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역사 자갈마당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 왔나

공창에서 사창으로, 집중 단속 지역으로
뉴스일자: 2014년10월10일 19시00분

성매매특별법 시행 10주년, 권영진 대구시장은 자갈마당 폐쇄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후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자갈마당 폐쇄를 요구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공창제 폐지령’ 70, ‘윤락행위 등 방지법’ 50, ‘성매매특별법’ 10년이 지난 오늘, 자갈마당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 왔을까? 

자갈마당의 본명 야에가키조(八重垣町), 후비들을 가두어 두는 곳
 
조선 후기 대구는 서문시장, 약령시, 남문시장 등 큰 시장이 상권을 이루고 있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서울은 이미 일본 상인의 유입이 많고 지대가 비싸졌고, 부산 개항으로 부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1900년대 초, 큰돈을 벌고자 하는 일본 상인들은 내륙도시인 대구에 점차 진출했다.
 
1903년 경부선 철도 부설을 시작하면서, 대구에는 그 이전의 두 배나 되는 일본인들이 거주하게 된다. 대부분 역을 중심으로 읍성 북쪽에 모여 살면서, 주변 지역에 철도용 부지를 매입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매입한 땅을 개발해 일본인 중심의 상권을 확장해 나갔다.
 
일본인 거류민단은 철도용 부지뿐 아니라 읍성 북서쪽 일대(지금의 도원동 일대)에 유곽용 부지를 매입해 유곽을 조성한다. 상인, 철도 노동자 등 대부분이 남성이었던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집장촌을 만들면 막대한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1908야에가키조(八重垣町)’라는 유곽이 들어서는 데, 이것이 지금의 자갈마당이다.
일제시대 자갈마당 모습 (출처 - 홍성철,『유곽의 역사』, 페이퍼로드, 2007, 74p.)
야에가키조(八重垣町)란 일본 수진전(秀眞傳)’ 화가(和歌)에 나오는 지명이다. 초고대왕이 신궁에 쳐들어가 일본 여왕 히미코를 굴복시키고, 천조대신의 왕비 12명 중 8명을 후비로 삼아 가두어 둔 곳이 이즈모(出雲)의 야에가키(八重垣)이다.
 
야에카키조(八重垣町)는 당시에도 주변에 자갈이 많았다하여 자갈마당이라고 불렸다. 자갈마당은 1916년 일본 공창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해에 유곽으로서 모습을 갖추게 된다.
 
권상구 시간과연구소 소장은 야에가키조란 마초적 남성 정복자들이 여성을 가두어 대상화시키던 일본 전설에 나오는 것이라며 이 이름이 훗날 도원동(桃園洞)’으로 여전히 여성을 대상화시키는 지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업주에 의한 여성 종사자의 성매매 피해는 당시에도 존재했다. 1929619일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야에카키조(八重垣町)의 창기 6명이 학대를 당하고, 화장품과 의복값을 주지 않고 시치미를 떼는 포주 때문에 집단 파업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929년 6월 19일자 조선일보 기사
 
공창제 폐지 이후 사창가로 남은 자갈마당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떠나면서 일본인 상인을 상대로 영업하던 자갈마당은 침체기를 맞았다. 그러나 1946년 공창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자갈마당은 꾸준히 영업을 한다. 1950년대 이승만 정부는 자갈마당 근처의 큰 연못을 메우고 시장으로 바꾸려 했지만 이내 실패했다.
 
1961년 박정희 정부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하여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법의 시행령이 8년이나 지난 1969년에서 제정되는 등 성매매 피해 근절 노력보다 윤락행위 특정 지역을 설치하고, 관광특구를 지정하여 집장촌을 관리하면서 오히려 특정 지역의 성매매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자갈마당이 지금과 같은 유리방 형태가 된 것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둔 1986년이었다. 당시 자갈마당뿐 아니라 부산 완월동, 인천 옐로하우스, 서울 미아리 등 각 지역의 집장촌은 환경개선작업을 실시한다.
 
좁은 길 대신 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 뚫리고, 넓은 유리창안에 여성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유리방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붉은색이나 노란색의 조명을 단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이러한 윤락가 정비사업으로 집장촌은 대형화되고, 유리방으로 정비하지 못한 소규모 업소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1991년 정부는 미성년자보호법에 따라 청소년출입제한구역을 발표한다. 사창가, 유흥가 등에 청소년의 출입을 제한시키는 것으로 자갈마당 역시 청소년출입제한구역에 포함됐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집중 단속 대상이 된 자갈마당
 
2004년 제정된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를 한 경우 폭행·협박 위계 등 보호·감독 관계 이용하여 성을 파는 행위를 하게 한 경우 감금 등 방법으로 성매매 강요 성매매 목적 인신매매 등을 처벌할 수 있다.
 
집장촌은 성매매 산업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으로 성매매특별법의 주요 단속 대상이 됐다. 2004년 자갈마당 여성 종사자 등 200여 명은 단속 유예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여성 종사자들의 성노동권 존중과 생존권 보장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성매매특별법 단속으로 여성 종사자들을 범죄자 또는 성매매피해여성으로 규정짓고, 당사자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터전을 빼앗긴다는 이유였다.
 
2004년 여성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자갈마당에는 59개 업소, 350명의 종사자가 있었다. 여성가족부와 대구여성인권센터의 2013년 대구지역 성매매업소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자갈마당의 업소 수가 줄어들다가 2010년부터 업소 수와 여성 수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현재 자갈마당은 48개 업소, 250여 명의 여성 종사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업소에 고용된 여성들은 대부분 20대 초반~40대 초중반이다. 대구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긴급구조지원 이외에도 직업소개업소와 자갈마당 업주 등에 의한 성매매알선 및 강요, 폭행, 강제 성추행, 협박 등으로 형사 고소한 피해사례가 최근까지 있었다.
 
지난 922일 발족한 대구자갈마당폐쇄를위한시민연대는 자갈마당 업주, 건물주, 토지주의 불법 행위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해 자갈마당을 폐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여성 종사자들의 이주와 전업을 위한 긴급지원조례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10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자갈마당이 하루아침에 폐쇄될 수 있을까? 여전히 자갈마당을 터전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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