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화제다. 97년을 떠올리게 하는 의상과 분위기도 관심을 끌지만, 이목의 중심은 단연 노래다. 요즘은 아이돌계의 삼엽충이라 불리는 H.O.T와 젝스키스로 대변되는 팬덤,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는 다양한 노래(양파의 <애송이의 사랑>, 이지훈의 <왜 하늘은> 등)가 복고 감수성을 만지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배경은 97년 당시 고등학생 또래의 시선과 이야기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97년은 IMF 경제위기 한파가 불던 때다. 이 덕분인지 10대는 97년 즈음해서 음악의 주 소비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팬클럽을 만들고 CD와 테잎 음반을 구매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하루하루 느끼는 3~40대는 더 이상 매력적인 음반 구매층이 아니다. 92년 서태지의 등장과 더불어 대중음악 주 소비세대로 떠올랐던 20대도 구직난, 학생운동의 급격한 몰락을 겪으며 한 발 밀려나긴 마찬가지.
이 세대에게 <태백산맥>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었고, 80년 광주는 교과서에서 만나는 이야기가 된다. 책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 보고, 듣고, 따라 하고 움직이는 것을 가깝게 느낀다. 97년 대통령선거에서 DJP연합, 권영길의 출마 등은 관심사가 아니다. 아쉽지만 97년 민주노총 총파업도 관심사가 아닌 건 마찬가지다.
드라마가 97년 이들에게 집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2012년 30대 초중반인 이들은 가까스로 경쟁에 승리해 정규직이 되었거나 정규직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비정규직 둘 중 하나다.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이 무슨 말을 했다’라고 연일 떠들어대는 언론과 올림픽의 쓰나미 속에서 공통의 쉼터인 과거에 대한 회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때 그 시절, 노래 한 곡을 들으면 그 시절 기억과 풍광이 떠오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므로. 18번을 묻고, 누구나 가슴에 묻은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 한 곡쯤은 있기에. 시가 가장 오래된 문학이 될 수 있었듯.
기술의 속도와 변화가 빨라질수록 동일세대 문화를 누리는 시기도 짧아진다. 지금은 486이 된 386, 87년 세대, 97년 세대, 2002세대 등. 아이러니하게 대중문화의 분기점은 주기적인 대통령선거와 마주한다. 92년 서태지의 등장, 97년 아이돌의 등장, 2002년 인터넷의 확산, 2007년 걸그룹의 확산. 필자만 그런지 몰라도 이쯤 되면 섭섭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서태지의 등장에는 주목해도 92년 대중문화를 누린 이들의 삶에는 관심을 별로 두지 않는다. 앞선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련의 멸망을 포함한 격변의 시기라서 그런 것인지. 모든 탓인 그 때문이겠느냐 만은, 정태춘의 노래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92년 장마, 종로에서> 中-가 우울한 92년을 노래한다.
호출하면 92년이 응답하지 않을 리는 없지 않은가. 92년 대중음악을 우리도 불러보자.
알고 보면 92년은 서태지 말고도 대중음악의 전설, 깨알 같은 재미가 동시에 공존한다. 당시 90년 스타일 드라마의 포문을 연 <질투>의 동명 주제곡은 큰 인기를 끈다.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내일은 사랑’의 주제곡 <장미의 미소>도 동시 인기를 누린다.
92년을 연 노래는 단연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다. 김현식은 이 노래가 수록된 앨범을 발매하기 전에 생을 떠난다. 암과 사투하며 부른 이 노래는 당시 그의 절절한 심정이 담겨 있다. 이 노래는 이후에도 리메이크가 많이 이뤄졌고, 오늘에도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지금은 40대 아저씨가 된 김건모와 신승훈도 있다. 이들은 아이돌과 조성모의 등장 이전까지 높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다. 신승훈은 2집에서 도입부에 베토벤의 가곡 <이히 리베 디히>를 삽입한 <보이지 않는 사랑>, <날 울리지마>를, 김건모는 데뷔앨범에서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첫인상>을 동시에 히트시킨다.
92년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환상 속의 그대>가 큰 파장을 가져오긴 했지만, 댄스곡이 주류는 아니었다. 인기를 끈 댄스곡은 92년 말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정도였다. 지금은 발라드 가수로만 생각되는 이현우가 데뷔곡 <꿈>에서 춤을 추긴 했지만, 발라드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그대 곁을 이제 떠나는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댈 사랑하기 때문이야’에서 진면목을 더 잘 보여준다.
‘내겐 더 많은 날이 있어 무슨 걱정 있을까 어제 힘들었던 순간들은 모두 지나간 것일 뿐’이라는 봄여름가을겨울의 <10년전의 일기를 꺼내어>나 김광석의 <나의 노래>‘아무도 뵈지 않는 암흑 속에서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은 꾸준히 사랑받는 노래다.
밴드가 아닌 록 보컬리스트들도 사랑받는데, 김종서 <대답 없는 너>, 신성우 <내일을 향해>, 이덕진 <내가 아는 한 가지>등이 있다. 이외에도 92년 노래 가운데는 오래도록 사랑받는 노래들이 많았다. 이승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피노키오 <사랑과 우정사이>, 예민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 이승환+오태호의 이오공감<한 사람을 위한 마음>, 유영석의 푸른하늘<자아도취>, 015B<아주오래된연인들> 등이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그동안 만화주제곡을 많이 불렀던 김국환의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 없지’<타타타>도 인기를 누렸다.
앞서 언급한 곡들만 해도 스무 곡이 넘는다. 가수는 아니지만 92년은 故 정은임 아나운서의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음악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내셔널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2003년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못한 한진중공업의 故 김주익 열사의 이야기 등 세상의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전했다.
톺아보니 92년의 대중음악도 꽤 호출할 거리가 많다고 해서 2012년의 씁쓸함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92년 대선의 민중후보 백기완과 2012년의 간극이다. 추억하고 그리기는 하지만 호출하지 못하는. 92년 발간된 김영하의 첫 작품 <무협 학생운동>의 냉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