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데마찌
잠시 나는,
내리는 비를 생각했다
비에 젖은 담배연기를 날리며
마음 속으로 내리고 있는 비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작업장 바닥에 쭈그려 앉은
무거운 작업복들을 바라본다
푸르게 물풀 든 작업복에 새겨진 노동의 이력
때로 거기
용접 불똥에 태워먹은 빵구 난 진창이 보이고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 같은 피곤이 묻어나는
작업복들의 오늘 아침 최종 행선지가
비에 젖는 것을 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작업복들
오늘 하루를 공치면 내일은 어떻게 될까
애써 괜찮다 말은 하지만
늘 똬리처럼 가슴 깊이 걱정이 자리 잡고
어두운 얼굴로 걸어오는 불안을 대면하기 위해 낮술을 부른다
시장 통 찌그러져가는 좌판에 앉아
한 잔 가득 술을 따른다
우기의 하늘처럼 을씨년스런 하늘은 거리를 짓누르고
짓눌린 하늘 아래 마시는 술은 취하지가 않는다
마셔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취기
한 때
맑은 날, 팽팽한 빨랫줄에 걸려 부풀어 오르고 싶었던
작업복들의 희망은 어디로 갔을까
비를 부르는 바람과 흐린 하늘이 함께했던
급기야 물에 잠긴 가재 도구들이
둥둥 거리를 떠다니던
저지대 단칸 셋방의 가난은 이 무거운 작업복들의 이름
하루는 노동 속에서 비 실업의 날을 견뎌내고
하루는 노동 밖에서 실업의 날을 견뎌내는
실업과 비 실업의 애매모호한 경계에서 줄타기를 강요당하는
이 무거운 작업복들의 오늘
이미 거리는 젖을 대로 젖었다지만
아직도 비는 그치지 않고
마음 속으로 내리는 비도 그치지 않고
** 요즘 비는 아열대 국가에서 내리는 비와 같은 것 같다. 국지성 집중 호우는 연일 산사태와 물난리를 우리 눈앞에 보여주고 있다. 이 우기의 날씨 속에서 장기투쟁 사업장들의 천막 또한 무사하지 못한 것 같다.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 날씨 까지 도와주지 않으니 하늘이 원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물론 엊그제 까지만 해도 가뭄이다 뭐다 난리를 치더니만 이제는 비 때문에 난리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은 이 가뭄과 비 피해의 난리 속에서도 이 모든 것은 4대강 정비로 인해 별 피해 없이 넘어 갈 것이라고 떠들고 있다.
몇 해 전 울산에서 일을 할 때 비가 오면 일을 하지 못했다. 밖에서 용접 작업을 할 때가 많았는데 비가 오면 일을 못하니 비가 오거나 날이 좋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일당바리들에게 데마찌(일본어: 일거리가 없어서 두 손 놓고 기다림. 또는 그런 상태..현장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다)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데마찌 나는 날은 항상 동료들과 함께 시장통에 모여 앉아 술추렴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런 경우는 흔히 건설 노동자들을 비롯해서 작업장 안이 아닌 밖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겪는 고충이다. 실업과 비 실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잠재적인 실업군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꿉꿉한 습기와 우울증을 동반하는 이 장마가 끝나는 날 햇살처럼 맑은 날처럼 모든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승리의 소식이 들려오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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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현(시인, 노동자) 그는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대구 성서공단에서 다시 용접일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의 삶인 노동의 노래를 뉴스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