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주] 숨어서 보지 말고 소문내면서 만화 보자. 보면서 멘붕해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심오해도 괜찮아. 세미나 해도 좋아. 만화책도 책인걸~ 멘.붕.독.서
일본의 <주간 소년 매거진>에 연재되고 있고 한국어 단행본은 27권까지 나와 있는 <안녕, 절망선생>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있어서 굉장히 접하기 쉬운 작품이다. 내용은 제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듯 매일매일 절망하는 한 교사의 이야기이다. 날 아는 사람은 이 말에서 모두 날 떠올리지 않을까 싶어 이 작품을 세 번째 <멘붕독서>로 결정하는데 조금 부끄러웠다. 일단 나는 제쳐놓고 절망선생 이야기를 해보자.
매일을 자살을 시도하는 교사, 절망선생
‘비정상’인 선생님과 학생
주인공인 절망선생의 이름은 이토시키 노조무. 이름을 한자로 나란히 놓으면 ‘절망(絶望)’이라고 읽혀서 절망선생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로 노조무는 엄청나게 부정적인 성격이고 매일 자살을 시도하는 교사다. 나무만 보이면 줄을 꺼내 목을 맬 지경. 하지만 더 부정적인 건 그 자살도 늘 실패한다는 것. 마치 매일매일 ‘죽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들 같기도 하다. 우리는 시도하지 않지만 노조무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의 차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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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도 절망선생은 나무에 줄을 매달고 목을 매려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두둥! 한 소녀가 나타났다. 이름은 후우라 카후카. | | |
시작은 여느 날과 같았다. 그날도 절망선생은 나무에 줄을 매달고 목을 매려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두둥! 한 소녀가 나타났다. 이름은 후우라 카후카.
카후카는 절망선생을 나무에서 끌어 내리고 그의 자살을 ‘저지’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왜 나무에 매달려 있었을까? 설마 자살하려고 한 걸까? 잠시 고민한 카후카의 결론은 농구선수처럼 키가 커지고 싶어서 나무에 스스로를 매달았구나! 어린 시절 상처인 거 같으니 물어보지 말아야지. 이런 식이다. 즉, 카후카는 항상 대책 없이 긍정적이라서 문제인 사람이다.
심지어 카후카는 절망선생의 학급 학생으로 전학 오게 되는데, 이 반에는 카후카 말고도 절대 하교하지 않고 학교에서 사는 소녀, 이중인격을 지닌 소녀, 말과 글이 다르게 나오는 소녀 등 ‘괴짜’가 가득하다. 이러한 등장인물 각각은 현대 일본 사회가 가진 다양한 문제점들-가정 폭력, 자기 방에서 나가려 하지 않는 히키코모리, 불법 입국자, 재일 외국인, 강박증-을 약간씩 비껴간 시선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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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절망선생>의 등장인물. [출처: 네이버 블로그 <이달신작:삼촌 말좀 들어라 http://blog.naver.com/kima4001] | | |
특히 나는 카가 아이를 가장 좋아하는데 아이는 캐릭터 소개에 적힌 것처럼 ‘가해 망상’이 심한 사람이라 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미안하다면서 사과하는 게 입버릇이다. 상냥하고 친절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상대의 감사를 부담스럽게 여긴다. 또,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차가운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하는, ‘츤데레’(일본어 인터넷 용어, 처음엔 퉁명스럽고 새침한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 캐릭터이다. 심지어 가산점을 받기 위해 피겨 스케이팅에서 우승하고, 노벨상을 따고, 우주에 가는 등 놀라운 능력도 갖추고 있다.
너무나 현실적인 ‘비정상적’ 캐릭터들
세상은 각종 ‘비정상’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
너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매일 자살을 기도하고 목을 맨 걸 보고도 키 크려고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인터넷 아이돌에 방구석폐인이라니. 하지만 혹시 이 ‘비정상적인 캐릭터’들이 굉장히 현실적이라는 사실이 느껴지지는 않은가? 카가 아이처럼 가산점을 받기 위해 노벨상을 따는 건 과장이지만 현실에서 학생들은 가산점을 따기 위해 온갖 기행(?!)을 감행한다.
학생들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온갖 단체와 공직자들에게 연락해 수시입학이나 입학사정관제에 유리할 수 있는 표창장을 받기 위해 기부 혹은 청탁을 하고 수상자 이름이 비어있는 백지상장을 받아와 스스로 자녀의 이름을 써넣는 부모들, 승진하기 위해 혹은 취업경쟁에 통과하기 위해 자격증을 수십 개 따고 하루에 3~4시간 쪽잠밖에 자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고등학생이 노벨상을 따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지 않나?
<안녕, 절망선생>의 등장인물들처럼 세상은 각종 ‘비정상’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비정상’을 솎아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끊임없이 폭력을 자행한다. ‘정상’이 되기 위해 혹은 ‘정상’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압박을 받는가. 사실 우리 사회 속에서 ‘비정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비정상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세상 때문인데 말이다. 매일매일 죽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내가 죽을만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살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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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2009년의 한국영화 <김씨표류기>를 떠올리게도 하는데, 김씨표류기 역시 자살 이야기이다. | | |
마치 2009년의 한국영화 <김씨표류기>를 떠올리게도 하는데, <김씨표류기> 역시 자살 이야기이다. 영화는 부채로 더 이상의 삶을 지속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하고 무인도인 밤섬에서 살게 된 남자 김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김씨는 죽기도 쉽지 않자 일단 섬에서 살아보기로 한다. 서울 한복판이지만 혼자 야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된 것이다.
또 한명의 주인공은 은둔형 외톨이 즉 히키코모리 여자 김씨. 방에서 절대 나가지 않는 이 사람에게도 달 사진찍기라는 훌륭한 취미가 있고 하루 만보 달리기(비록 실내에서지만) 등 규칙적인 생활 리듬도 있다. 이 두 김씨가 보여주는 일상은 생각보다 굉장히 유쾌하다. 정말 깨알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 3년 동안 집밖에 한번도 나오지 않은 히키코모리를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언제 자살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취급할지도 모르겠다. 틀림없이 뭔가 잘못되어 있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씨표류기>에서는, <안녕, 절망선생>에서는 ‘비정상’인 사람들이 두려워하거나 괴이하고, 행복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냥 우리 모두가 비정상일 뿐이다.
이/상/해/도/괜/찮/아/행/복/하/면/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