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1623년 6월 19일 프랑스 중부 지방의 클레르몽에서 세무법원장이었던 아버지 에티엔 파스칼과 어머니 앙투안네트 베공 사이에서 태어났다. 파스칼은 어릴 때부터 수학자, 법률가, 음악가였던 아버지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파스칼의 천재성은 그가 12세 되던 해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리를 증명했을 때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16세 때 발표한 ‘원추곡선론’은 수학사에 길이 남는 업적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아르키메데스 이래 최고의 수학 천재라는 말을 듣게 된다. 1643년 20세 되던 해에 파스칼은 컴퓨터의 시조인 계산기를 발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수학적-논리적 천재성을 자랑하던 파스칼은 23세 되던 해 처음으로 회심을 경험하게 된다. 부친을 치료하기 위해 그의 집에 머물던 두 명의 의사로부터 깊은 신앙적 감동을 받고 사람의 거듭남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파스칼은 ‘이성의 논리’만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데카르트를 비판하면서 인간의 ‘감성’과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독교 철학자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특히 1654년 11월 23일, 이른바 ‘불의 밤’에 일어난 신앙 체험 이후 파스칼은 철학자와 식자(識者)의 신이 아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말하자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다. 이날의 체험을 기록하여 파스칼은 평생 동안 옷깃에 몰래 보관하고 다녔다. ‘메모리알’이라고 불리는 이 날의 회상기에서 파스칼은 이렇게 쓰고 있다.
불
철학자와 식자의 신이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확신. 확신. 느낌. 기쁨.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과 너의 하나님.
너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리라.
세상을 잊고 하나님 외 모든 것을 잊음.
그분은 복음에서 가르친 길 외에는 발견되지 않는다.
사람의 영혼의 위대함.
의로운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습니다.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생각한 것들”이라는 뜻을 가진 파스칼의 <팡세Pensées>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파스칼이 그의 신앙을 변호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이야말로 참된 삶임을 보여주기 위해 쓴 책이다. 서른 아홉이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 하는 바람에 조각글을 모아 놓은 미완의 단편집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팡세>는 출판된 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인들이 애독하는 고전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팡세>에 나오는 주옥같은 잠언들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자연 가운데 가장 연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데 있다. 나무는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사실 인간은 자연 안에서 무엇인가? 무한에 비하면 무, 무에 비하면 전체, 무와 무한의 중간자.”
“누가 나를 이 세상에 생겨나게 했는지, 세계는 그리고 나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나는 만사에 대해서 끔찍한 무지 속에 있다. (...) 나는 내가 곧 죽으리라는 것을 알 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모르는 것은 이 피할 수 없는 죽음 그 자체이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것처럼 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나면 영원히 허무 속에, 아니면 성난 신의 손에 떨어지리라는 것뿐이다. 두 상태 중 어느 편에 영원히 갇히게 될지 모르는 가운데, 이것이 곧 결함과 불확실에 넘쳐 있는 나의 상태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기괴한 짐승인가? 얼마나 신기하며, 얼마나 혼돈스러우며 얼마나 모순 덩어리이며 또 얼마나 놀라운가? 만물의 심판자이면서 보잘것없는 더러운 지렁이. 진리의 보관자이자 불확실과 오류의 시궁창. 우주의 영광이자 쓰레기.”
“그러니 교만한 자여, 그대가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모순덩어리인지 깨달아라. 무력한 이성이여, 겸손하라. 미련한 본성아, 입을 다물라. 인간이 인간을 무한히 초월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대가 모르는 그대의 참된 처지가 무엇인지를 그대의 스승에게 배우라.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라.”
“자기의 비참을 모르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오만을 자아낸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비참을 아는 것은 절망을 불러일으킨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중간을 이룬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비참함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에서 이미 드러나듯이 파스칼은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을 요구한다. 사람에게는 ‘자기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파스칼의 생각에 따르면 사람은 양면성 내지 이중성을 본질로 하고 있다. 즉 사람은 비참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다.
비참하다는 것은 사람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지만 불행할 뿐이고, 진리를 추구하지만 거짓을 알 뿐이며, 선을 추구하지만 악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위대한 것은 자신이 이처럼 비참한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되고, 어떤 다른 존재보다도 위대하다. 파스칼의 말대로 인간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갈대에 불과하지만, 생각하는 갈대이기에 존엄한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 특히 젊은이들은 현실의 분주한 일상에 쫒긴 나머지, 삶의 의미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를 중단한지 오래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스칼의 <팡세>는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자기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할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