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석의 신비한 우리말 산책 (19)

(그림)그리다 / (글자)쓰다
뉴스일자: 2015년03월06일 15시20분

지난 회에서는 {나누다, 분배하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allot>에다 자립적(음절적) 모음 앞에 연구개음 g/k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원리를 적용했을 때 이 <allot>이 현대 한국어 <갈르다>/<갈라~>와 동일기원어임을 살펴보았다.

이와 동일한 이치를 적용하면 아래 글상자 안의 <art>는 현대 한국어 <그리다>와 본디 동일한 어휘임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쉽고도 단순한 어휘 동일성을 일반인들이 왜 그동안 눈치 채지 못했는가 하는 것은 연구개음 g/k가 소멸하는 음운과정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현대 언어음에서 발음할 때 혀를 뒤로 구부리게 된다는 의미의 후굴음(Retroversion)으로 된 /R/의 음운성질 가운데 자음적 /R/로 되는 성질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미술(美術) 즉 ‘그림-그리기’라는 뜻을 가진 이 <art>가 왜 {학문, 기초과목}이란 뜻까지 아울러 가졌을까 하는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는지 궁금하다.

콧물 닦는 손수건을 가슴에 매단 채 우리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처음으로 배운 것은 그림 그리기가 아니라 가, 갸, 거, 겨, 고, 교......하며 선생님이 칠판에 써 주시는 것을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열심히 공책에 받아 적던 ‘글자’였었다.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기초과목}이란 것, 다시 말해 학교에 들어가 처음 배우게 되는 것은 모국어를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글자’를 익히고 쓰는 일임에 분명할 것인데, 이 글자를 쓰는 행위가 ‘그리다’라는 행위와 동일 의미문맥에 놓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렇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알파벳, 한글자모, 일본의 히라가나와 같은 추상화되고 기호화된 글자들이 나타나기 이전의 ‘문자’라는 것의 원형은 바위나 동굴 깊숙한 곳에다 그렸던 들소나 사슴, 고래 따위의 ‘그림’이었던 것이다. 이른바 한자라는 문자를 상형문자(象形文字) 즉 물상을 그리는 것에서 발달한 문자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문자발달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음이다.

▲이집트 그림문자

위에서 보인 글상자에서의 ㉮ <그리다> 및 ㉯ <쓰다>라는 어휘대응은 모두 이와 같은 문자발달의 역사와 함께 이해될 수 있는 자료들이다. 

㉯의 <쓰다>는 제1음절 /k/의 전향화를 고려할 때 추정할 수 있는 것으로, 같은 뜻인 <(書)>도 결국 이들과 동일기원어이지 ‘書’라는 문자로 인한 어휘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글상자의 ㉮에서와 같이 어두에 연구개음 /k/를 재구성할 수 있음에 대한 어휘적 증거로 다음에 소개하는 드라비다어를 꼽을 수 있다.

아래에 소개한 일본어 <가꾸(かく)>는 {그림을 그리다}라는 뜻과 {글씨를 쓰다}라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점에서 앞서 말한바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곧 문자를 적는 일이었다는 점을 입증해주고 있다. 이 일본어를 소리에 따라 영어식(로마식) 알파벳으로 고쳐 적어서 살펴보면 이번 회에서 설명한 <art> 및 드라비다어 <kīru>와 동일한 어휘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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