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꿈꾸는 리얼리스트 변홍철의 유머와 여유, 그리고 시

[월요일을 여는 책] 변홍철 산문집 <시와 공화국>
뉴스일자: 2015년03월23일 19시45분

▲지은이 변홍철, 한티재, 2015년 3월 1일, 가격 13,000원
얼마 전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6시간짜리 훈련에도 잔상이 남았는지 며칠 후 군대가 배경인 꿈을 꾸고야 말았다. 새마을금고 강당을 빌린 예비군 훈련 집합소의 총, 군복, 작전상황판은 그곳을 군대로 바꿔놓았다. 더불어 그곳을 군대로 바꿔놓은 가장 큰 요인은 안보교육이었다. 그날따라 날이 추웠던지라, 안보교육 시간이 꽤 길었다. “2000년대 들어 북한은 간첩을 보내지 않고도 정보를 입수한다. 우리 사회 숨어 있는 종북세력을 통해서다. 그러니 국가관을 철저히 가져야 한다”는 것이 안보교육의 요지였다. 안보교육 강연자 또한 이미 정해진 답이 싫증이 났는지, 10분 정도 지나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주제를 바꿔버렸다. 다행히도 나는 책 한 권을 챙겨왔고, 강연 시작과 함께 변홍철의 산문집 <시와 공화국>을 펼쳤다.

예비군 훈련장은 <시와 공화국>을 읽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종북세력, 국가안보, 전쟁 따위의 단어가 자연스러운 곳에서 변홍철의 글은 빛을 발했다. (게다가 그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 비판 유인물 배포 혐의로 경찰에 압수수색까지 당한 반(反)정부세력이 아닌가!) 집중해서 책을 읽기 위한 이 탁월한 선택은 사실, 저자로부터 배운 것이다.

아직도 2008년 7월 10일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 변홍철에 대한 강렬한 기억 때문이다. 그를 수식하는 많은 직책과 이미지 가운데 첫손에 꼽는 것은 ‘위트’다. 우리말로는 신명이라 불러도 좋겠다.

책에 실린 산문 「촛불, 도시락, 時(시)」에 나와 있듯이, 그는 2008년 7월 10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신고하지 않고 집회를 주최했다는 건데, 그 집회라는 게 주성영 새누리당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도시락을 먹는 거였다. 시민들이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는데, 주성영 의원이 이를 “천민민주주의”라고 모욕했던 데 대한 일종의 항의 퍼포먼스였다.

그렇게 그는 도시락 먹다가 동부경찰서로 끌려갔고, 나와 만났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주성영 의원 사무실 점거 농성을 시도했다가, 강한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끌려 나온 참이었다. 경찰서로 연행된 수가 농성을 시도했던 이들보다 1명 더 많았던 점을 의아하게 생각해 경찰에 물었다. 경찰은 변홍철이 우리가 농성을 시도한 사무실 아래에서 불법집회를 주최해서 연행했다고 말했다. 조사를 마친 후 그와 만났고, ‘주성영 도시락 프로젝트’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몇 달 후 군에 입대했고, 훈련소에서 벌금형 딱지를 받았다. 죄목은 ‘퇴거불응 및 퇴거불응 교사’였다. 난 한참을 웃다가, 그를 떠올렸다. 진지한 것만 쫓던 내게 그의 ‘유머’는 큰 배움이었다.

물론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을 연상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사실 저희가 함께한 ‘도시락 프로젝트’는 완전히 유쾌하고 평화로운, 그리고 소규모의 자발적인 퍼포먼스에 불과한 것이었지요...(중략) 고작 이걸 가지고 ‘집시법’을 무리하게 적용하여 ‘범죄행위’로 취급하고 있는 검찰과 경찰의 과잉대응이 참으로 어이없고, 차라리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국가권력을 비롯한 모든 폭력적인 체제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유머 없음’이긴 하지만······.) -<시와 공화국> 32~33쪽.

그렇다고 그에게 배울 것이 위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머 넘치는 행동으로 ‘시민 불복종’과 ‘비폭력 직접행동’을 실천하지만, 가볍지 않다. 그의 글은 현장감이 넘치면서도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새로운 관점을 담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독도’다.

함께 역사를 공부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게 ‘독도는 누구 땅인가’ 질문한 적이 있다. 돌아온 답은 ‘우리 땅’이었다. 주위의 대학생들에게 질문을 해봐도 답은 다르지 않았다. 우리 사회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2005년 3월 그가 쓴 산문 「독도는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의 것이다」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아쉬운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독도 문제에 대한 근원적이고 비판적인 상상력을 제기한다.

“독도는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풀뿌리 민중들은 그러한 자연의 섬인 독도를 인간의 탐욕과 국가주의 논리로 ‘소유’(영유)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본과 국가의 개발·팽창 논리로부터 이 아름다운 섬과 바다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섬을 당신네 지도자들과 우익 세력이 이제 와서 차지하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중략) 언제나 그랫듯이 팽창과 정복, 전쟁에의 유혹은 어느 나라든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지배세력과 권력엘리트의 것이지, 하루하루를 노동하여 정직하게 먹고사는 풀뿌리 민중의 이해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는 것을...(중략) 자연을, 독도를, 국가주의와 군국주의라는 더러운 명분으로 함께 짓밟는 어리석음에 동참하지 맙시다...(후략)” -<시와 공화국>16-17쪽.

<시화 공화국>에 실린 그의 글은 시적 감수성이 충만해 있다. 그는 보편적인 것들과 공화국을 꿈꾸는 삶과 투쟁의 현장에서 시어를 깎는다. 그래서 그의 산문은 기름기가 흐르지 않음에도, 서로를 비추어 반사하는 빛이 난다. 자신의 절대적인 오감을 믿기보다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그 현장의 투쟁 속에서 시가 빚어진다. 그의 시 제목이기도 한, ‘시와 공화국’이 책의 표제로 선택된 것이라 짐작해본다. 이는 청도 삼평리 송전탑 반대 투쟁과 관련한 글이 여럿 엿보이는 이유기도 하다.

삼평리 할매들의 싸움은 더 이상 식민지 주민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지난 8월 15일, 3대째 집안에서 내려오는 낡은 태극기를 들고 나와 농성장에 매달았던 이억조 할머니(75세)가 ‘삼평리 광복절 기념식’에서 했던 연설의 한 대목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시와 공화국> 136쪽.

내게 타인의 산문집을 읽는다는 것은 사유의 폭을 넓히고, 해방하는 삶을 실천하기 고민하기 위해서다. 나는 종종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에게서 세 가지가 없음을 아쉬워한다. 그 중 하나는 여유다. 다른 두 가지는 유머와 글쓰기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변홍철은 서문에서 질문과 반성을 위해 책을 펴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언젠가 우리가 모두가 ‘내 나라’라고 부르게 될 아름다운 ‘공화국’을 향해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투쟁하는 모든 동지들”과 여유, 그리고 유머와 글쓰기를 함께 나누기 위해서라고 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생각과 고민을 나눠 가지는 것이 그가 말하는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변홍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체의 말처럼 불가능한 혁명을 꿈꾸는 리얼리스트”라고 답하며, 이 책을 소개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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