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주] : “‘병신’이라는 말은 뭇 장애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사용을 자제해 주세요.” 열에 차 무심코 내뱉은 말이 화근이었다.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기사를 읽고는 별 생각 없이 ‘병신같다’고 했더니, 누군가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무심코’란 그런 것 아닌가. 아무 거리낌 없이, 평소에 하던 대로. 그만큼 수시로 그들을 ‘아프게’했다는 말이 못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온갖 ‘년’과 ‘병신’들이 무엇 때문에 이토록 무심코 괴롭힘 당하는지를 찾아내는 일은 자연스레 기나긴 반성문으로 이어졌다.
정상-비정상의 담론과 장애인 차별
단순한 대조를 이루는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 억압과는 달리, ‘정상-비정상’ 기제의 장애인 차별은 실로 복합적인 면모를 띰과 동시에 꾸준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담론 질서를 구현해왔다. 여성과 남성의 성기, 성행위, 금기어 및 저주어 등과 같이 놓고 볼 때, 다소 표현의 개수 및 비속어의 생성이나 변모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이에 해당하는 비속어는 ‘바보, 천치, 멍청이, 푼수, 팔푼이’ 등의 정신적 장애를 비하하는 것과, ‘병신, 배냇병신, 반병신, 반실’등으로 나타나는 신체적 장애와 관련된 비속어가 주를 이룬다.
이 표현들은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 둘 모두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 우리 사회가 지닌 차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들 욕설은 여성과 관련된 비속어가 남성을 대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과는 달리, 정상인과 비정상인 모두에게 사용할 수 있으며, 모욕과 수치심을 유발하는 데서는 차이가 없다.
또한 장애인 관련 비속어도 가부장주의 성 담론과는 무관하지 않아서, ‘고자 좆 자랑하기, 씹을 준대도 못하는 병신 놈, 벌려 줘도 못하는 병신이다’등과 같은 표현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들은 성적 무능함을 신체적 장애와 연관 짓는 것으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권력적 우위에 위치한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성적 역할에서 무능한 대상을 비하하고 폄훼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요컨대 가부장주의의 핵심인 남성적 권력은 지극히 성기와 성적 능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기에, 여기서의 무능함은 또 다른 비하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정상-비정상의 분할과 배제는 우리 사회에 속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정상적인 것’을 추구하고, ‘비정상적인 것’을 배제하도록 유도한다.
그렇다면 장애인을 차별하는 정상-비정상의 기제는 시대 변화와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지닐까. 장애인 관련 비속어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또 점차로 민주화되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모를 거듭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여성비속어와는 달리, 순화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생성한 언어들에 또다시 정상-비정상의 권력이 기입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장애자, 장애우’와 같은 순화된 표현부터 ‘정신박약, 저능아, 무뇌아, 불구자’ 등의 어휘들도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 듣는 이에게 모욕감을 준다. 그러나 여성이나 남성과 관련된 비속어와는 달리, 이 표현들은 단순한 지시적 기능을 담당하기도 해 보다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담론의 변화란 단순히 언어의 변화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사회 속 개인들의 끊임없는 반동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배제를 넘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여성에의 억압과 장애인 차별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그 모습을 바꿔가며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대상을 끊임없이 비하하고, 억압하려는 시도는 다만 주체의 불안을 자인하는 것일 뿐이다. 꽃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것은 대상과 나의 분리된 관계를 결코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부름일 터다. 담론의 체계가 개인들을 제 아무리 묶어 둔다고 하더라도, 그 전략을 읽어내려는 각자의 시도와 반동이 존재하는 한,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눈짓’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