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 직면하면 과민반응 한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됐거나 일이 너무 벅차서다. 더구나 그 일이 희생은 물론이고 감옥까지 가는 일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 본심이 나온다. 오늘 성경말씀에서도 말씀하시는 예수와 그 말씀을 소화하지 못하는 제자 사이에 부조화와 긴장이 흐르고 있다.
목사도 설교를 위해 많은 수고를 하지만, 어쩔 때는 이 말씀이 예배용 언어가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간격이 있다. 설교자는 마음을 실어서 말하지만, 듣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자리가 중요하므로, 하나님의 말씀도 삶의 자리가 검증필터가 된다. 자기 형편에 따라 어떤 말씀은 수용하고 어떤 말씀은 거부한다. 그만큼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이 각박하고 치열하고, 또 그 속에서 생존해야 하므로 자신도 모르게,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이중의 기준을 가지고 살도록 강요받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님말씀은 현실에서 부딪히는 모순과 고민 사이에서 수용과 충돌을 반복한다.
오늘 성경말씀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예고이다. 예수는 자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세 번 예고하는데, 오늘 말씀은 그 중 첫 번째이다. 어떤 내용을 세 번 연속해서 말한다는 것은 그 말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용은 이렇다.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
 |
▲사진 출처: www.marypages.com | | |
이 말씀을 보면 예고의 내용이 매우 정확하다. 예수를 죽이는 자들이 누구인가와 사흘 후에 살아난다는 내용이 그렇다. 이렇게 예고가 정확한 이유는 사후(事後)예언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체험한 다음 그것을 사건보도형식으로 쓰지 않고, 마치 예수께서 그런 일을 예고하신 양 예언형식으로 꾸민 것이다.(『200주년 신약성서 주해』217쪽, 분도출판사)
오늘 말씀을 통해 알듯이,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대해 제자들은 흔쾌히 동의하지 않았다. 동의는커녕 강하게 부정했다. 그 모양은 제자들의 대표인 베드로를 통해 확실하게 나타났다.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하였다" 그런데 영어성경을 보면, 베드로와 예수의 행위가 '꾸짖다'로 똑같다. 우리말 성경은 제자가 스승을 꾸짖는다는 게 정서상 어울리지 않아서 항의한 것으로 고쳤지만, 실제 베드로는 예수를 꾸짖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왜 베드로는 격하게 반발하는가? 베드로는 바로 앞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 이십니다"(마가 8:29) 하지만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는 다른 그리스도였다. 베드로의 생각에 수난당하는 그리스도는 상상할 수 없었다. 영광의 메시아상만 잔뜩 기대하고 있는 제자들이기에 그리스도가 수난과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승리자 그리스도를 갈망한다. 민중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예수도 단호하다. 타협하지 않는다. 베드로를 사단이라고 꾸짖는다. 사탄의 원래 뜻은 피의자의 잘못을 낱낱이 밝히는 고발자(검사)이다. 공안검사와 그 하수인들이 얼마나 비열하게 피의자를 몰아붙이는지 경험자는 알 것이다. 사탄은 세상과 사람들이 하나님께 반역하도록 몰아붙이는 일을 한다. 현재는 사단이 이 세상의 주로 행세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정복되어 멸망할 악마이다. 신약성경은 사단이 쫓겨나는 때를 예수의 활동이나,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과 직결시킨다. 이처럼 예수의 수난과 부활예고는 사단의 권세를 추방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결정적 사건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니, 이것은 베드로 개인이 하는 일이 아니라 사단이 베드로를 조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말씀하는 것은 베드로 뒤에 사탄이 있음을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이 사탄이라는 소리를 들을 줄도 짐작도 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사탄이 됐다. 보통 우리는 자신의 판단과 결정, 행위를 신뢰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사탄의 지배 아래 들어가기도 한다.
지난 주 뉴스에서 보듯이, 돈 때문에 총으로 가족을 죽이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모든 사람을 재앙에 빠뜨리는 엄청난 결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유도 그들이 사단에 조종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예수도 베드로를 꾸짖으면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 하는구나" 했다.
 |
|
하나님께 좋은 것이면 사람에게도 좋다. 그 까닭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 없이 사람 일만 하면 그 결과는 사람에게도 좋지 않다. 죄성에 기반 한 이기와 탐욕의 결과는 사람을 재앙에 빠뜨린다. 그런 악순환으로 공중권세 잡은 자 사탄에게 더욱 예속되고 만다. 그러므로 사람은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사랑과 정의를 구해야 한다. 선을 지향해야 한다. 그래야 죄성을 견제하고 탐욕을 조심할 수 있다.(바로 이 부분이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말씀과 현실사이에 발생하는 고민과 충돌이다. 나는 사탄의 예속을 벗어나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지만, 사람들은 맞는 말이라고 동의하고 고개를 끄떡일 뿐, 뒤돌아서서는 자기들이 늘 살던 방식으로 그냥 살아간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따름의 조건으로 두 가지를 말했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했다.(십자가형을 받은 사람은 가로대를 지고, 사형장소로 끌려가서 자기가 지고 온 가로대에 팔과 다리가 묶이고 못에 박히어 현장에 이미 박혀 있는 세로대에 매달려서 서서히 죽는다.) 액면그대로 말하자면,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처럼, 죽으라는 말이다. 인간적으로 이 말에 좋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실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무시무시한 일이다.
그런데 계속되는 예수의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자도에 핵심인 따름의 조건을 말씀한 것으로 충분할 텐데, 연이어서 세 개의 단절어를 말씀한다.
단절어는 말씀 한 절 한 절이 서로 연관 없이 각각 따로 있는 말씀이다. 그런데 연관 없는 단절어를 계속 반복함으로써 그 뜻이 명확해졌다.
세 개의 단절어에 공통점이 있다.
35절-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36절-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37절-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각각의 단절어가 공통적으로 사람목숨을 말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람목숨을 어디에 써야 값진 목숨이 되는지가 저절로 나타났다.
진실을 말하자면, 우리가 믿음을 갖는 최종목적은 목숨에 관한 것이다. 목숨 말고 다른 것은 모두 부수적이다. 비본질이다. 제 목숨 값에는 턱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제 목숨 값에 어울리는 생을 살아야 한다.
예수는 이 세대가 음란하고 죄가 많은 세대라고 했다. 이유는 인자와 인자의 말을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자도 그 날이 오면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긴 사람을 똑같이 부끄럽게 하겠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예수시대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모두 정신이 다른데 팔려 있다. 오늘날 숱하게 목도하는 비인간화는 바로 정신을 다른데 팔아버린 대가다. 그래서 제 목숨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
▲대형 교회. 사람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대신, 예수의 십자가만 쳐다본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 | |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예수는 베드로에게 "내 뒤로!" 했다. (나를 따르라는 말이 그리스어로 내 뒤로! 이다) 그리고 제자와 무리들에게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했다.
허다한 사람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대신, 예수가 달린 십자가를 쳐다보고 동정하고 감상한다. 여기서 오는 폐단이 지금 기독교회의 모습이다. 개그언어로 풍자하자면, "그래서 뭐?"다. 참 목숨 값은 예수 십자가를 쳐다보는데 있지 않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데 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정도에 따라 자기 목숨 값도 달라질 것이다. 또 세상도 그만큼 달라질 것이다.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