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주] : “‘병신’이라는 말은 뭇 장애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사용을 자제해 주세요.” 열에 차 무심코 내뱉은 말이 화근이었다.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기사를 읽고는 별 생각 없이 ‘병신같다’고 했더니, 누군가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무심코’란 그런 것 아닌가. 아무 거리낌 없이, 평소에 하던 대로. 그만큼 수시로 그들을 ‘아프게’했다는 말이 못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온갖 ‘년’과 ‘병신’들이 무엇 때문에 이토록 무심코 괴롭힘 당하는지를 찾아내는 일은 자연스레 기나긴 반성문으로 이어졌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中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그 무언가를 불러주었을 때, 그것은 마침내 우리에게서 의미를 갖는다. 이렇듯 대상을 불러주는 것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임과 동시에, ‘타자화’하는 일이다. 이때 단순한 의미 규정을 넘어서, 주체는 객체를 보다 억압적인 위치에 두고자 시도한다. 그럼으로써 스스로 경계를 강화하고, 보다 더 공고한 입지를 구축하고자 함이리라.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대상에의 이름 짓기, 즉 언어에서의 타자화를 통한 배제가 담론(discours)적 권력을 형성한다고 보면서, “어느 사회에서든 담론의 생산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배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느 사회에서든지 언어를 통한 이름 짓기는 권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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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럿워크코리아는 지난 5월 '가부장제 아래서 강제된 노동을 거부한다'고 외치며 잡년행동에 나섰다. | | |
그런데 이 담론을 구성하는 언어 중에서도 비속어는 대상을 배제하는 특징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비속어가 사회에서 천박하거나 저속하다고 규정되는 것들을 매개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과 장애인, 성(性)과 관련된 비속어가 주를 이룬다. 이들 범주에 해당하는 대상들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억압받아왔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중에서도 여성과 관련된 비속어는 가부장주의를 기제로 담론 권력을 행사해왔다.
이런 이유로 표현의 상당수가 여성의 성기나 성행위 등을 비하하고, 성적 모욕감을 유발하는 것들로 이뤄져 있다. 한편 장애인을 매개로 한 비속어는 정상-비정상의 구분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무능함과 어리석음을 멸시하는 표현들로 구성된다. 이와 같은 여성이나 장애인, 성적인 것들에의 담론 권력은 각기의 언어들이 변화하거나 새로운 생성을 맞더라도 쉬이 그 손길을 거두는 법이 없다.
가부장주의 담론, 여성의 억압
‘찢어 죽일 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조선조에 대역 죄인에게 행해졌던 능지처참이라도 떠올릴라치면, 그 뒤에 붙는 ‘년’이 갖는 의미가 아리송해진다. 이 욕은 ‘찢어 죽을 놈’이라는 말로는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욕설은 여성의 성기를 ‘찢어진 것’이라고 보는 노골적인 비하의 말로, 여성은 물론 여성의 성까지도 억압의 대상으로 삼는 담론이 전제할 때에만 그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가부장제가 지니는 권력담론이 비속어에 숨은 경우를 분류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여성의 성기나 성행위를 언급한 비속어와 모성 관련 금기어 및 저주어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류에서도 중복되는 표현이 다수 있는데, 이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 ‘성’이라는 것 하나로 집약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성기나 성행위는 남성의 그것에 비해 더 불결하고 외설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뽁, 씹년, 개보지, 밑구녕 째진 것’ 등 여성의 성기를 언급한 비속어와 ‘걸레, 개잡년, 화냥잡년, 화냥질, 요분질, 홍합대접’ 등 여성의 성행위를 언급한 비속어는 우리 사회의 성 담론이 가진 남성적 시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비속어들은 남성에 대해서는 사용하지 않고, 남성의 성기나 성행위를 언급한 비속어와는 다른 권력 효과를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남성의 성기를 언급한 ‘좆, 좆새끼, 가운뎃물건, 각시고삐’등은 단순히 지시어의 의미를, ‘좆되다, 좆먹어라, 좆발이 안 서다’등은 감탄사나 강조의 의미를 수행할 뿐이다.
요컨대 여성의 성기나 성행위와 관련된 비속어는 듣는 이의 모욕감과 수치심을 유발하는 기능을 갖지만, 남성의 성기나 성행위와 관련된 비속어는 지시어나 강조어의 의미만을 지닌다. 이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신체와 성행위를 부정하게 여긴 문화적 권력이 언어로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담론의 억압기제가 배제와 억압을 그 전략으로 삼는 것을 넘어, ‘훈육’과 ‘금지’의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여성의 자유로운 성행위를 ‘문란함’으로 명명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성적 자유를 억압하도록 훈련하고, 그럼으로써 가부장주의를 내재화하게 한다.
‘여성’과는 다른 ‘어머니’
욕설이 대상으로 삼는 억압의 대상은 어머니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는다. 흔히 쓰는 ‘니미, 니미랄, 니미씨팔, 지미, 니에미 씹이다’ 등은 어머니를 매개로 한 욕설이다. 이들은 감탄사나 수식어로 쓰이기에 일종의 관용구로 굳어진 표현이면서, 듣는 이에 대한 저주나 금기, 모욕의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여성’을 비하하는 욕설로 만족하지 않고, ‘어머니’를 이용한 욕설이 이다지도 많은 것일까. 이는 여성을 부름에 가부장주의 담론이 순종적인 기혼여성과 이른바 ‘자유부인, 모던걸’ 등의 순종적이지 않은 기혼여성이나 미혼여성으로 여성을 ‘분류·분할’하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들 간의 이질성을 부각시켜, 가부장주의 담론의 재생산을 여성들 몫으로 만든다. ‘여성의 적(敵)은 여성’이라는 시쳇말은 이와 같은 담론적 배경을 전제할 때 가능한 것이다.
담론의 재생산과 지속
이렇듯 여성에 대한 언표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유효한 권력성을 발휘하고 있지만,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변모를 맞기도 한다. 언론 환경의 변화, 인터넷 공간의 확장성, 민주화된 정치 제도 등은 언어의 생성과 발전, 소멸을 빠른 속도로 야기했다. 때문에 노골적인 성적 비속어들은 음성화되고, 공적 공간에서 사용되는 새로운 비속어들이 생성됐다. 최근에 ‘개똥녀, 된장녀, 패륜녀, 지하철 반말녀’ 등으로 나타나는 여성 비속어와 대조적으로, 남성관련 비속어는 ‘꽃미남, 매너남, 꽃중년’에서 보듯 대개 호의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새로이 생성된 비속어는 사회에서 취약한 입지의 20대 비혼 여성을 대상으로 가부장제의 담론적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시대가 변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타자화와 배제, 금지, 분할과 배척의 전략들이 지금까지도 성실히 수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