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안 칼럼(6)] 나는 노동자다

뉴스일자: 2012년06월20일 14시00분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곤란할 때가 대학 후배들을 만나서 자기소개를 할 때입니다. 학생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늘의 나를 소개할 수 없고, 직장 명함을 건네서는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늘 머뭇머뭇 거리며 그저 이름만 이야기하곤 합니다. 어디 어디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이야기 하고 싶지만 내 몸에 걸쳐진 새하얀 셔츠와 그것보다 더 선명하게 각인 된 사람들의 생각 속에 나는 노동자가 아니라 그냥 괜찮은 직장을 다니는 생활인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방영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 적우라는 여가수가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출연 초반부터 과거의 행적을 문제 삼아, 그녀의 프로그램 출연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넘어 그녀가 가수인지 아닌 지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인터넷 게시판이 도배되었습니다. 그녀가 어떤 무대를 보여주던 상관없이 사람들은 스스로 찍어버린 낙인을 바탕으로 그녀를 판단하였고 그녀는 훌륭한 가수들과는 한 무대에 설 수 없는 술집 출신 딴따라라고 서슴없이 표현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생계를 위해 술집에서 노래를 부를 때에도, 공중파 TV의 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에도 노래 부르는 것을 업으로 삼는 그녀는 변함없이 가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화 <파업전야>
우리는 노동자라는 생각을 하면 아직도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생산직에서 일을 하는 남성 노동자를 생각하며, 민주노총의 투쟁을 생각하면 <파업전야>라는 단편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계를 멈추고 몽키스패너를 높이 쳐든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산업이 다양해지면서 서비스업에 종사하거나 화이트칼라 직종의 노동자가 50%를 넘어섰지만 우리 머리 속 노동자의 관념은 몇 십 년째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노동자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고 있으며, 경계에선 그/녀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지하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그/녀들의 노동을 전체 노동의 중심으로 세우기 위한 기존 노동운동진영의 뼈를 깎는 노력이 없이는 노동운동이 전체 변혁운동의 중심에 서는 것은 더욱더 어려워 질 것입니다.

물론 현재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다양한 노동에 대한 이해와 조직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 민주노총은 금속노조 중심으로 헤게모니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조직에 대한 맹신과 한계의 지점은 금년 4.11 총선 창원, 울산 지역 패배를 통해서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이는 이제껏 가져온 노동조합 운영방식을 대폭 변화시켜,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함께 할 필요가 있음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동운동 진영보다 중요한 것은 경계에 선 노동자들의 자기 각성입니다. 화이트칼라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마음속에 진급과 관리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주는 그러한 환상을 계속해서 심어주고, 그것에서 배제될 공포심을 보여줌으로써 그/녀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바뀌지 않는 사실은 그/녀들 모두 임노동에 근거하여 삶을 영위하는 노동자라는 사실입니다. 자본과 기업이 주는 선물은 그/녀들이 원래 가져야 할 몫입니다. 달콤한 선물에 길들여지면 내일은 쓰디쓴 아픔의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노가다라고 불렀던 건설노동자들이 단결하여 당당히 건설기술 노동자의 이름을 쟁취하고자 나선 것은 노동자가 스스로 자각함으로써 어떤 이름을 얻을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출처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꽃이라 불릴 때 꽃이 되었다’는 어느 시인의 이야기처럼, 노동자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를 때 그리고 함께하는 동지들을 노동자라고 불러줄 때, 그/녀들의 하루는 월급을 위해 견뎌가는 피동적인 삶이 아닌 삶을 위해 노동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이 될 것입니다. 그/녀들의 힘이 하나씩 모여서 이룬 작은 이야기들이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

나는 오늘도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노동자라는 이야기를 하여도 누구도 놀라지 않는 그날을 꿈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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