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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07월07일 00시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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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맨날맨날 멘붕하는 진냥의 추천만화 (2)
헬로우 블랙잭 SYUHO SATO - 의사드라마가 아닌 의료만화

진냥(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jinnyang3@gmail.com

[글쓴이 주] 숨어서 보지 말고 소문내면서 만화 보자. 보면서 멘붕해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심오해도 괜찮아. 세미나 해도 좋아. 만화책도 책인걸~ 멘.붕.독.서

난 생물학 덕후다. 보통 어린 시절엔 하루에 꿈이 열두 번도 바뀌기 마련이지만 난 21살까지 꿈이 생물학자(좀 더 구체적으로는 세포학자) 단 한가지였다. 한국에서 의학 소설 붐을 일게 했던 로빈 쿡의 소설을 접하고 나서, ‘유전자’라는 말을 학교 수업에서 처음 배우고 나서부터 난 생물학 덕후가 되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의학드라마는 종합병원(1994)에서부터 최근에 시즌이 종료된 미국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에 이르기까지 꼭꼭 챙겨보았었다.

사실 한국에서 의학드라마는 일정 부분 흥행이 보증되어 있어서 크게 실패하지 않는 아이템이다. 생사가 오가는 절박함과 알아듣기 어려운 전문용어를 일상적으로 구사하는 의사들, 보통 사람들은 쉽사리 볼 수 없는 수술 모습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리고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는 것 자체로 많은 호기심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드라마들은 대부분 의학드라마가 아니라 ‘의사드라마’였다. 등장인물들은 다 의사였고 인간관계는 병원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병원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세트장 속에서 벌어지는 일과 관계에 대한 드라마 같달까. 그 점에서 <헬로우 블랙잭>은 의사가 아니라 삶, 우리 삶에서 명/확/히 존재하고 있는 ‘의료’에 대한 만화다.

주인공 사이토는 명문 의대를 졸업한 인턴이다. “일본의 의료계를 짊어지고 갈 사람은 바로 여러분입니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사이토는 커다란 사명감도 자신만의 철학도 가지지 않은 채 인턴이 되었다. 그리고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헬로우 블랙잭>은 병동별로 크게 제1외과 편, 순환기 내과 편, 베이비ER 편, 암 의료 편, 정신과 편으로 나누어진다. 그 중 사람들에게 베이비ER 편과 암 의료 편은 특히 많이 회자된다.

장애아 출산을 둘러싼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인 현실 묘사, 베이비ER 편

베이비ER 편에서는 미숙아로 태어난 쌍둥이의 부모 이야기가 나온다. 응급 제왕절개로 태어난 두 아기는 굉장히 심한 중복장애를 안
고 태어났다. 그리고 미숙아들이 그러하듯 매번 응급수술을 요하는 생명의 갈림길에 선다. 그러나 부모는 수술을 거부한다.
 
<헬로우 블랙잭>은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으로 현실을 표현해낸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의 공포. 장애에 대해 사람들이 품는 편견을 꼬집으면서 동시에 장애를 공포스럽게 혹은 혐오스럽게 다루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60갑자 내공이 필요한 수준이랄까. 하지만 <헬로우 블랙잭>은 부모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각자의 처지에서 나름의 결을 농도 깊게 다루어준다. 그리곤 질문을 던진다.
 
‘부모가 자녀가 살 권리를 박탈할 수 있는가?’
‘부모-자녀의 관계는 무엇인가?’

‘갓 태어난 아이의 수술 동의는 누가 당사자인가?’ (그림 왼쪽)
‘부모가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은 어디까지 존중받을 수 있을까. 또한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그림 오른쪽)

‘장애란 무엇인가?’
‘비정상이란 무엇인가?’

“암환자, 그 가족, 그리고 암환자 예비군에게”, 암 의료 편

암 의료 편은 의료민영화가 논의되는 이 시점에서 실제 우리 현실의 문제를 짚어낸다. 한국의 의료 체제가 상당 부분 일본 제도를 빌려 온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헬로우 블랙잭>에 나오는 의사는 멋있지 않다.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다. 온갖 비리로 점철되어 있고 암 진료는 완전히 거대한 산업이 되어 있다. 처음 <헬로우 블랙잭> 7편 표지에 적힌 말을 보았을 때 내 마음속에 일었던 두둥! 소리를 지금도 기억한다.

“의사의 진심을 밝히겠다! 암환자, 그 가족, 그리고 암환자 예비군에게”

암환자 예비군.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사실 모든 사람은 암으로 죽게 되어 있다고. 암으로 죽지 않는 사람은 교통사고나 다른 이유로 미리 죽은 것일 뿐 사실은 모두 암으로 죽는 거라고. 암이라는 것이 세포가 분열을 거듭하다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건데 한 생명체가 일정 기간 살면서 세포 재생을 반복하다 보면 돌연변이가 생길 수밖에 없고 그렇게 암세포가 생기고 퍼지고 죽게 되는 거라고. 그 말을 들을 때는 ‘아, 그런 거구나’ 했었는데 “암환자 예비군”이라는 글을 읽는 순간, 내가 마치 판매를 기다리며 진열된 상품같이 느껴졌다.

최근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노르웨이의 다큐멘터리 <컨베이어 벨트 위의 건강(Health Factory, 2010)>을 보았을 때 역시 그런 느낌이었다. “질병은 상품이에요. 아파서 병원에 가면 제가 얼마짜리 병에 걸렸는지 진단하죠.”

무엇보다 암은 우리에게 죽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우리는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는다. 거부할 수 없다. 그리고 알지도 못한다. 이 약이 암을 치료하기 위한 건지 투여한 다른 약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함인지 날 조용히 잠들게 하기 위함인지... 그리고 죽을 때도 암 때문에 죽는 것인지 이제껏 먹어온 약이 일으킨 부작용 때문에 죽는 것인지... 죽지 않기 위한 발버둥과 그 중심에 서 있는 암 치료 산업... 하지만 <헬로우 블랙잭>은 독하게도 이에 그치지 않고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진다. “죽음은 그렇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걸까요?” 의료민영화나 포괄수가제에 대해 고민하시는 님들 계시면 <헬로우 블랙잭> 암 치료 편으로 세미나 하시는 거 강추 한방 날려드린다.

“정신장애자는 위험한가?”... 진정한 ‘갑’은 정신과 편

앞의 베이비ER 편과 암 의료 편도 ‘장난이 아니지만’, 누가 뭐래도 ‘갑’은 정신과 편이었다. 이번 추천 글에 이미지를 너무 많이 쓴 나머지 스압(너무 긴 스크롤 때문에 느끼는 압박)이 좀 걱정되지만... 그래도! <헬로우 블랙잭>은 정말 짓눌리다 못해 감정이 아래로 배여 나올 만큼 진한 느낌의 이야기라 내가 중언부언하는 것보다 그림을 보여 드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자기합리화... 그래서 내게 왜 정신과 편이 갑이었는지를 표지 이미지를 보여 드리는 걸로 대신하겠다. “정신장애자는 위험한가?”

<헬로우 블랙잭>은 10편과 11편에 정신과 편을 다루고 있다. 흔히들 ‘정신병 환자’는 미친 놈(년), 뭘 저지를지 모르는 사람, 무섭다, 최근에는 사이코패스의 이미지로 생각된다. 하지만 정말 범죄는 병 때문에 생겨나는 걸까? 한국어 번역본이 2006년에 완간된 <헬로우 블랙잭>은 지금 이야기되는 “범죄의 관리화”를 정신장애와 관련지어 풀어내고 있다. 범죄자는 어딘가 결여된 사람일까? 병에 걸린 사람일까? 개인의 결여와 질병으로 생겨나는 것처럼 보이는 범죄는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하면 해결되는 걸까? 정말로 정신장애는 위험한 것인가? 한국정신장애연대(Korean Alliance on Mental Illness, KAMI) 홈페이지에는 종종 정신장애인이 강제퇴거 당하는 사건이 올라온다. 병에 걸려있다면 환자인데 환자를, 병을 이유로 강제퇴거 조치하는 온당한가.

사람과 삶과 죽음, 그리고 병. 그것을 합쳐 부르는 말 ‘의료’. <헬로우 블랙잭>은 그 의료를 다루고 있다. 어떤 이는 이 작품을 보고 “간절함과 두려움이 맞닥뜨려 있는 공간”을 다루는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새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응급실 복도를 뛰어다니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저런 질문들에 머리를 쥐어뜯는 의사 사이토와 우리 삶을 들여다보려면 <헬로우 블랙잭>을 만나보시길.

(눈치 빠른 분은 아시겠지만, 인용하고 있는 부분은 표지에 적힌 문구들이 아니라 표지를 감싸고 있는 종이띠에 적힌 말이다. 혹 소장하고 싶으시다면 종이띠 귀찮다고 절대 버리지 마시길)

진냥(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jinnyang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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