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화와 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강조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인종청소’의 야만적인 폭력은 그치질 않는다. 전쟁과 테러를 비롯한 극한의 폭력은 늘 정의와 종교, 종족의 순수성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안에는 타자의 소멸을 통해 자신의 순수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저열한 욕망이 깃들어 있다. 나치와 스탈린의 강제수용소, 탈레반의 테러리즘, 미국의 이라크 전쟁 등 타자를 몰아내야만 세계 정의가 성립한다고 믿는 ‘기득권자들’의 상상 속에서 인종청소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이 가장 강하게 아로새겨지는 곳은 늘 여성의 몸이다.
1991년부터 1995년에 걸쳐 일어났던 보스니아 내전 당시의 ‘인종청소’는 21세기를 앞두고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것도 ‘문명화’의 우산 아래, 즉 관용과 공존의 공감대가 자리 잡은 유럽에서 자행된 야만적인 폭력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었다. 원래 보스니아는 유고 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지 연방의 일부였다. 그러나 연방이 해체되자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기 시작하고 전쟁이 발발한다. 보스니아 독립에 반대하는 세르비아 정부군과 민병대는 보스니아의 무슬림들을 학살하고 폭행했으며 여성들을 유린했다.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보스니아인 10만 명이 목숨을 잃고 2만 명의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 보스니아 여성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의 <그르바비차>는 그 사건의 피해자인 한 여성을 통해 야만적인 인종청소의 가혹한 후일담을 기록한다.
그라바비차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 속한 어느 마을이다. 과거 사라예보는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 일어난 지역이지만 대체로 관용이 통하는 도시였다. 무슬림 보스니아인과 기독교도인 세르비아인 그리고 크로아티아인들이 서로 이웃이 되어 평화로운 일상을 일구던 ‘인종과 종교의 모자이크 도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91년 이후의 내전은 이러한 평화와 공존의 넉넉함을 파탄 내버린다. 그라바비차는 바로 세르비아군의 수용소가 있던 곳이고 그곳에서 무슬림 남성들은 ‘순교’의 이름으로 학살을 당해야 했으며, 여성들은 ‘인종청소 프레젝트’의 일환으로 학살자들의 몸을 견뎌내야 했다.
<그라바비차>의 주인공 에스마는 10년 전의 사건 때문에 여전히 가혹한 일상을 살아간다. 영화는 에스마와 딸 사라 사이의 비밀을 둘러싸고 진행된다. 사라는 아버지를 내전 당시 순교한 전쟁영웅으로 믿고 있다. 엄마 에스마는 사라를 먹이기 위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숭어를 사고, 그녀의 수학여행 경비 200유로를 마련해주기 위해 여기 저기 손을 벌리며 급기야 클럽의 여종업원으로 고된 노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는 전사자 가족은 수학여행 경비가 면제된다는 사실을 알고 엄마에게 아버지의 전사증명서를 떼 달라고 조른다. 에스마는 계속 미루다가 자기도 모르게 과거의 사실을 말하고 만다. 이로써 스스로를 ‘전쟁영웅의 딸’이라고 믿고 있던 사라는 자신이 그런 치욕스러운 사건의 ‘씨앗’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쟁 피해 여성을 위한 심리치료 과정에서 에스마 자신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했노라고 통곡하며 이야기한다. 힘껏 배를 때려도 봤지만, 생명은 질겼다. 딱 한 번 젖을 물리려고 갓난아기를 품에 안았던 에스마는 사라를 놓지 못하고 그 아이를 희망으로 알며 삶을 살아온 것이다. 감독 즈바니치는 에스마의 끈질긴 고통과 모녀의 애증 섞인 관계를 통해 전쟁은 끝났지만, 그로 인한 삶의 위태로움이 지속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에스마는 사라와 장난을 치다가도 경기(驚氣)를 하고 클럽에서 군인과 여성이 몸을 비비는 모습을 보고도 깜짝 놀라 진정제를 먹어야 한다. 그녀는 애틋한 감정을 주는 한 남자가 술집주인의 폭력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려고 그 주인을 때려눕힐 때에도 “당신들은 모두 짐승들이에요”라며 애정을 뿌리치고 도망간다. 그만큼 과거의 트라우마는 강한 것이다. 그래도 사라가 있어 그녀는 삶을 버텨나간다. 수학여행 버스에서 손을 내미는 사라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에스마를 통해 모녀의 관계 회복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각자의 상처에 대한 궁극적인 치유는 역시 여성들의 연대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