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콧인듯 보이콧 아닌듯-EBS국제다큐영화제 이스라엘 특별전에 부쳐

[기고] EIDF 이스라엘 특별전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며
뉴스일자: 2014년08월08일 17시17분

이번 달 25일부터 열리는 EBS국제다큐영화제(이하 EIDF)에 내가 스텝으로 참여한 영화 <아무도 모른다>가 상영된다. 초등학교 교사인 내가 우연히 기회가 닿아 영화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된 것은 여전히 꿈만 같은 일이다. 그래서 이번 EIDF는 내게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이 프로젝트 이후에 또 영화를 만들 것도 아니고 잠시나마 영화인들과 어우러지는 이 축제가 내게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이겠는가. 그런데 정작 공개된 EIDF의 내용은 내 마음을 차갑게 식히는 것들이었다.

▲ 25일 개막되는 EBS 국제다큐영화제 (사진=EIDF)

이번 EBS국제영화제는 제11회로 ‘다큐, 희망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총 10개의 섹션이 열린다. 근데 그중 이스라엘 특별전이 섹션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또, <세계 다큐멘터리의 최전선, 이스라엘>이라는 주제로 컨퍼런스도 예정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특별전이라니!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이 영화제를 후원도 하고 있었다.

지난 7월부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침공했고 지금도 공습은 연일 계속되고 있다. 18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으며 그 중 민간인 희생자가 대거 포함되어 있다. 희생된 어린이는 이미 6천 명이 넘었다. 가자지구는 2007년 이래 이스라엘에 의해 계속 봉쇄됐으며 트위터의 한 16세 소녀는 ‘내가 겪는 3번째 전쟁입니다.’라며 가자 지구에서의 자신의 일상이 된 공습을 중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특별전이라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EBS국제다큐영화제를 ‘문화적으로 보이콧하겠다’고 밝혔다.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과 몇몇 상영관을 중심으로 보이콧 선언은 늘어가고 있다.

▲ 이스라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 [출처=www.gaza.ch]

침묵은 폭력을 더 잔혹하게 숙성시킨다

내가 참여한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중고등학교에서의 학생 간 폭력(이하 학교폭력)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가제)학교: 부서지는 사람들’ 프로젝트 중 피해자 인터뷰 일부를 간추려 만들어진 단편이다. 글이든 사람이든 영화든 이름-제목을 짓는다는 것은 굉장히 신중한 일이다. 그래서 이 단편 다큐멘터리의 이름을 지을 때에도 연출자와 한참을 고민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목이 <아무도 모른다>이다.

하지만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정말로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고 어쩌면 누구나 다 절절히 경험한 일들이다. 누구든 다 아는 이야기. 하지만 그럼에도 피해자들은 혼자였다.

학교 폭력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것은 다른 학생들이 방관하고만 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이 또 다른 가해자이며 동조자라는 것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공분하고 있는 윤일병 사건에서도 목격자는 44명에 달했지만, 그 누구도 ‘상관하기 싫어’ 신고하지 않았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 그것이 폭력을 두배 세배 더 잔혹하게 숙성시키는 일이지 않은가. EIDF가 이스라엘 다큐멘터리를 특별전으로 조명하면서 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해 침묵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그 순간에 이스라엘 다큐멘터리를 보며 감동하는 것은 과연 누구의 희망을 말하는 일인가. 혹은 희망을 말할 수 있기는 한가.

문화나 교육이 정치와 무관하다는 옹색한 거짓말

이협희 EIDF영화제 사무국장은 <PD저널>과의 통화에서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후원도 상징적 차원일 뿐 작품 선정과 무관했고, 민족주의나 시오니즘과 전혀 관계없는 작품들이 선정됐다” 말했다. (관련기사:“EIDF, 이스라엘 대사관 후원 특별전 논란” ) EBS가 관여하고 있는 문화계나 교육계에서 정치적 상황과 무관한 선택이라는 말은 굉장히 흔히 쓰이는 핑계다. 정치적으로 무관할 것이 강요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문화나 교육이 사상, 정치, 특정 입장과 무관하기란 불가능하다. 영화라는 매체는 더욱 그러하다. 영화는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삶을 담고 세상을 담는 게 영화지 않는가. 우리는 상관없어요- 라는 옹색한 거짓말 보다는 오히려 영화의 결로, 문화의 측면으로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태를 함께 고민해보자라는 컨퍼런스가 열렸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 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시위. 침공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팔레스타인평화연대 페이스북에서 갈무리)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덩야핑 활동가는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EIDF가 그동안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좋은 작품을 많이 상영했던 것으로 아는데, 올해는 팔레스타인 관련 다큐가 전혀 없다. 이스라엘 대사관이 후원처이니 별로 놀랍진 않지만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스라엘 점령 현실 담지 않은 다큐 상영 반대” ) 덩야핑 활동가의 말은 그대로 내게도 적용된다. EIDF에서 제작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계약의무사항이다. 보이콧 선언이 이어지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냥 상영하기엔 벗어날 수 없는 학교에서 고립감과 절망에 맞서 투쟁한 우리 영화의 주인공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피해자들을 카메라 앞에 세운다는 것은 당신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앞으로 계속 기억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그리고 그것이 학교 폭력을 고민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는 시작이라고 말했었다. 팔레스타인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것과 무엇이 다를까. EIDF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에 대한 몸피켓을 두르고 다닐 생각이다. 그리고 촉구할 것이다. EIDF가 이스라엘 특별전에 대해 성찰하는 태도를 보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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