없어지며 상호 존중만이 남을 것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지만, 그 사회의 지배질서와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따라서 기존 언어생활의 고집은 그 지배질서를 공고히 하는 반면, 기존 언어생활의 탈피는 기존 지배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하기도 한다. 물론 새로운 언어 습관이 새로운 지배질서나 또 다른 왜곡을 반영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억압적 지배질서를 반영하는 언어생활을 탈피하는 것이다.

정병기(영남대, 편집위원) byungkee@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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