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면 또 모르겠지만..." 관공서 안내 8년차

[여성노동자, 말하다] (5) 관공서 안내원
뉴스일자: 2015년01월12일 10시45분

[편집자 주] 뉴스민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노동자의 삶과 노동, 투쟁을 연재합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힘을 모아낸 여성노동자, 노동조합은커녕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어려운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2주에 한 번씩 십여 차례 연재하고자 합니다. 제보와 문의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뉴스민 (070-8830-8187, newsmin@newsmin.co.kr)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안내 표지판을 한참 쳐다봤다. 건물 안이지만 세찬 겨울바람은 로비까지 따라온다. 한참을 들여다봐도 가야 할 부서는 몇 층에 있는지 찾기 어렵다. 그때 반가운 목소리, “어디 찾으세요?”.

한 관공서에서 일하는 이성경 씨(가명, 20대 후반)의 목소리다. 어느 부서라고 이야기하자, 곧장 “8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고 안내한다. 10여 층이 넘는 건물에 층마다 5~6개씩 부서가 있다. 그는 모든 부서의 이름과 위치를 기억하고 안내해 준다. 부속건물에 있는 부서까지 더하면 100개는 넘을 것 같다.

관공서 처음과 끝에 만나는 안내 직원

▲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합니다. 호텔 로비 전경. 호텔, 관공서 등에 들어서면 안내데스크가 있고, 어김없이 안내하는 노동자가 있다. 이들은 대다수 여성이다.

입구를 지나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 안내데스크다. 성경 씨는 이곳에서 8년째 일 하고 있다. 각 부서의 이름과 위치는 물론,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까지 꿰고 있다.

처음 입사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부서 이름 외우기와 건물 답사(?)였다. 조직 개편이 이루어질 때마다 성경 씨는 부서 이름을 다시 외워야 했다. 관공서 안내뿐 아니라 주변 지역 안내도 한다. 가끔 지나는 어르신들이 주변 건물 위치나 버스 정류장 등을 자주 물어온다.

성경 씨는 “건물에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부터 해서, 어떤 분들은 핸드폰 충전할 수 있는 데가 어디냐, 담배는 어디서 피워야 하느냐 이런 것까지 여쭤보시니까”라고 말했다.

일하는 중 성경 씨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어디 찾으세요?”와 “안녕히 가십시오”다. 높고 넓은 건물을 처음 찾아와 헤매는 시민들을 안내하고, 업무를 다 보고 나가는 시민들을 배웅한다.

관공서에는 주로 정부 관계자나 민원을 제기하는 시민들이 찾아온다. 그는 “술 먹고 오시는 분들, 노숙자분들도 많이 찾아오고, 무작정 누구 만나겠다고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다. 다 본인 불만이 이만큼 쌓여서 오시는 그런 분들이 많다. 어떤 분은 서류를 이만큼 들고 오시는 분도 있고, 정말 자주 와서 이제는 얼굴도 아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어느 백화점의 진상 손님 못지않은 민원인들 때문에 속상한 적도 많다. 성경 씨는 “우리가 아가씨니까, 어르신들은 좀 하대하는 부분이 있다. 음, 기분이 좀….”이라며 말을 끝맺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렸다.

그는 “예전에 선배들이 처음 일할 때 몇 번 울고 나면 단련된다고 했는데, 나도 처음에는 몇 번 울었다. 지금은 그냥 무덤덤하다”며 “가끔 보면 어떻게 자기 딸한테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은 분들도 종종 있다. 예전에는 다짜고짜 누구 보겠다고 와서 언성 높이면, 겁먹고 ‘어떻게 해야 하지’이랬는데, 지금은 잘 이야기해서 관련 부서로 안내한다. 그게 어떻게 보면 노하우가 생긴 거다”고 말했다.

관공서 앞이다 보니 종종 집회가 열리기도 한다. 청원 경찰이 있기는 하지만 1층에서 가장 먼저 그들을 대하는 이는 성경 씨다. 그는 “언성이 막 높아지고, 여기 기름 부어서 불낸다 그러고. 유리가 깨진 적도 있었다. 그러면 솔직히 무서울 때도 많다”고 말했다. 성경 씨는 혼자서 대응하기 어려울 땐 청원경찰에게 도움을 청한다.

1년마다 새로 계약하는 비정규직
결혼하면 그만둬야 할까 봐 불안하다.

성경 씨는 호텔외식서비스를 전공하고 졸업한 뒤, 이곳에서 일하기 전까지 호텔, 백화점 안내데스크에서 일했다.

그는 “호텔은 3교대로 풀 로테이션이니깐 몸이 정말 힘들다. 백화점에 있을 때는 진상 손님이 많았지. 여기도 힘든 민원인이 있기는 하지만 패턴이 다르다. 엄청 까다롭지는 않으니까 스트레스는 그때 보다 덜 받는다”고 말했다.

성경 씨는 백화점에서 일하던 당시, 백화점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되었다. 파견업체 소속이었던 그는 구조조정 대상에 가장 먼저 올랐다. 그는 “백화점도 지금 여기랑 마찬가지로 파견직이었는데, 구조조정 생기면 제일 밑에 파견직부터 잘려나가니까. 구조조정 때 잘린 케이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뒤 다시 찾은 이곳 역시 파견직이긴 마찬가지다. 성경 씨는 8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매년 새로운 파견업체와 계약을 새로 한다. 경력 숫자만 1년 늘어난 이력서를 매년 새로 쓴다.

성경 씨는 “8년째 일하고 있는데 소속감이 없다. 약간 이방인 같은? 업체도 1년에 한 번씩 바뀌니까 우리한테 크게 신경을 안 쓰고, 관공서에서도 업체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신경을 안 쓴다. 아마 90년대 IMF 이후로 안내데스크가 파견으로 넘어간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년 마다 새로운 업체와 계약을 하기 때문에 연차가 없다. 1년이 지나야 연차가 발생하는데, 1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일을 그만두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일 년 중 쉬는 날은 토, 일요일과 국정 공휴일, 여름휴가뿐이다.

그는 “빨간 날 빼고는 다 일하러 나온다”고 말했다. 아픈 날에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아예 안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지 않는 이상 나와서 일한다. 안 아프게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성경 씨는 아프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임금 수준도 매년 제자리걸음이다. 성경 씨는 “지금은 월 140만 원 정도 받는다. 처음 일할 때 100만 원도 안 됐었는데, 이걸 임금이 올랐다고 해야 하는 건가? 안 오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확 오른 것도 아니고 최저임금 오르는 딱 그만큼만 오르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성경 씨와 함께 일하는 동료 박소연 씨(가명, 20대 후반) 역시 “파견직이다 보니 혜택이 별로 없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라며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결혼 후’이다.

소연 씨는 “2년 전에 인터넷에서 채용하는 것 보고 지원해서 일하고 있는데 정년보장이 안 되니까. 시집가기 전까지는 일할 수 있는 직업? 오래 하려면 할 수 있는데, 자연스럽게 결혼하면 그만두는 분위기”라며 결혼 후를 불안해했다.

곧 결혼을 앞둔 성경 씨는 더 걱정이 크다. 그는 “결혼하고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결혼하면 다 그만두는 분위기가 있다. 여기 소속도 아니고, 근무연수 보장이 안 되어 있으니까. 직원이면 또 모르겠지만, 우리는 파견직이라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상시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2007년부터 있었다. “직원이면 또 모르겠지만”이라는 성경 씨의 말이 실현될 것만 같았던 날이 있었다.

그러나 성경 씨는 “그건 우리는 좀 예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건 여기 일하시는 계약직 직원분들 말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아예 소속이 파견업체 소속이니까”라며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지난 2012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무기계약직 전환지침은 상시지속적 업무의 판단기준으로 “이전 2년 이상 지속했고 이후 2년 이상 지속이 예상되며, 연간 10개월 이상 계속되는 업무일 것”을 제시했다.

성경 씨와 소연 씨는 한 시간씩 교대로 로비에 나와 업무를 본다. 매일 아침 9시 출근, 저녁 6시에 퇴근한다. 주 5일 근무, 공휴일을 빼고는 항상 나와 일하고 있다.

왜 여성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나

통계청이 발표한 2014 한국의 사회동향에 따르면, 여성이 가정과 관계없이 계속 취업해야 한다는 비율이 1998년 29.0%에서 2013년 50.7%로 늘었다. 그러나 여성의 취업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육아부담이 48.5%로 가장 높았다.

지난해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일도 아이도 포기 못 하는 나,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라는 안건이 상정되었다.

당시 게스트로 나온 방송인 박지윤 씨는 “육아휴직을 쓰면 불이익을 혹시나 받을까 걱정된다. ‘이래서 여자들이랑 일하면 안 돼’라는 말을 처녀 때부터 알게 모르게 듣다 보니 육아휴직을 마음껏 못 쓰는 게 아닐까 싶다”며 “출산 후 3개월간 휴직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눈치 보느라 많이 못 쓰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출산, 육아 휴가 제도가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현실. 그마저도 1년 또는 2년 마다 고용주가 바뀌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에게는 애초에 기대할 수도 없는 제도다.

미국 출신 방송인 타일러 씨는 이 안건을 두고 “박지윤 씨가 남자라면 비정상이라고 할거냐? 남자에게는 ‘너 진짜 욕심인 거 아니야?’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왜 여자는 (일과 아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지”라고 꼬집었다.

성경 씨와 소연 씨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

▲출처=JTBC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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