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시나무가 넘실거리던 동산에는 23호 송전탑이 섰다. 평화를 기원하는 장승과 텃밭이 있던 평화공원은 야전 막사처럼 울타리가 섰다. 소보리가 푸르게 파도치던 들판은 잿빛 밑동만 남아있고 언덕을 따라 조경나무로 쓰인 ‘아름다운 각북, 살기 좋은 삼평리’는 검붉은 빛깔로 변했다. 지난 7월 11일 새벽 기습적으로 시작된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의 송전탑 공사.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주변 풍경도 바뀌었다.
풍경과 달리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수없는 역경에도 여전히 한전과 싸움을 계속하는 이들이 있다. 삼평리 송전탑 반대 주민 20여 명과 연대자 들이다. 25일 오후 3시 송전탑 공사현장 옆, 소보리를 베고 난 논 위에서 삼평리 성탄절 평화 예배가 열렸다. 대구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생명위원회, 인권위원회 대구경북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가 주최한 예배에는 삼평리 주민 포함 90여 명이 모였다.
오랜만에 연대자를 맞이하는 삼평리 주민들은 분주했다. 추어탕을 한 솥 넉넉히 끓이고, 새로 지은 농성장의 온열기를 틀어놓았다. 음식 준비는 주민 중 가장 연소자인 이은주 씨가 맡았지만, 최고령자인 조봉연 할머니도 손님맞이를 함께 거든다. 하나둘 농성장에 연대자들이 도착했고, 잠시간 귤을 까먹거나 담소를 나누며 몸을 녹인 이들은 오후 3시가 되자 예배장소로 나왔다.
정재동 대구경북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목사는 성탄절 말씀 강론에서 “상황이 유리하지도 않은데 축하와 예배는 왜 드리는가. 송전탑에 반대하다가 자기 땅에서 끌려나간 사람들의 성탄절과 전기 장사를 위해 억누르고 몰아내는 한전의 성탄절이 같은가”라고 화두를 던지며 “둘 다를 위해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 가진 자와 빼앗긴 자 모두를 감싸려는 게 아니다. 해방의 날, 땅을 빼앗긴 자가 되찾는 날, 잃었던 것을 회복하는 날을 선포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 빈기수 씨는 “공사 시작 이전에도 경찰과 한전, 그리고 용역과 싸워왔다. 산에서 아래까지 용역에게 할머니들이 질질 끌려 나오고 하는데도 동네가 작다 보니 방송사도 오지 않더라”며 “2012년 공사가 중지됐다가 7월 공사가 재개됐다. 누구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를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해한다. 하지만 밀양 청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도 폭력적인 송전탑을 세울 수 없도록, 우리 세대에서 이 문제를 끝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1년 전에 열렸던 예배에도 참여했던 경산시 더함교회 송진실 씨는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게 쓴 편지에서 “추위가 걱정되지만, 추위보다 무력감이 더 걱정됐다. 1년 전에도 청도를 찾은 것은 생명 존중과 보호를 위해서였다”며 “주변 사람들은 이미 송전탑이 완공되고 뭘 할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런가 싶었지만, 값진 평화와 정의에 대한 가치를 잃고 싶지 않았다”고 전했다.
성탄절 분위기를 내기 위해 노래 공연이 이어졌고, 주최 측은 주민들에게 내복과 목도리를 선물도 했다. 또한, 백창욱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 공동대표에게는 ‘마가 사람 상’을 수여했다. ‘이름도 없이 묵묵히 할 일을 해서 모두를 빛냈기 때문’이라는 취지에 백창욱 공동대표는 “그렇게 이름이 없지는 않다”고 으스댔고, 좌중에서는 “묵묵하지도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마지막으로 변홍철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은 “12월 28일부터 한전이 시험 송전을 한다. 송전탑이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의 송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거짓말로 밝혀졌다”며 “신고리 1, 2호기의 전기를 연결해 시험 송전한단다. 아무것도 끝난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송전탑을 뽑아낼 때까지 계속 싸워나갈 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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