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인 5월 1일 우체국 정상근무가 포털 사이트 검색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학교 전산실에 근무하는 동생은 노동절에 학교에서 ‘운동회’를 해서 자신들도 덩달아 쉴 수 없다고 입을 실룩 실룩 거리고, 어린이 집에서는 노동절 휴무를 반대하는 학부모들 때문에 교사들을 쉬게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대형마트나,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 시민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 어디에서도 노동절 휴무를 알리는 공지를 볼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노동절에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택배가 오지 않고, 내가 출근한 후 우리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맡길 수 없다면 참 불편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종일 먹을 거리를 생각하고,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아 우왕좌왕거리고, 급하게 주문한 제품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하루가 연장 되어 버리겠죠.
그러나 우리의 불편이 그/녀들의 쉴 권리를 빼앗을 만큼 커다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파업으로 버스와 기차가 멈출 때 불편하다며 짜증내고, 힘이 든다고 투덜대면서 그/녀들의 삶의 이야기를 단지 이기심으로 매도해 버리곤 합니다. 운수차량이 멈추어 택배가 도착하지 않고 공장의 납기가 늦어지면 신문에서는 수많은 데이터로 경제적 손실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그 장단에 박수를 치며 그/녀들의 인간적 존엄을 지켜주는 마지막 울타리 마져 짖밟아 버립니다. 우리는 같은 공장의 이주노동자가 잔업을 하지 않고, 주말에 쉬겠다고 하면 나의 근무시간이 늘어날 것을 걱정하며, 같은 라인에 있는 그/녀에게 사장보다 더욱 포악한 욕으로 그/녀들의 지친 삶에 무게를 더 얹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불편이라고 부르는 그 어떤 한 것이라도 그/녀들이 가진 권리를 빼앗을 만큼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노동절에 아이를 맡아주지 않는 어린이 집과 싸울 것이 아니라, 노동절에 수당이외엔 그/녀들의 삶에 어떠한 것도 건네지 않는 사장과 싸워야 되며, 대형마트의 휴무에 투덜거릴 것이 아니라 작은 상점의 물건에 눈길을 두어야 합니다. 황금연휴 휴양지의 불편함에 화를 낼 것이 아니라, 그/녀들과 함께 행복해질 연휴 여행을 기획하여야 합니다
불편이라는 것은 편리라는 단어가 존재하기에 함께 다니는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편리함이라는 것이 다른 이의 희생과 고통에 기반 한다면 그 편리라는 단어는 ‘아픔, 고통, 이기, 불행’과 동의어가 될 것이고, 그 반대인 불편은 ‘치유, 나눔, 행복’과 같은 말이 될 것입니다.
노동이라는 단어에 차별과 높고 낮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메이데이도 불편함이라는 분별 속에 서로를 가두는 날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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