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들어온 데가 경관이 최고 좋은데 들어와서 정말 아쉬운 부분입니다. (중략) 원전이 들어오면서 맥이 끊겨 버리고 또 그러니까 해안도로가 다 죽어버리고 상권이 다 죽어버린 거예요. (중략) 전에는 관광코스로 들어오던 데인데 원전 들어오고 나서는 안 들어온단 말이죠.”(51쪽)
“저희들이 지금까지 계속 투쟁하고 탄원하는 목적이 뭐냐 하면 원자력이 안 들어오고 지금 예를 들어 다른 공장이나 소득증대시설이 들어와 있다고 하면 여기 땅값이 천만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56쪽)
“돈의 노예가 된 거죠. 조금이나마 의식 있는 사람들 측면에서 보면 참 비참합니다. 사람이 돈이 있다가 없어지면 돈에 대한 걸 맹목적으로 쫓아가게 되잖아요. 이 지역 사람들이 그렇게 된 거에요. 그러니 한수원은 계속 돈을 가지고 사람들을 조종하는 거예요. 건설업자들은 여기에 계속 원전이 들어와야 경기가 살아난다 이런 식으로 하고...”(103쪽)
 |
▲<위험한 동거>- 강요된 핵발전과 위험경관의 탄생 (이상헌, 이보아, 이정필, 박배균, 알트, 2014) | | |
<위험한 동거>는 우리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공감되지 못했던 핵발전소 주변지역의 깊은 속내를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 핵발전소가 처음 상용화된 시작의 시점과 당시 주민들이 과연 어떤 생각으로 이 위험한 ‘물건’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증언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간과해 왔고 무엇을 은폐해 왔으며, 무엇을 극복하고 무엇을 넘어서야 하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한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노후핵발전소의 사고 가능성을 우려하고, 핵발전소의 증설을 반대하고 있기도 하다. 에너지와 국가시스템 속에서 핵발전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거대담론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핵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토해내는 삶과 증언은 우리가 무심코 누리는 이 문명의 바닥에 무엇이 깔렸는지 직시하게 한다.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고 무엇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깊은 성찰을 위해 이 책은 소중한 전달자이기도 할 것이다.
경제개발의 논리에 핵발전소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전기를 만드는 공장’으로 알려져 환영하는 분위기에 건설을 맞은 고리, 중수로 핵발전소가 막연히 핵무기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며 북한에 대응한 국가의 정책이려니 믿고 따른 경주 월성, 농어업이 대부분인 지역에 ‘무공해 전기 공장’이 들어온다며 반긴 영광,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곳에 소득향상과 삶의 질의 개선을 가져올 이미지로 각인돼 자식들에게 돼지고기라도 실컷 먹일 수 있는 고마운 존재였던 울진.
가난을 극복하며 경제발전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 핵발전소가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듣게 된다. 집단이주와 재이주를 통해 공동체가 파괴되었지만 낙후된 지역경제는 여전하며, 생존을 위해 한수원의 지원금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아프게 고백하고 있다.
 |
▲경주 월성지역 핵발전소 인근 지도 [사진=알트] | | |
한수원이 주는 보상금은 타지에 가서 새로운 생계를 마련하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멀지 않은 곳에 새 터전을 마련한 고리마을 주민들이 옮긴 신리 골메마을 주민들이 신고리 발전소 착공으로 재이주를 겪게 되는 사연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안타까운 일이다. 몇 년 살다가 이사하면 그만인 도시와는 달리 수십 년 동안 농토와 집터를 일구며 사는 시골의 삶에 이주 문제는 커다란 고통일 수밖에 없다.
핵발전소 건설이 고시되고 나면 10년이 지나도 건설될 때까지 비가 새도 보수조차 못하고 살아야 한다. 원전주변지역 지원금이란 게 있지만, 공공재에 투입되고 실제 주민들의 삶은 오히려 기운다고 하나같이 증언한다. 그다지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지원금을 둘러싼 갈등만 증폭된다. 5킬로미터 반경 안에라도 더 가깝고 먼 거리에 따라 지원금을 나누는 방식에 불만이 해소되지 않는다. 피해의 경중보다 인구가 많은 곳에 지원금이 쏠리는 현실이 갈등을 더 부추긴다.
핵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에 정부와 한수원이 한결같이 한 말은 ‘공장이 들어오니, 지역이 더 잘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건설특수까지 덤으로 얹어지니 주민들은 상권 확대와 인구유입으로 기대에 부푼다. 하지만 단기간의 건설 특수를 지나면 오히려 주변 상권은 공동화되고 일부지역은 어업으로 이어가던 생계마저 떠나와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어려움을 호소하게 되는 일도 발생했다.
무엇보다 가장 경관 좋은 곳에 자리 잡은 핵발전소로 인해 해안도로가 죽고 바닷가 상권이 죽어버렸다. 고리와 월성, 영광과 울진 모두 그 지역의 지금은 사라진 당시의 아름다웠던 경관을 아쉬워한다. 예전 그대로 보존하든지 최소한 다른 공장이 들어왔다면 지금보다 훨씬 경제적으로도 나은 곳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대부분의 주민들이 하고 있었다.
핵발전소와 함께 도시로 송전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송전탑의 문제도 최근 큰 사회적 갈등으로 제기되었다. 발전소가 있으면 그 곳으로부터 대도시까지 수백 개의 송전탑이 건설된다. 송전선 경과지인 마을에서는 송전탑으로 인한 생존권 파괴를 호소하고 있고, 대표적인 투쟁지역이 밀양이다.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대도시로 송전하기 위한 765kV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10년을 싸워온 밀양은 한국에 전기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의 문제와 별개로 대규모 발전시설과 중앙집중식 전력공급이 갖는 송전과정의 불평등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미국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없는 세상>에서 인류가 사라진 후에도 지구상에는 약 3만개의 핵탄두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 테지만, 정작 이 핵무기들보다 더 위험한 것은 사용할 때보다 100만 배는 강화된 방사능을 가진 폐핵연료들이라고 말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 세계 450여개의 핵발전소 자체가 핵무기보다 훨씬 더 지구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이 사라진 후에도 인류역사보다 훨씬 긴 시간을 남아 지구에 영향을 미칠 방사능의 막강한 위력은 한반도 2014년 현재까지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까?
<위험한 동거>는 먼 미래의 지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차치하고라도 핵발전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동시대인들의 고통과 눈물을 희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인식의 출발점은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과 대도시 주민들 모두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위험이 공간적으로 매우 불평등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이것이 은폐된 채 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세월호침몰사고와 같은 대형사고와 같이 ‘위험’은 실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어 누구나 언제든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나아가 위험경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 그리고 그들과의 연대와 단결을 통해 단절된 사회적 관계의 회복을 시작으로 위험과 불안에 공동으로 맞서고 극복할 것을 제언하고 있다.
그렇다. 무심코 전기를 사용하는 다수의 소비자들이 생산과 소비의 과정을 성찰하고, 이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의와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웃에 침묵하는 수혜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전기와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의 전 과정에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정의로운 견해를 가지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위험한 동거>가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소중한 목소리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2014, ‘위험한 동거’를 끝낼 응답의 출발선에 설 것을 믿는다.
박혜령(영덕핵발전소 유치반대투쟁위원회 집행위원장)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