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뉴스민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노동자의 삶과 노동, 투쟁을 연재합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힘을 모아낸 여성노동자, 노동조합은커녕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어려운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2주에 한 번씩 십여 차례 연재하고자 합니다. 제보와 문의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뉴스민 (070-8830-8187, newsmin@newsmin.co.kr)
김설현(가명, 40대 중반) 씨를 만나기로 한 평일 오후 저녁, 설현 씨는 약소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울리는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편이었다. 왜 아이들 저녁을 안 챙겨주고 밖에서 사 먹게 하느냐며 심술을 부렸다.
지난해 말,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과 가정 양립 수준이 높으면서 일자리 수요가 많은 직업으로 보험설계사, 간접투자증권 판매인, 임상심리사 등이 뽑혔다.
설현 씨는 12년째 생명보험회사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매일 오전 9시 팀장에게 하루 일정을 보고 한다. 어떤 고객을 만나 어떤 상품을 팔 것인지 구체적으로 보고한 뒤, 사무실에서 나온다. 하루 중 사무실에 있는 시간은 아침 회의 시간뿐이다.
그 이후 시간은 설현 씨가 “알아서” 일한다. 설현 씨는 “회사에서는 상품 만들어 놓고 팔라고 던져주는 것밖에 없다. 나머지는 다 우리가 해야 한다. 우리는 맨날 뛰어다니느라 발바닥이 부르튼다. 다들 설계사 차는 물 넣고 타는 줄 안다”며 농담 섞인 하소연을 했다.
계약을 성사하기까지 최소 5번은 고객을 만난다. 보험 상품 용어가 어려워 고객이 한 번에 이해하기도 어렵고, 다른 회사 상품과 비교해가면서 장점을 설명해야 한다.
그는 “계약 한 번 하려면 적어도 5번은 만나야 한다. 5번만 만나면 될까? 택도 없다. 가입설계서 하나 놓고 머리 터지게 설명해야 한다”며 “얼마만큼 보장을 받는지, 만기 시에는 얼마를 찾는지 이런 내용이 가입설계서 가지고 설명이 다 된다. 근데 사람들은 이거만 보면 잘 모른다. 보험료가 뭔지, 보험금이 뭔지, 주계약자가 뭔지부터 교육을 하고 상품을 설명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설현 씨는 보험금은 “죽으면 타는 돈”, 보험료는 “내가 낼 돈”이라고 설명한다.
보험설계사는 대부분 가족이나 친척, 친구, 그 주변 사람들을 고객으로 삼는다. 설현 씨는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기 위해 새로운 대학 경영자 과정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는 “아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고객을 넓혀 나가기 위해서 대학에 경영자 과정이라든지 그런데 들어간다. 우리 기수들 틈 사이에서 인간관계가 맺어지고, 그러면 거기다가 팔기도 한다”며 “그렇게 사람이 모여서 내 기수, 또 총동창회까지 생기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고객과 계약을 체결하고 나면, 고객이 보험을 해지하지 않도록 사후 관리도 설현 씨 몫이다. 명절이나 중요한 기념일에는 고객을 찾아가 작은 선물을 주기도 한다. 가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설현 씨에게 선물을 요구하는 고객도 있어 황당할 때도 많다.
설현 씨는 “명절 때 되면 큰 고객들은 다 챙겨야 하지. 명절 때는 주로 과일이나 사서 인사한다”며 “아무리 큰 계약을 해도 당연하다는 듯이 내놓으라 하면 해주기 싫다. 생일, 결혼기념일, 복날까지. 복날인데 수박 하나 안 주느냐는 말도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고객을 관리하기 위해 드는 비용은 모두 설현 씨 사비로 충당한다. 설현 씨는 “우리 연봉 1억 받으면, 5천은 쓴다는 게 이런 말”이라고 말했다.
급여는 보험회사에서 받지만 개인사업자
평생 고객에게도 ‘을’, 회사에도 ‘을’
설현 씨는 “보험설계사는 개인사업자다. 회사에서 급여를 받지만 개인사업자다. 한 개도 못 팔면 월급이 하나도 없다. 기본급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보험 한 건 계약할 때마다 회사는 설현 씨에게 수수료를 지급한다. 한 달 동안 계약 건수에 따른 수수료가 설현 씨 월급이다. 또, 계약에 대해 수수료를 일부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12개월에 나눠서 지급한다. 그러나 일을 그만두더라도 남아 있는 수수료를 주지는 않는다.
설현 씨는 “내가 오늘부로 회사를 그만두면, 남은 수수료는 안 준다. 이건 내가 일해서 받는 건데, 그럼 이건 줘야지. 고객이 유지가 되는 한”이라며 “이거 때문에 그만두고 싶어도 못 그만두는 거지. 당장 다음 달에 가만있어도 들어오는 돈이 250만 원이 넘는데. 그만두면 그게 공중에 떠버린다. 그 돈을 받기 위해서 또 계약을 받으려고 뛰어다니는 거지. 내가 살아있는 흔적을 내놔야 회사가 안 자르잖아”고 말했다.
계약을 체결하고 수수료 형태의 임금을 받지만, 고객이 계약을 해지하면 보험회사는 그 수수료를 환수해 간다. 설현 씨가 일을 그만두더라도 본인이 계약한 건이 해지되면 받은 임금을 토해내야 한다.
설현 씨는 “고객의 상황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10년을 유지해 온 고객인데 10년 뒤에 나는 회사를 그만뒀어. 그런데 고객이 자필서명 안 했다고 민원을 넣었어. 자필설명 안 하면 설계사 잘못인데. 고객이 악의적으로 그렇게 하면 나는 그 수당 내놔야지. 내 죽기 전에는 구상이 온다. 엄청나게 무서운 거다”고 말했다.
설현 씨는 그래서 청약서 하나하나를 목에 있는 실핏줄 하나하나라고 여긴다. 자필서명을 명확히 받아도 고객이 왕이 서비스업계에서는 악의적인 민원을 당해내기가 힘들다.
그는 “보험설계사는 한마디로 평생이 고객한테도 을이고, 보험회사한테도 을이다. 평생 을의 인생인 거지. 어느 한 군데서도 갑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보험설계사”라며 하소연했다.
보험회사의 부당 환수 문제는 이미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화재, 교보생명 등 27개 손해·생명보험사에 대해 “보험계약이 무효·취소되는 경우 기지급한 수당을 무조건 환수”한다는 조항을 시정하도록 했다. 고객 민원 제기로 인한 보험계약 해지가 보험설계사 탓이 아닐 경우에도 전적으로 보험설계사가 받은 수당이 환수되었기 때문이다.
설현 씨는 “보험회사를 관리 감독하는 곳이 금융감독원인데, 질의했더니 뭐라고 답했냐면 ‘혼자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떼거지를 모아 오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정확한 증거를 우리한테 주십시오’. 내가 그걸 거다 줘야 하나? 그걸 관리 감독하는 곳이 해야지. 보험설계사 급여체계는 어디에서도 관리 감독하는 데가 없다”고 말했다.
특수고용노동자 60%가 산재보험 사각지대
애매한 근무시간에 산재보험은 어떻게 적용할까
설현 씨와 같은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레미콘 기사 등은 근로기준법상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 이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데, 개인사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고용보험,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은 직장이 아닌 지역 가입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특수고용노동자는 40개 직종, 128만 명 정도이다. 이들 중 60%는 산재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일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가 의무적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산재보험 개정안이 상정도 되지 못한 채 이번 임시국회 내 처리가 무산되었다.
2008년 신설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특례조항으로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레미콘기사, 학습지교사 등 6개 직종의 특수고용노동자는 산재보험을 원칙적으로 적용해야 하지만, 이들은 산재보험 ‘적용 제외’를 신청할 수 있다. 또, 이들의 경우 산재보험료 전액을 사업주가 부담하는 일반 노동자와 달리 노동자와 사업주가 보험료를 반반 부담한다.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매우 낮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가입률은 고작 9.8%다. 보험설계사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평균보다 낮은 8.4%였다.
설현 씨는 “우리는 산재 같은 거 안 들어가지. 산재보다는 (회사에서) 일반 상해보험 들어주는 거 있는데, 그거 두 개 중에 선택하라 그래. 산재는 설명도 안 해. 이게 좋다고 한다”고 말했다.
보험회사도 보험료 부담이 없는 일반 상해보험에 가입하길 추천한다. 보험회사는 보험료 부담이 없을뿐더러 보험 상품을 하나 더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근무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탓에 산업재해의 범위가 애매하기도 하다. 설현 씨는 “우리 같은 사람을 산재로 해주는 것도 좋은데, 내가 볼 때도 명확하지 않은 게 산재처리를 할 경우에 어디까지 기준을 두고 적용을 해 주거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설현 씨는 보험설계사의 산재보험 적용을 위해서 명확한 업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재를 적용받으려면 시스템이 정해져야 한다. 회사 콜센터를 통하든지 지점장을 통하든지,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명확하게 스케줄을 보고해야 한다. 또, 우린 절대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그게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한편, 26일 국가인권위는 산재보험 적용대상을 모든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적용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고용 형태가 갈수록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상당수의 노동자가 헌법과 국제 인권기준이 명시한 노동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한 권고”라고 설명했다.
일과 가정 양립 수준이 높다는 보험설계사
시간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놀기만 할 수 없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설현 씨는 남편과 두 아이를 둔 가정주부로서 하루가 시작된다. 집에 도착하면 설거지, 빨래, 청소 등 미뤄놓았던 집안일을 한다.
설현 씨는 “이제 집에 들어가면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해놔야지. 그래야 내일 일 나간다. 다 해놓고 소파에 누워서 애니팡 한 판 하는데, 하다가 잠든다. 잠들면 우리 딸내미가 매일 ‘엄마!’이러면서 소리 지른다”고 말했다.
설현 씨는 고된 하루를 한 판에 60초짜리 게임을 하다가 잠이 든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생명보험설계사는 13만여 명이다. 그중 10만여 명이 여성이다.
설현 씨는 “보험설계사 일은 여자로서 정말 괜찮게만 하면 높은 소득도 올릴 수 있고 좋다. 내 시간이 누구한테 구애받지 않으니까. 만약 애가 아프다 했을 때 공무원이나 교사는 누군가에게 허락을 얻어야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잠시 애한테 달려갈 수 있는 얼마나 좋은 직업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장점을 부각해서 나한테 득이 되게끔 일을 하면 되는데. 영업이라는 게 참 쉽지 않다”며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보험설계사가 일과 가정 양립 수준이 높은 직업으로 뽑혔다는 소식을 들은 설현 씨는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는 “말은 그렇게 되지. 시간이 자유로우니까. 쉬어도 되지. 그런데 월말에는 어떡할 건데. 일 안 하고 급여명세서 받아보면 헐~ 할 거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개인사업자, 파트타임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워서 일과 가정 양립이 가능하다는 것은 어쩌면 정부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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