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저녁밥을 지으며 야심차게 준비한 김치찌개를 밥상 위에 올렸다가 생소한 말을 들었다. 옆지기는 ‘자박하게 끓였으면 좋았을텐데’라고 말했고, 나는 처음 듣는 말이라 나는 어리둥절했다. 물었더니 국물이 조금만 있는 상태란다. 이내 밥을 먹다 말고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누르니, ‘건더기나 절이는 물건 따위가 겨우 잠길 정도로 물이 차 있는 모양’이라는 뜻의 ‘자박자박’이라는 부사임을 알았다.
건더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푹 잠긴 국, 건더기가 국물을 반쯤 머금고 있는 찌개나 전골. 조리법에 따라 음식 종류가 나뉜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종류는 다를 테다. 또, 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할 것이다. 오래 푹 삶아내는 곰국이 아니라면, 국보다는 찌개와 전골이 만들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너무 끓이다가는 짠맛만 남아 결국, 물을 더 붓고 끓인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음식점에서 만난 전골에도 육수를 더 부어달라는 요구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간을 맞추는 일, 건더기가 듬뿍 들어간 자박자박한 찌개와 전골을 만드는 것이 요리사가 있는 이유다. 우리가 요리사에 가지는 기대이기도 하다. 나처럼 빨리 찌개를 짠하고 완성해 밥상에 내놓겠다는 욕심만 부렸다가는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김칫국이 되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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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flickr.com/photos/ayustety/12843364/] | | |
그리고 이튿날 옆지기가 재요리한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기레기(‘기자 쓰레기’)의 등장이 떠올랐다. 유통기한 지난 인스턴트 ‘3분요리’처럼 다수 언론은 정부의 보도자료를 찍어냈고, 풍부한 건더기는 온데간데없이 빨간 국물만 보이는 ‘김칫국’처럼 다수 언론은 진실을 찾아내 알리려고 하지 않았다. 고발뉴스, 뉴스타파, jtbc 등의 활약에 시민들은 그나마 위안을 찾았고, KBS로 드러난 기성언론에는 거침없는 비판을 퍼부었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입소문을 타고 찾은 허름한 음식점에서 만족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허름한 식당보다는 인테리어가 좋거나, 널리 알려진 요리사가 있는 음식점을 들어갈 때 기대감을 가진다. 그런데 높은 연봉과 다양한 취재장비가 있고, 게다가 TV수신료까지 받고 있어 광고에 대한 통제가 적은 ‘뉴스 식당’은 형편없는 음식을 내놓고야 말았다. 게다가 유전자 조작 식재료를 넣으라는 식당 주인의 지시, 이를 묵묵히 따른 요리사. 누가 이 식당에서 밥을 먹을까.
음식 맛이란 것이 즉각적인 반응이 오듯, 뉴스를 만드는 언론에 대한 반응도 즉각적이다. 과거처럼 다양한 음식이 없다면 ‘나 혼자 맛이 없다고 여기는 건가’라며 자신을 의심할 수도 있지만, 수천 개의 ‘뉴스 식당’이 만들어졌고, 다른 손님들과 실시간 비교가 가능해진 순간 언론에 대한 평가는 맛집 찾기와 다를 바가 없어졌다. 물론, 시뻘건 색깔에 자극적인 맛이면 만사OK라는 데 길들어 있다면 다른 맛을 느낄 수가 없다. 늘 가던 19번 식당만 갈 수밖에. 하지만 종종 상한 재료로 대충 끓인 찌개를 내어놓는 9번, 11번 식당에 갈 수가 없어 19번 식당만 찾는 이에게 뭐라고 한들 소용없다.
하지만 ‘기레기’라는 별명을 그들에게만 붙일 것이 아니었다. 아직 국가공인요리자격증을 따지 않았기 때문에 손님들이 이해할거라는 안일함으로 요리를 만들던 나 자신도 포함해야 한다. 자박자박한 찌개를 끓일 줄 몰랐던 나는 ‘왜 내가 만든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인가’라는 항변과 부실한 요리 도구를 탓해왔다. 하지만 1급호텔에서 쫓겨나 조그만 식당을 열어 자박자박한 찌개를 끓여내는 다른 요리사를 바라보며 건더기라는 진실이 잘 익은, 아주 맛깔나는 김치찌개를 끓여야겠다고 반성을 해본다. 어제 삼류 요리사가 오늘 갑자기 일류 요리사가 된다는 것은 환상이겠지만, 김치찌개를 주문했는데, 김칫국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생뚱맞게 김치전을 내어놓는 요리사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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