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삼강오륜에서 삼강은 유학의 본래 이념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에 의해서 날조된 개념이라는 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울러 공자나 맹자 모두 성인이라고 칭송받는 이유는 그들의 가르침 속에 인류 보편의 가치가 내재돼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말했지요. 이번에는 맹자의 민본정치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서(四書)와 맹자(孟子)>

▲맹자

맹자(B.C.372～B.C.289)의 성은 맹(孟)이고 이름은 가(軻)입니다. 공자 사후 약 백 년이 지난 후에 태어났으므로 공자에게서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요. 맹자가 살던 시대는 공자가 살던 시대보다 전란의 양상이 한층 더 심각해졌고, 사회적 혼란 역시 더욱 가중되던 시기였습니다. 맹자의 주장이 공자보다 더 날카롭고 박진감이 넘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맹자도 당시의 제자백가들과 마찬가지로 각국의 제후들을 찾아가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유세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비현실적이라고 해서 별 관심을 얻지 못했습니다. 제나라에서 잠시 경(卿)의 지위에 올랐던 것이 관리 생활의 전부라고 알려집니다.

<맹자>라는 책이 공자의 <논어>와 더불어 존중된 것은 송(宋)나라의 주희(朱熹)에 와서입니다. 주희는 기존의 <논어>에다 <예기>에 포함되어 있던 <중용>과 <대학>을 분리해 독립시키고, <맹자>를 더하여 ‘사서(四書)’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맹자>는 경부(經部)에는 들어가지 못했지요. 그 까닭은 맹자의 민본주의적 입장이 권력을 독점하려는 위정자(爲政者)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사상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주희는 왜 <맹자>를 유가 경전 최고의 지위에 올려놓았을까요. 민이 국가의 근본이라고 하면 왕의 권력은 그만큼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경전에 통달한 사대부들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겠지요. 맹자가 사서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 학문적 체계도 그것을 생산해 낸 특정 계급의 이해관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후 사서는 삼경과 함께 유가의 가장 중요한 경전이 되었으며 누구도 그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처음 한 일은 맹자에 담긴 민본주의적 주장을 모두 빼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권력을 휘두르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지요. 사실 주원장은 <맹자>라는 책을 없애버리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경전까지도 날조하는 주원장이라 해도 주희 이후 확립된 사서가 가지는 권위를 완전히 묵살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왕이 아니라 민이다.>

맹자는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君)이 아니라 민(民)이라고 했습니다. <진심편>에서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다음이며, 임금이 가장 가볍다. 그러므로 백성의 뜻을 얻으면 천자가 된다.”고 했지요. 인재를 등용하거나 죄인을 처벌하는 것 또한 왕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양혜왕>편에서 맹자는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주위에서 모두 어질다고 해도 등용할 수 없으며, 여러 대부기 어질다고 해도 등용할 수 없으며, 나라 사람이 모두 어질다고 한 그런 후에 살펴보고 어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그를 등용하라. 죄인을 죽일 때도…나라 사람이 모두 죽일 만하다고 한 후에 그를 죽여야 한다. 그러므로 나라 사람이 그를 죽이는 것이다. 이렇게 한 후에 가히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다.”고 했지요. 이처럼 백성의 뜻에 따르는 정치를 어진 정치, 즉 인정(仁政)이라고 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백성의 뜻에 따라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맹자는 “걸(桀)과 주(紂)가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은 것이다. 천하를 얻음에는 방법이 있으니, 백성의 뜻을 얻으면 이에 천하를 얻게 된다. 백성의 뜻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그 마음을 얻으면 백성의 뜻을 얻는다. 그 마음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백성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도록 해 주고, 하기 싫어하는 것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백성이 인(仁)으로 돌아오는 것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고, 짐승이 드넓은 광야로 달려나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라고 ‘이루’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군주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게 되면 재앙이 자신의 몸에 미치게 된다<같은책, 진심편>고 하여 경계하고 있습니다.

<민의 뜻을 따르지 않는 왕은 주살(誅殺)함이 마땅하다>

맹자는 <만장편>에서 “하늘은 백성을 통해서 보며, 하늘은 백성을 통해서 듣는다.”고 했습니다. 백성의 뜻이 곧 하늘의 뜻이라는 거지요. <양혜왕편>에서는 “왕이 신하를 수족과 같이 보면 신하는 왕을 진정으로 따를 것이다. 왕이 신하를 개나 말처럼 보면 신하는 왕을 왕으로 여기지 않는다. 왕이 신하를 티끌처럼 보면 신하는 왕을 원수처럼 본다.”고 했습니다. 신하나 백성을 자신의 수족처럼 여기지 않는 군주는 인정(仁政)을 행하는 군주가 아니라 패도(覇道), 즉 인을 가장한 정치(假仁爲政)를 행하는 폭군입니다.

그렇다면 폭군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백성에게는 어짊을 가장해서 국정을 전단(專斷)하는 정치를 일삼는 자를 당연히 제거해야 할 권리가 있다고 맹자는 단호히 주장합니다. 백성의 손으로 왕을 바꾸어버리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정당성을 설파한 거지요. 그런데 이 역성혁명은 백성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기도 합니다. 만약 불의를 용납한다면 그 자체가 이미 악이기 때문이지요. 국민과 국가를 자신의 탐욕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자가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방치하는 것은 불의를 용납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마땅히 “자신을 버리고 의를 취해야 한다”(사기취의捨己取義)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맹자는 <양혜왕편>에서, “인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한다. ‘잔적(殘賊)’한 사람은 (군주라고 하지 않고) 일부(一夫)라고 한다. 일부인 주(紂, 殷(은)나라의 마지막 왕, 桀(걸)과 함께 폭군의 대명사로 쓰임)를 백성들이 주살(誅殺)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왕도 정치를 하는) 임금을 시해(弑害)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했으며, <만장편>에서는 “임금에게 큰 허물이 있으면 신하는 간(諫)한다. 만약 여러 번 간했으나 듣지 않으면 그 자리를 바꾸어 버린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맹자는 주살(誅殺)과 시해(弑害)를 구분해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살은 백성이 포악무도한 지배자를 백성의 손으로 끌어내려 제거할 때 쓰는 말입니다. 진정한 혁명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시해는 권력욕에 눈이 멀어 올바른 정치를 하는 지도자를 제거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른바 쿠데타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 외에도 ‘죽이다’ 또는 ‘제거하다’라는 의미가 있는 말에는 토(討)와 벌(伐), 살(殺) 등이 있습니다. 토는 천자가 무도한 제후를 제거하는 경우에, 벌은 제후가 불의한 제후를 제거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지요. 살은 생명 가진 존재의 생명을 없앤다는 의미입니다.

공자는 정명(正名)을 주장했습니다. 모든 말은 그 말에 합당한 내실(內實)이 있습니다. 만약 이름과 내실이 일치하지 않게 되면 천하가 혼란해 지지요. 말은 세계 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상황을 묘사합니다. 그런데 말과 실제가 어긋난다면 진실이 거짓에 묻혀버리고 말 것입니다. 주살과 시해를 구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독재자들은 예외 없이 언로(言路)를 막아버립니다. 진실과 정의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런 지배자 또한 민의 손에 의해서 당연히 제거되어야겠지요.

만약 맹자가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상상해 보면서 보잘것없는 글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