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환경에 따라 진화하지요. 진화에 실패하면 멸종입니다. 진화란 종이 생태계에 맞춰 변화하는 것이지요. 다른 종과의 공존이 목적입니다. 서로 조화롭게 맞물리는 상태를 찾아가려는 거지요. 그런데 인간 진화는 여타 생물들과 달랐습니다. 인간은 선택하는 동물이니까요. 인간들은 자신들의 생태계를 직접 건설했습니다. 종교, 이념, 언어, 풍습, 학문 같은 것들입니다. 바로 문화의 탄생이지요. 사람은 다 다릅니다. 그러니 문화도 지역과 시대마다 다른 게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이 당연함이 불화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어떤 문화가 더 타당한지 의심이 생겼지요. 때로는 피 튀기는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문제제기를 했고, 집단화되었습니다. 바로 사회단체들입니다. 그들은 문화편견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지요. 우리가 아는 유엔아동기금, 유니세프도 바로 그중 하나입니다. 국적, 이념, 종교를 초월해 어린이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지요.
1994년, 유니세프의 긴급 사안은 방글라데시 여자아이들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의 어린이 성차별은 심각했지요. 많은 여자아이가 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먹는 걸로 차별을 받기도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해자가 부모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부모들은 그게 학대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남아선호는 방글라데시 종교 문화의 일부였거든요.
아이의 시선에서 부모들에게 문제제기해 줄 것, 여자아이들에겐 건강한 역할 모델이 될 것, 무엇보다 가정에서 교육이 가능할 것, 유니세프는 이런 사항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매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결론이 나왔지요.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만화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유니세프는 각국의 만화 제작자들을 모아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제작자는 동남아시아 내에서 선발하기로 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들 국가가 후진국, 혹은 개발도상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술, 장비는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발달하지 않았으니, 그걸로 돈을 벌려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유니세프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를 데려왔지요. 애니메이션계의 큰형님, 월트 디즈니였습니다. 이들은 인력을 파견하고, 장비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또한, 애니메이터 양성을 위한 교육 과정을 개설해 후학을 양성했지요. 관심 있는 사업가들이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기업이라 할 수 있겠지요? 모두가 인류애를 위해 뭉쳤고, 그것이 서로의 동력이 되었으니까요. 인간 중심의 문화 생태계 출현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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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미나> 표지, 미나는 여성의 교육권을 찾아주려 노력한다. [출처=유니세프] | | |
애니메이션 <미나>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주인공은 아홉 살입니다. 방글라데시 여자아이들과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지요. 미나는 용감합니다. 힘없는 방글라데시 여자아이들의 속마음을 읽어줍니다. 현실에서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미나가 사는 세계에서는 가능하지요. 미나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어째서 여자는 집안일만 해야 할까? 왜 학교에 갈 수 없을까? 그뿐인가요? 조혼, 위생, 친구관계 등의 문제에도 실용적 해법을 제시해 줍니다. 재미에 교훈까지, 애니메이션 <미나>의 파급력은 강력했습니다. 지금 남아시아 지역에는 <미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랍니다.
<미나>의 성공으로, 유니세프와 함께 일한 만화가들은 다른 어린이 문제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통받는 어린이가 있다면 어디든 달려갑니다. 남아프리카의 성폭력, 고용착취, 에이즈, 일본의 쓰나미, 파키스탄의 지진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며 어울림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요.
인간은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그 속에서 종종 진화와 발전을 혼동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발전으로 인간이 고통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건 진화는 아닐 겁니다. 당연히 공존도 아니겠지요. 다양한 문화 속에서, 인간이 진정 진화해 나갈 방법은 무엇일까요? 당찬 아홉 살 소녀 <미나>가 그 답을 알려주는군요. 그것은 인류애라고요. 사랑, 말입니다.
강기린
만화도 문화다, 오락 그 이상의 만화,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강기린은 척척팩토리의 서브라이터이자 만화평론가입니다.
척척팩토리는 만화 창작집단으로 네이버에 <7번국도아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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