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 버스, 지하철 등 언제나 완성체의 모습으로 그것들을 접하고 있는 우리는 이동교통수단의 편리함에만 익숙해져 있다. 실제로 이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는지는 지나칠 때가 많다. 노동상담소에 있으면 이것들의 편리함을 우리가 향유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노동자들을 접할 기회가 많다.
안전장치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채 발스위치를 사용하는 프레스 기계작업을 하다가 손가락이 몇 마디 잘린 노동자가 상담을 왔었다. 자동차 부품으로 쓰이는 철판 가공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프레스 기계에 발스위치를 사용하는 경우와 사용하지 않는 경우 생산물량이 5배 정도 차이가 난다.
대부분의 사장들은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발스위치 사용으로 사고가 날 가능성을 인지한다. 하지만 생산물량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이를 이용해 작업하도록 지시한다. 발스위치를 잘못 사용하여 프레스 기계 위에 있는 슬라이드가 떨어지면 작업자의 손가락은 도마 위의 고기처럼 싹둑 잘려나간다.
사고가 난 뒤 사장들의 반응은 여러 상담 사례에서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다. 사고 직후 병원에 데려가기는 하는데, 그 후에는 병원에 코배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나타나지 않는다. 고장 난 기계나 로봇처럼 부상당한 노동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노동자는 오히려 폐기처분 할 수 있는 기계나 로봇보다 성가셔하는 느낌을 받는다.
회사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나면 산재보상을 받는 것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알고 있는 기본적인 사실이다. 산재보상은 일당의 70%에 해당하는 휴업보상, 국민건강보험상 요양급여에 준하는 치료비, 장해가 생길 경우 장해보상은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산재보상에서 지급받지 못하는 손해에 따른 급여, 위로금에 대해서는 별도로 사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해야 된다.
특히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될 경우 알아두어야 할 사안이 있다.
첫째, 사고가 회사의 안전장치설치 의무 위반으로 인한 과실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된다. 목격한 동료 노동자가 증인으로 증언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동료 노동자들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사실대로 증언을 해주지 못한다. 회사 눈 밖에 나서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어쩔 수 없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노동청에 고소를 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둘째, 합의 유혹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 사장의 입장에서는 사고 초기에 적은 비용으로 합의를 보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노동자에게 합의서에 서명을 강요 또는 종용하곤 한다. 그러나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합의를 하더라도 추후 장해와 후유증 정도를 확인하고 합의를 해야 만이 후회하는 일이 없게 된다. 그로인해 평생 일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고, 평생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산재보상을 받는 것 외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다가 3년(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이 지난 뒤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물어오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장들은 3년이 지나면 청구할 수 없다고 할 것인데, 판례에 의하면 근로계약상 노동자의 생명, 신체를 보호할 안전배려의무 위반으로 사고발생 후 5년 이내에는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된다.
돈 몇 푼이라도 잘린 손가락의 가치에 합당한 손해배상은 당연히 받아야 될 것이다. 또한 사장의 인간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도 편리함을 선물해 주다 다친 노동자에게 예의와 존경의 눈빛, 감사함을 보여주었을 때, 그 노동자는 남아있는 손가락을 세상에 당당히 펼쳐 보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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