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바람타는 정치로는 대구 야권 발전 없다”

[인터뷰] 재선 성공한 정의당 김성년 수성구의원 당선자
뉴스일자: 2014년06월05일 21시40분

6.4지방선거는 보수 양당의 잔치로 끝났다. 여당은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광역단체장 8석을 차지했고, 야당은 세월호 침몰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반사이익을 두둑이 챙겼다.

대구지역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진보정당이 오랜 시간 공들여 기반을 다진 지역에 기초의원 후보를 냈고, 진보정당 후보는 자신이 수년간 고군분투했던 지역에서 낙선했다.

정의당 김성년 당선자는 자신을 ‘살아남은 자’라고 이야기한다. 3인 선거구(수성구 라선거구)에 유일한 진보정당 후보로 출마해 무리 없이 당선해 재선에 성공했다. 당선이 결정된 당일 선거 사무실에 화환 몇 개가 놓여있다. 그 사이로 분주하게 남은 사무를 처리하던 김성년 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당선을 예상했나?
새벽 4시쯤 확정됐다. 확신할 수는 없었으나 개표 초반에 느낌은 있었다. (웃음) 이곳은 어쨌든 새누리당 텃밭이고, 나는 지역 유지도 아니고 이곳에 오래 산 사람도 아니다. 야권 지지자 표를 받아야 하는데 다른 야권 후보가 나왔으면 어려웠을 거다. 선거운동 기간 유권자를 만나니 반응이 초선 때보다 낫다는 느낌은 받았다. 

재선에 성공했다. 당선 소감을 말해 달라.
당선이 확정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다 글을 올렸다. 선거 기간이라면 자신 있는 모습을 보였겠지만, 오늘은 마냥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행히도 경쟁 조건이 괜찮아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수도권을 포함한 다른 지역이나 대구의 진보정당 후보의 결과를 보고 참담했다. 정의당은 수도권 현역의원 몇 분 빼고 거의 다 낙선했다. 대구에서 진보정당 구의원이 5명이었는데 지금은 3명이 됐다. 나는 살아남았지만, 지역에서 진보정당 운동의 토양은 더욱 황폐해졌다. 살아남았지만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재선까지 성공한 과정을 어땠나.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진보정당에 몸담은 지 10년이다. 시지에 살기 시작한 것도 10년이다. 부끄럽지만 주거지를 전략적으로 선택했다. 그나마 시지에 진보정당 지지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그래 봐야 2~4% 정도였지만.

또, 제1야당이 없는 곳이기도 했다. 새누리당 텃밭인 대구에서 한 선거구에 두 명 이상의 야당 후보가 당선되기는 어렵다. 지금은 여러 지역에서 김부겸 효과 등으로 새정치연합에서 후보를 많이 냈는데 예전에는 없었다. 진보정당은 미약하나마 어디서든 활동해 왔지만, (구)민주당은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사람을 키우고 기반을 마련하며 정치활동을 한 바가 없다.

4년 전 선거할 때 첫 번째 공약이 고산지역 도서관 짓겠다는 것이었는데 잘 됐다. 도서관은 젊은 학부모나 학생들만 관심 있을 줄 알았는데, 선거를 하다 보니 모든 세대가 관심 갖더라. 새누리당은 여기서 구체적인 공약을 내지 않는다. ‘발전하는 시지’라는 식으로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는 구체적인 공약을 내세웠다. 또 4년간 의정활동의 작은 결실인지 지역 관변단체나 토호세력도 기본적인 칭찬을 하더라. 평가가 나쁘진 않은 모양이다.

지난 의정활동을 평가하자면?
의회 내부 활동을 평가하면, 초반 2년은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못했다. 나 빼고 다 새누리당이나 그 관계자들이니. 당시 의원들은 진보신당에서 왔다고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내가 먼저 형님, 어르신 하며 잘 스며들었다. 의정활동 후반기쯤 다른 의원들도 내 주장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됐다. 의회 내에서 수성구청이나 공무원사회에 없던 사고방식을 공급하는 역할도 했다.

외부 활동은 성과만큼 하지 못했다. 지역 주민과 동떨어져서 단순히 선언적으로 무엇을 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직접 부딪혀서 함께 호흡하고 조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 탓에 외부 활동을 성에 찰 만큼 잘하진 못했다. 향후 4년간 재선 의원으로서 다시 집중해야 할 영역이다.

진보신당으로 초선에 당선됐다. 정의당으로 옮겨간 이유는 무엇이었나.
당시 큰 단위의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는데 잘 안 됐다. 이후 노회찬, 심상정 같은 스타정치인들이 당시 통합진보당으로 옮겼갈 때 같이 가지 않았다. 2012년 총선에서 대표 정치인들이 빠지니 참패했다. 선거 치르고 보니, 당의 모습이 비전을 제시하거나 난관을 뚫겠다는 의지가 부족해 보였다. 어떻게든 새판을 짜야 했다. 정당은 권력을 쟁취해야 한다. 그래서 진보신당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진보정의당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국참당 통합 등 거부감이 있긴 했지만, 진보정당 운동을 해야 한다는 동기가 컸다.

대구에서 정의당 인지도가 떨어진다. 특히, 지방선거에서도 이렇다 할 의제를 선명하게 제시하지 못한 것 같다. 선거에서 정의당의 전략을 무엇이었나. 
정의당은 유력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한 정당운영을 하고 있다. 선거 운동도 그런 식으로 해서 문제다. 유력 정치인들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대표주자가 필요하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이 중앙과 소통해 당의 비전과 노선을 갖춰야 하는데 그런 연결고리가 부족하다. 중앙당은 동의 안 하겠지만, 당명을 봐도 알 수 있듯 기본적인 틀이 정립돼 있느냐는 의구심이 들긴 한다. 상황에 따라 너무 요동친다.

당 공직자들은 대부분 지역에서 한두 명에 불과해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당은 지자체에서 활동하는 공직자를 지원해서 지방의회에 영향을 끼쳐야 하는데 그런 게 너무 없다.

제1야당은 대구에서는 다른 진보정당이 고군분투하던 지역을 골라서 후보자를 내는 것 같다. 
그 경험을 2년 전 총선에서 했다. 김부겸 후보가 수성구 갑 지역에 나와서 굉장히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나와 같은 당에 있던 이연재 후보(전 민주노동당 대구시당 위원장)은 수성구 총선에만 세 번 나왔다. 수성구 갑에 야당은 이연재밖에 없었는데, 지난 총선에서 갑자기 김부겸 씨가 이 곳에 후보로 나왔다. 당시 우리 당 후보는 피를 봤다.

그걸 이번에 황순규, 김수민 후보가 당했다. 나는 살아남긴 했지만, 마음이 무겁다. 이번 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은 김부겸 후보 덕분에 나름 선전했다. 대구에 새정치연합이나 그쪽 출신 후보가 10명 넘게 당선됐고, 진보정당은 3명이다. 지난 선거보다 야권이 더 많다고 하는데, 단순한 평가다.

시간이 지나고 김부겸 효과가 사라진 후에도 새정치연합에서 정치하는 분들이 이 지역을 지키고 있을까? 냉정하게 봐야 한다. 황순규, 김수민 후보 떨어트린 분들이 다음에도 선거하러 나올까? 여기서 계속 정치활동 할까? 여기가 새누리당 일색이다 보니 야권은 사람을 못 키웠다. 몰표 주는 주민만 탓할 일이 아니다. 주민 다수가 새누리 아닌 사람에게 찍고 싶어도 찍을 데가 없다고 한다. 그런 환경이 만든 결과일 수도 있다. 나와 봐야 안 되니 누가 하겠나.

그래서 유시민 효과 있을 때, 김부겸 효과 있을 때 한 번씩 나왔다가 사라진다. 그런 모습을 대구시민이 계속 봐 왔다.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지만, 선거 끝나면 코빼기도 안 보이는 야권은 더 무책임하다. 주민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구실을 야권 스스로가 주고 있다. 선거가 다가 아니라 그 후에 그 지역에서 어떻게 활동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도 인정받는다. 바람만 이용하는 선거하는 분들 때문에 야권 정치가 더 침체되고 외면 받고 있다. 누가 책임지나.
 
지역에서 진보정당 의원으로 활동하는 게 힘들겠지만, 힘내 달라. 진보정당이 지역 활동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주민과 직접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수성주민광장이라는 풀뿌리 단체가 있다. 7년쯤 됐다. 수성구를 무대로 한 풀뿌리 단체는 이 단체가 처음이다. 민노당 시절 당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주민과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었다. 지금은 드나드는 주민이 많다. 주민이 직접 만드는 인터넷 방송국도 있고, 청소년 북카페도 있고. 수성구와 시지에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모임을 꾸려가고 있다. 또, 시지에는 공동육아 하는 분들도 있다. 삶에서 시작해 공동체를 확장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진보정치가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연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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