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알리고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예술의 역할"

[인터뷰]6월 출범한 전방위예술행동네트워크 이현순씨
뉴스일자: 2014년07월08일 15시01분

2012년 여름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랐을 때, 희망버스가 달려간 곳에서는 예술가들은 난장을 벌였다. 무거운 투쟁 앞에서 한 판 신명을 벌인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이에 김진숙 지도위원은 ‘웃으며 끝까지 투쟁’하자는 구호로 화답했다.

송전탑 반대 싸움을 벌이는 청도군 삼평1리에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낮은 곳의 목소리를 전하고 상처를 보듬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 예술가들이었다. 송전탑과 싸움하는 할매들의 소식을 접한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지난달 23일 이름하여 ‘전방위예술행동네트워크(전방넷)’를 발족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모인 이들이 약 스무 명. 미술, 연극, 문학, 영상 등 분야도 전방위인 대구지역 예술가들은 왜 삼평리를 첫 예술행동 근거지로 정했을까. 전방넷에서 활동하는 이현순 대구민예총 이사장은 “긴 싸움을 하느라 지친 할머니들이 투쟁 이후 삶에 잘 적응하도록 돕자는 데서 출발했다”고 출범 취지를 설명하며 “활동방향은 현장에 대한 맞춤형 파견예술”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전방넷은 청도군 삼평리 송전탑 반대 농성장 주변에 가렌다를 설치하고, 발족식을 가졌다. [사진=전방위예술행동네트워크 제공]

전방넷의 맹아, 평화콘서트와 삼평리장승굿제

스무명에 달하는 예술가들이 갑자기 삼평리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전방넷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삼평리의 송전탑 투쟁이 대구지역에 알려지기 시작한 2012년 말부터 하나둘 마을을 드나들었다. ‘연극교육연구소 도도’의 이현순 이사장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2013년 3월 1일 마을에서 열린 평화콘서트에서는 직접 쓴 연극시를 낭송했고, 그해 6월 대구 도심에서 삼평리 할매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공연도 벌였다.

▲이현순 대구민예총 이사장은 지난해 3월 1일 삼평리에서 열린 평화콘서트에서 연극시를 낭송했다. [사진=뉴스민 자료사진]

그렇게 알음알음 예술가들이 삼평리를 드나들면서 올해 3월 1일에는 마을에서 ‘장승굿제’를 열었다. 주민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장승을 만들어 세웠다. 이 가운데 영상활동을 하는 이들이 모여 ‘삼평리 미디어팀’이 꾸려졌고, 이 힘이 모여 전방넷 결성까지 이르게 된 것.

연극교육연구소 도도 소극장에서 이현순 이사장을 만났다. 그녀는 첫 번째 예술행동에 대해 명료하게 말을 풀었다.

“삼평리 장승제하면서 예술가들이 모여 뭐라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매주 화요일마다 4차례 마을에 들어갔다. 할매들과 몸풀기도 하고,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것도 해 보고. 몇 차례 다녀오니까 6월 말이 됐고, 이 정도 됐으면 본격적으로 활동해야 할 때라고 판단해 망루에 가렌다를 설치하고 그 자리에서 발족식을 열었다. 송전탑과 싸우고 난 이후 할매들이 삶의 현장에 적응하는 걸 돕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이현순 이사장은 “투쟁방법은 대책위에서 결정하는 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투쟁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상처는 어떻게 할까. 예술의 역할이 그런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보듬는 데 있다고 봤다”고 말한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작품을 만드는 대신, 할매들과 함께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전방넷 결성 전부터 벌여왔다. 노래하는 박동인 씨는 대나무로 카쥬(피리)만들기를 했고, 연극자리 소풍의 곽미나 씨는 삼평리 햇살을 받아서 전기를 얻는 태양광 전지를 만들었다. 이현순 이사장은 할매들과 몸풀기를 수차례 진행했고, 연극치료를 공부하는 예술가는 할매들과 일종의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올해 3월 1일 삼평리에서 열린 장승굿제. [출처=뉴스민 자료사진]

예술가 개인작업을 배제하지도 않았다. 김미련 미디어아트 작가는 삼평리지킴이 여신 목판을 만들어 할매들과 함께 찍어냈다. 예술가들이 모여 망루에서 농성장까지 가렌다도 이었다. 예술가들의 이런 활동에 할매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할매들의 최대 관심사는 송전탑 공사 강행이다. 다른 것에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몸 일으켜서 사진찍으러 가는데 3주가 걸렸다. 경찰들 오면 찍으라고 하고, 서로를 찍어주기도 하고. 예술가들이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속도 조절을 안 하면 그게 제일 힘들 거다. 할매들의 피로도를 계산해가면서 활동을 해야 한다. 글 모르는 할매들에게는 그림책 읽어주기, 가나다라 글놀이 이런 것도 중요한 예술 활동이다. 그러면서 개인 작품 활동도 하는 장기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속도를 맞추는 것, 그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예술가들이 현장에서 활동을 벌일 때 가장 어려운 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현순 이사장은 속도 조절과 투쟁 이후의 꾸준한 연대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할매들의 최대 관심사인 공사강행을 앞두고는 어떤 활동을 벌일 생각일까.

“법원이 한전이 낸 농성장 철거 대체 집행을 받아들이면 며칠 안에 철거 움직임이 있을 거다. 주민들을 포함해 대책위 활동가들도 그 전날부터 농성장에 모여 있을 텐데,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24시간 정도를 거기 모인 사람들이 견뎌야 한다. 그 시간과 공간에서 전열도 다지고, 의욕도 북돋는 일명 ‘폭풍전야 문화제’를 열 생각이다”

“인류 역사에 예술이 끼어들지 않은 데가 없지 않으냐”

▲전방넷은 삼평리 농성장에서 여러 예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출처=전방위예술행동네트워크]

삼평리가 시발점이 된 전방넷이지만, 삼평리에서 끝낼 생각은 아니다.

“국가폭력에서부터 작게는 마을의 일까지 전방넷의 활동에 포함할 것이다. 주로 대구경북권 예술가들이라 대구경북이 중심이 될 텐데, 예술이 무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할 생각이다. 예술의 첫 번째 역할은 진실을 알리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아픈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 예술이 끼어들지 않은 데가 없지 않으냐”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인 터라 다음에 뭘 하자고 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픈 사람이 있는 곳에서 예술로 함께한다는 방향은 정했다. 각자의 예술가들이 의견을 내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게 목표다.

이현순 이사장뿐만 아니라 전방넷 구성원들 상당수는 대구민예총 회원이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활동력이 약해진 민예총의 새로운 시도로 보는 이들도 있다.

이와 관련해 이현순 이사장은 “공동체 교육활동, 정책 제시, 예술가 교육, 대안예술, 현장참여 등을 민예총의 역할로 본다. 현장참여예술도 민예총의 역할 가운데 하나다. 민예총의 사업으로 제안한 것은 아닌데 개별적 예술가를 모았더니 반 정도는 민예총 회원이더라. 민예총 현장참여예술소위원회에 민예총 이사가 반 정도 들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상훈, 신동재, 이보나 등 젊고 현장참여 예술에 대한 고민을 가진 이들이 있어 전방넷 결성까지 이르게 했다”고 말한다.

아쉬움도 있다. 이현순 이사장은 활동을 막 시작한 20대 예술가들을 만나기 어렵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젊은 예술가 있으면 소개 좀 해 달라. 참여자들 모으는 데 나도 오십 문턱이고, 젊은 예술가들과 연결고리가 많이 없다. 대학생들도 전방넷에 몇몇 들어와 있는데, 이런 현장을 보고 충격받은 이들도 있었다. 50대가 중심이 되면 몇 년 못 가잖아. 두리반, 평택처럼 예술가들이 우르르 끓다가 빠지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전방넷 출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취임한 권영진 대구시장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거대 자본을 투입해 소비에서 끝나는 예술이 아닌 보통 사람의 삶에서 숨 쉬는 예술. 전방넷의 작지만 소중한 출발에 기대를 걸어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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