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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이득재의 서재 (2)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이득재(대구가톨릭대, 편집위원) baxtin@daum.net

▲미하일 바흐찐 저, 2001년 이덕형 역, 아카넷
어쩌면 저런 상상력이 나올 수 있나, 감탄하며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 나오는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자신이 라블레였다면 주방이 이 세계이고, 태양은 그 아궁이라고 소리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누구인가? 그 주방에 잠시 초대받은 손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손님이 지금 안방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우리 같으면 그저 스치고 지나갔을 그 태양을 보고 아궁이를 떠올리다니 대단한 생태학적 상상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우주 전체가 주방이라니. 주방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음식을 만드는 곳이다. 그 주방이 우주 전체라면 이것은 우주에 걸쳐 물질의 풍요가 넘쳐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흐찐의 책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에는 풍요의 이미지들이 풍성하다.

바흐찐이 자기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프랑스의 작가가 그 유명한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풍요의 이미지다. 라블레가 이 소설을 쓰던 16세기는 아직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시장경제, 16세기나 그 이전의 풍요가 아니라 굶주림으로 사람을 쥐어짜고 있는 시장경제는 인류 역사로 따지면 그 기간은 우주의 티끌만큼도 되지 않는다. 목이 마른 가르강튀아도 거인 팡타그뤼엘도 넉넉히 먹여 살렸던 시장 경제 이전의 물질적 풍요는 전 세계를 장악한 다국적 기업들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    

바흐찐은 이 책에서 시장경제 이전의 시장을 연구한 칼 폴라니의 작업을 선취한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1944년에 나왔다면 바흐찐의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는 1940년 바흐찐의 학위논문 ,리얼리즘의 역사에서 라블레>라는 제목으로 1940년에 먼저 선을 보였다. 바흐찐이 이 책에서 선보인 것은 인간의 육체가 사유화되어 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오늘날 노동 과정은 음식과 분리된다. 노동의 대가가 전 민중에게 돌아갔던 16세기 이전과 달리 자본주의적인 시장경제에서 음식이나 물질은 노동과정의 최종단계로서 사유화된다. 시장에서 밑반찬이 화폐와 교환되는 세상은 라블레의 시대에 불가능했다. 음식과 노동 과정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음식과 노동 과정이 산호작용을 하던 시대와 달리 시장경제 아래에서는 노동 과정을 통한 음식의 공유가 아니라 음식의 사유화가 진행된다.

바흐찐은 이러한 상황을 인간의 육체를 빌어 설명한다. 인간의 육체 중 입, 코 등은 세상과 몸이 서로의 경계를 넘어 상호작용하는 기관이다. 몸은 입을 통해 세상을 꿀꺽 삼키고 코를 통해 세상을 빨아들인다. 인간의 신체 기관 중 유독 튀어나온 이 부분들은 몸이 세상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한다는 뜻이다. 세상이 몸과 하나가 되고 일치할 수 있는 것은 그 신체기관의 도드라짐 덕분이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도드라진 신체기관이 아니라(그로테스크한 육체가 아니라) 코와 입에 비해 푹 들어간, 그래서 그만큼 세상과 상호작용하기를 거부하는 얼굴과 다리를 매만지는데 여념이 없다. 원석을 찾아 다이아몬드 걸을 만들어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까지 있다. 바흐찐의 책에서 “물건은 물건 그 자체를 위해 이름이 불려지”지만 시장경제 하에서 인간의 육체는 교환가치의 대상이 된다. 원석은 교환가치 극대화를 위해 언제나 다이아몬드로 다듬어져야 할 대상일 뿐이다.

바흐찐에게 육체는 민중적이고 물질적이다. 적어도 시장경제 이전에 육체는 세상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노동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음식은 언제나 다른 육체와 공유해야 할 물질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육체는 사유화를 넘어 사적인 육체들의 세계화로 나가고 있다. 가정은 풍요로우나 바흐찐이 꿈꾼 민중들의 광장에 넘쳐나는 것은 굶주림 뿐이다.

이득재(대구가톨릭대, 편집위원) baxti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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