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기획 - 산재없는 세상(4)] 노동자 외면하는 산재보험제도

도를 넘어선 근로복지공단 비리...공단 개혁 선행되야
뉴스일자: 2012년05월10일 14시26분

50세의 건설노동자가 5월 8일부터 대구 중구 소재의 근로복지공단대구본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목발을 짚은 채 땡볕을 그대로 받으며, 무릎통증을 줄이려 앉았다 일어서다를 반복하는 그가 안쓰러워 물을 한통 사서 건넸다.

그는 2008년 12월 건설현장 사고로 오른손 엄지손가락골절과 흉부좌상으로 산재요양 중 2009년 1월에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파열을 확인하고 추가상병신청하여 당시 사고와 연관이 있다며 추가상병을 승인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아 상급병원으로 옮겨 MRI촬영을 했더니 전방십자인대파열뿐 아니라 후외측 회전 불안정증이 심해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학적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2009년 7월에 전방십자인대파열 수술, 8월에 후외측 회전 불안정증 수술을 받았고, 2009년 4월에 추가상병에 대한 산재요양을 신청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불안정증이 미미하고 확인하기 어렵다며 6월에 불승인하였고, 그의 심사청구는 기각됐다. 이에 불복하여 노동부 산재재심사위원회에 재심의를 청구하였으나 역시 기각되었다. 행정기관의 판결에 이의가 있을 경우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어 그는 기나긴 법정 다툼을 시작했다. 1심인 대구지방법원에서는 2011년 2월에 패소판결을 받았다. 항소하여 2011년 10월에 대구고등법원으로 불승인처분 취소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엔 근로복지공단측이 불복하여 상고했고, 대법원은 2012년 3월에 상고 이유없음으로 기각했다.

현재까지도 병원치료를 하고 있는 그는 3년에 걸친 긴 싸움 끝에 이제는 마음 편히 산재요양을 하겠구나 기대했다. 하지만, 2010년 7월말로 증상이 고정되었다며 산재요양이 종결되어 승소의 기쁨은 잠시뿐, 또다시 외로운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2010년 8월부터 2012년 6월말까지의 요양급여를 청구하였으나 2012년 4월 26일에 있은 근로복지공단대구지역본부 자문의사회의에서는 “전방십자인대파열수술(2009.7.3) 후외측회전불안정증수술(2009.8.7)시행한 후 약 1년간 안정가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2010.9.25까지 요양 후 종결함이 타당하다”는 심의소견을 제시하여 불승인되었다.
 
그는 현재까지 요양중이며, 상태는 다소간 호전됐다. 종결당시의 상태와 현재 상태의 비교해 호전정도를 보며 증상이 고정되었는지를 따져야 할 것이다.

긴 시간동안 이의제기과정에서 겪었을 산재노동자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참담할 것이다. 이렇게 사례를 늘어놓는 것은 현행 산재보험법제도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산재여부를 판단하기에 앞서 치료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나, 현행 제도는 불승인되면 건강보험으로 적용되지도 않는다. 오롯이 자부담이다. 근로복지공단과 건강보험공단이 알아서 처리해주면 이러한 고통은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앞선 사례처럼 근로복지공단은 요양기간이 길어지면 ‘강제종결’이란 칼을 서슴없이 휘두르고 있다. 환자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고, MRI 등 필름 한 장 보고 판단하는 자문의사회의는 천편일률의 심의소견을 쏟아낸다. 이런 식이다. 자문의사회의 위원장이 먼저 심의소견을 쓰면 참석 위원은 거의 받아쓰기 수준이고, 심지어 필체까지 유사한 소견도 있을 정도이다. 직접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여 경과를 지켜본 주치의가 환자의 상태를 가장 잘 알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번번이 묵살되기 일쑤다. 환자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주치의의 적극적인 의견개진과 반영이 필요하다.

사고로 인한 경우에도 이지경이니 뚜렷한 계기가 없는 직업성질환의 경우에 그 피해가 더욱 심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산재보상보험법은 2007년에 상당부분 개정되었는데, 가장 두드러진 점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의 설치다. 2008년 7월 1일자로 시행되고 있는 질판위는 근골격계질환, 뇌심혈관계질환, 직업성암 등 직업성질환에 대해 불승인을 남발하고 있다. 근골격계질환의 경우 승인율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 뇌심혈관계질환도 10건 중 2건이 채 되지 않으며 직업성 암의 경우 승인율이 전무할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산재보험료를 거둬들이는 곳과 산재보험료를 지불하는 곳이 동일하니, 산재보험기금 확보를 이유로 요양기간, 보험급여의 지출이 많은 직업성질환에 대해서는 불승인과 강제종결을 남발하는 것이다. 올해로 7조5천억 원의 적립금을 보유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산재보상보험법의 목적은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이하생략)”라고 밝히고 있다. 아무리 봐도 이 목적은 위 사례에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 노동자들 사이에는 산재승인받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얘기를 한다. 아예 산재신청을 안하고 건강보험으로 하는 것이 속편하다고 한다. 사회보험으로서의 산재보험이 노동자의 권리보장과 목적하는 바를 이루려면 지금과 같은 법제도로는 어렵다. 노동자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충분한 요양과 생계보장이 되어야 하며, 산재기간이 끝나면 원직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직업재활뿐 아니라 심리재활까지 보장되야 한다.

덧붙여 근로복지공단의 비리가 도를 넘어섰다. 울산지사의 경우 직원의 1/4이 비리에 연루되어 징역형을 받았다. 전국 각 지사의 말단 직원에서부터 재정이사까지 뇌물수수, 인사청탁 등의 비리가 수년째 있어온 것이 최근 발각되었다. 산재노동자에게 고통을 주기에 앞서 근로복지공단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산재보험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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