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하면 하루 임금 받잖아요, 우리도 똑같아요”

[자갈마당] (1) 성매매 여성 종사자의 이야기
뉴스일자: 2015년05월31일 22시30분

그의 목소리에는 한숨이 가득하다. 대구시 중구 도원동 성매매 집결지, 일명 ‘자갈마당’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는 김지우(가명, 42세) 씨의 목소리다. 올 초 여성가족부에서 전국 24개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하겠다고 밝힌 뒤, 온갖 언론에서 자갈마당이 곧 폐쇄될 것이라는 보도를 내놓았다. 지난 3월에는 대구시, 중구청, 경찰청 등에서 TF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자갈마당 폐쇄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지우 씨는 그동안 대구시 여성정책가족관, 중구청 여성가족과 관계자들과 여러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지우 씨가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답이 없다”였다.

그는 “대구시 여성정책가족관님이랑 40분 동안 통화를 했는데 무슨 국어책이다. 왜 나한테 책에 나오는 걸 그대로 읽어주는지 모르겠다”며 “대화를 시도해서 협의점을 찾을 생각은 안 하고, 그냥 언론에 ‘자갈마당 폐쇄한다, 단속한다’고 퍼뜨리고 있다. 우리가 살 방안을 찾아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자갈마당 폐쇄 여론 덕에 손님도 뚝 끊겼다. 지우 씨는 물론 자갈마당에서 청소, 빨래, 식사를 담당하는 노동자들까지도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생겼다. 주변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자갈마당 바로 옆 KT&G 부지에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자갈마당이 없어질 것이라는 여론이 나왔다.

지우 씨는 “아파트 분양 시작 할 때 ‘자갈마당 폐쇄’라고 써 붙이더라. 우리는 사람으로도 안 보이나 봐. 우리한테 먼저 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게 정상인데, 어떻게 이 큰 동네를 하루아침에 폐쇄하겠다고 할 수 있느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곧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울음이 아니면 한숨을 쉬다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지우 씨는 긴 한숨 끝에 말했다.

“우리 아가씨들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터진다. 시위는 쨉도 안 된다. 우리는 죽을 각오 하고 있다. 어차피 집에 생활비도 못 보내주고 있는데. 나뿐 아니라 여기 있는 아가씨들 가정이 다 무너질 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게 보험은 들어놨다는 거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지우 씨가 자갈마당으로 온 이유
“내가 한 가정의 가장이기 때문에”

지우 씨의 하루는 오후 7시부터 시작한다. 7시에 일어나 단장을 하고, 유리방에 앉아 손님을 기다린다.

그는 “요즘은 손님이 없어서 새벽 4~5시쯤 되면 정리하고 들어간다. 몸이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며 “우리는 몸으로 하는 일이라 아마 기자님 집에서 먹는 반찬보다 우리 집 반찬이 더 좋을 거다. 잘 먹어야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꼬박 10년이 지났다. 특별법 이후, 자갈마당처럼 성매매 집결지는 단속의 표적이 됐다. 이후 대전 ‘유천동’, ‘카페촌’, 부산 ‘완월동’, 전주 ‘선미촌’, 춘천 ‘난초촌’이 폐쇄됐다.

지우 씨가 자갈마당에서 일한 지도 10년이 넘어간다. 식당, 커피숍, 편의점, 공장 등에서 일 해봤지만 한 달에 120만 원 남짓한 돈으로 생활하기는 빠듯했다. 몸이 편찮은 노부모와 어린 동생까지 지우 씨가 먹여 살려야 한다.

그는 “공장에 들어가서 시다도 해보고 미싱도 해봤다. 지금도 미싱 하라면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달에 120만 원 받아서는 생활이 안 된다. 왜냐면 내가 한 가정의 가장이기 때문에. 남자들 보통 한 달 월급 200만 원 정도 받지 않나? 그래야 한 가정을 먹여 살린다. 우리도 똑같다. 120만 원 받아서는 월세, 출퇴근 교통비, 식비, 세금 이것저것 내고 나면 내 손에 돈 5만 원이 안 들어온다. 그걸로 어떻게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주느냐”고 말했다.

지우 씨는 초등학생 때 꿈이 현모양처라고 한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그는 “나도 왜 시집가고 싶은 욕망이 없겠어. 초등학생 때 꿈이 현모양처였는데, 애들이 다 웃었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그게 제일 이루기 힘든 꿈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도 단란하게 가정도 꾸리고, 아기도 낳고 그러고 싶다. 그런데 내가 가버리면 우리 부모님은, 어린 동생은 어떡해?”

지우 씨는 한때 성매매의 음지라고도 불리는 ‘보도방’에서 일하기도 했었다. 보도방은 단란주점이나 유흥업소 등에 성매매 여성을 제공해 주는 업체를 말한다. 지우 씨는 보도방에서 일했던 때를 떠올리면 끔찍하다.

그는 “보도방 수입은 괜찮았다. 성매매특별법 터지고 나서인데도 정말 장사 잘 되더라. 한 달에 돈 꽤 벌었다. 여기(자갈마당)는 매일 단속 때문에 살얼음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날은 손님이랑 돈 가지고 실랑이하다가 손님이 두들겨 패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30분을 맞았다. 소리를 지르고, 악을 써도 누구 하나 올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실컷 얻어터지고 나오니까 주인이 하는 말이 ‘그냥 돈 줘버리고 나오지 왜 맞고 있었느냐’고 했다. 이게 말이 되나. 그때는 진짜 사람이 이러다 죽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여기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지우 씨는 그때 이후로 트라우마가 생겼다. 손님이 손을 머리 위로 들기라도 하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된다고 한다.

지우 씨는 “음지로 퍼진 데는 지금 우리도 갈 수는 있다. 여기 사장님들 꼬셔서 주택가로 파고드는 거 정말 쉽다. 그런데 안 가는 이유는 목숨 내놓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데로 간다면 진짜 말리고 싶다”며 “보도방은 딱 갇힌 공간에서 남자하고 나 하고 둘이 있으니까 보호망이 하나도 없다. 요즘은 실컷 한 다음에 아가씨 죽이고 나왔다는 범죄도 기사에서 봤다. 진짜 도둑놈들이다”고 말했다.

지우 씨는 최근 자갈마당 폐쇄 때문에 몇몇 언론사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기자들은 지우 씨의 손톱을 가장 먼저 쳐다본다고 한다. 알록달록 깔끔하게 네일아트를 한 손톱이다. 그 시선이 지우 씨는 너무 불편했다.

그는 “기자님들 오면 내 손톱부터 쳐다보더라. ‘집에 생활비도 못 보태준다면서 저런 걸 왜 발라?’ 이런 눈빛이다. 그렇게 보이겠지”라며 언짢아했다. 

지우 씨는 자갈마당에서 일하는 동안 네일아트 자격증을 땄다. 낮 시간에 자는 시간을 줄이면서 학원에 다녔다.

지우 씨는 “네일아트 하는 거 쉽더라. 3달 동안 여기서 일하면서 자격증 땄다. 사장님이 학원비 반 정도 보태줬다. 자격증 따고 취업하러 나갔는데 답이 안 나오더라”며 “전세도 아니고 월세였는데, 월세 내려고 하니 답이 안 나와. 집에서는 난리가 났는데, 입에 풀칠할 수도 없고 머 먹고 사느냐고. 그래서 다시 여기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