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투표함, 1층으로 옮겨간 황당한 사연

장애인 외면하는 사전투표소, 또 하나의 문턱
뉴스일자: 2014년05월31일 19시27분

64지방선거를 맞아 처음 실시된 사전투표. 하지만 장애인 참정권 보장은 외면해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조사 결과 3,506곳의 사전투표소 가운데 1층에 설치된 사전투표소는 325곳으로 집계됐다. 이는 9.27%에 불과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사전투표소라는 또 하나의 문턱 앞에 좌절해야만 했다.

장애인 참정권을 고려하지 않은 사전투표소 탓에 참정권 침해뿐 아니라 인권 침해 사례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10분이면 끝날 투표 시간이 무려 130분이나 소요되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휠체어에 탄 채로 들려서 투표소에 올라가는 일도 일어났다. 또, 투표함을 임의로 이동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구 대명1동 주민센터에서 사전투표를 마친 김시형 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투표소는 2층에 있었고, 1층 임시기표소에서 기표 후 직접 투표를 요구하자, 선관위 직원은 투표함을 1층으로 들고왔다. 10여분 만에 투표를 마무리했지만, 시형 씨는 투표함을 마음대로 옮겨도 되는지 의문스러웠다.

▲김시형 씨가 직접 투표를 요구하자, 선관위 직원, 투표참관인은 2층에 있던 투표함을 1층으로 옮겨왔다.

시형 씨는 “투표함을 임의로 옮겨도 되는지 모르겠다. 투표소를 1층에 설치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장애인 유권자를 고려하지 않은 선관위의 무책임한 태도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투표함 이동과 관련해 현장에 있던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참관인과 선관위원의 감시하에 이루어져 문제없다”며 “전산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주민센터가 제일 효율적이라 어쩔 수 없었다. 처음 시행하는 사전투표라 장애인 유권자를 다 고려하지 못해 죄송하다. 다음부터는 요구를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투표함 임의 이동에 문제는 없을까. 이동 과정에서 투표함 바꿔치기가 나올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구시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함 이동과 관련해) 선관위로 보고된 것이 없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선관위가 답변할 의무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장애인 참정권 보장에 소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처음 시행하는 사전투표라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사전투표를 마치고 국가인권위로 진정이 들어올 것이고, 문제 지적이 들어오면 그때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사전투표소 탓에 1층에 설치된 임시기표소.

장애인지역공동체 이민호 활동가는 사전투표를 위해 30일 오후 3시께 대구 신천4동 주민센터에 갔다. 하지만 투표소는 지하에 있었고, 그는 계단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선관위 직원은 신분증 인증과 기표를 대리인이 하면 안 되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민호 활동가는 비밀투표가 보장되지 않는 대리투표를 거부했다.

지속해서 직접투표를 요구한 지 40여 분이 지났을 무렵, 선관위 직원은 1층에 투표소가 설치된 효목2동으로 옮겨갈 것을 제안했다. 이민호 활동가는 이동을 위한 장애인콜택시 비용을 선관위가 부담해줄 것을 요구했고, 선관위 직원은 이를 수용했다. 어렵게 이민호 활동가가 효목2동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돌아오니 시각은 5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민호 활동가는 “비장애인은 10분이면 끝날 사전투표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130분이나 걸려 마쳤다. 선관위의 무책임함 때문에 개인적인 시간을 소모하게 됐다”며 “사전투표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선관위는 이민호 활동가가 효목2동 주민센터로 이동할 때 탄 장애인콜택시를 긴급지원으로 호출했다. 그 시각 콜택시를 이용하려던 다른 사람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이민호 활동가는 “선관위가 이런 문제를 예상했다면, 미리 준비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사전투표를 위해 달성군 화원읍사무소를 방문한 이준희 씨도 2시간의 사투를 벌이고서야 투표를 할 수 있었다. 투표소는 3층에 있었다. 1층에 임시로 마련된 기표소에서 기표한 이준희 씨는 투표함에 직접 투표하고 싶었다. 대리인이 투표용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 비밀투표가 지켜지지 않을 우려도 있었다.

선관위 직원은 투표함을 이동해도 되는지 문의했고,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자 선관위 직원과 투표참관인 등 8명의 남자가 전동휠체어를 탄 준희 씨를 들고 3층까지 올라가 투표를 마무리했다. 3층까지 오르며 준희 씨는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투표소에 접근할 수 있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한편, 장애인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은 일은 경북 경산에서도 일어났다.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장애인 당사자 5명이 사전투표에 참여하였으나 보행이 가능한 장애인 2명만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나머지 3명 중 2명은 선거관리위원회의 안내를 받아 경산시내 사전투표가 가능한 서부2동 주민지원센터에서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하용준 소장은 “예전보다는 다소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장애인들의 참정권 보장은 미흡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장애인 참정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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