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김전한의 스토리텔링 (3)

이야기 폐인
뉴스일자: 2014년04월05일 20시24분

[글쓴이 주] 예전에 어른들은 말씀하셨죠. 글쟁이가 되면 배 곯으며 살 팔자라고요. 그러나 요즘 세상은 반대가 되었지요. 뭔 일을 하든지 글쓰기를 못하면 굶어죽기 십상입니다. 바로 스토리텔링의 시대이기 때문이지요. 글쓰기, 즉 이야기 만들기가 세상의 근원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 원고는 이 시대의 화두인 스토리텔링에 관한 강의 노트입니다.

4. 이야기 폐인

옛날 옛적 왕이 살았지요. 왕비의 불륜행각을 목격해버린 불행의 사나이였지요. 치솟는 분노감을 가둘 길이 없었지요. 밤마다 여자를 불려 들어서 죽였지요. 여자들은 공포에 떨었겠지요. 어느 날 한 여자가 불려 들어갔지요. 이때, 여자가 외쳤지요.
"잠깐만~!"
여자는 분노의 사나이에게 이야기 한 자락을 들려주었지요. 꽤 재미있었지요. 죽이기엔 아까 왔지요. 분노의 왕은 여자에게 말했지요
“한 자락만 더 해줘~”.
여자는 밀당을 했겠지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내일 저녁에 Be continue!”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천일 하고도 하룻 밤 동안 이어졌지요. 천일 하고도 하룻 동안 이 남자는 이야기 폐인이 되었고, 드디어 자기 상처를 보듬을 수 있었지요. 물론 그 끝은 해피엔딩이었겠지요. 세헤라자데, 바로 그 유명한 천일야화의 탄생인거죠.     

조선후기엔 도서대여점이 성행했더군요. 갑갑한 유교주의 사회에 여성들의 유일한 숨 쉼 공간이었지요. 대가집 마님들부터, 일반 민중들까지 식음을 전폐하고 이야기책 폐인들이 속출하였지요. 급기야 사회문제까지 되었다고 하네요

전기수(傳奇叟) 라고 들어보셨나요? 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장터였지요. 장터엔 항상 이야기꾼이 있었지요. 꽤 인기 직종이었지요. 요즘으로 치자면 스탠드 개그맨이나 만담꾼과 비슷 했겠지요. 그들의 직업명이 전기수 였었지요. 바로 전문 이야기 꾼 말입니다.  

조선과 일본에 천주교가 처음 전파되던 시절 숱한 참극의 역사가 있었지요. 차마 필설로 옮기기 힘든 참혹한 상황이었지요. 그런 역사를 들여다 보노라면 늘 의아했지요.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 지옥상황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했을까?

어쩌면 성경의 편집방식 때문이지 않았을까? 유교주의의 그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이야기 형식으로 진행되는 성경내용 때문에 신의 영역에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본적이 있었지요. 왜냐하면 저도 어린 시절, 성경을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나기 때문입니다. 정말, 너무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 책 이었거던요. 

5. 이야기는 운명을 거스른다.

좀 거창한곳으로 옮겨볼까요? 창조신화 하나쯤 없는 민족은 세상에 거의 없을거예요. 왜 사람들은 창조신화 만들기를 좋아했을까요? 이야기가 있어야만 안심이 되었던 거겠지요. 이야기를 통해서 그 민족의 존재가치를 가늠했던 거겠지요.
그렇지요. 세상의 시작은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지요. 성경의 처음도 그러하고 단군할아버지도 그러하고 남미, 북미, 아프리카, 아랍 할 것 없이 모두가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지요.   

그런데 창조 신화들은 들여다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패션이 좀 비슷해요. 참 신기한 일이죠. 서로 시대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게다가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야 해”
라는 문법체계를 만들어서 교환교수들 파견하지도 않았을텐데, 어찌 그리도 유사할까요?

그 패턴이란게 대략적으로 이러하지요. 일단 세상은 어둠과 혼돈이예요. 신은 빛을 불러내지요. 어둠과 혼돈을 정리하지요. 물과 산과 나무와 등등...세상에 필요한 구색들을 갖추지요. 세상이 대충되었다 싶은데 어딘가 허전한거죠.  뭔가 2% 부족해요. 창조자는 팔짱끼고 가만히 내려다 봐요.
“흐음...뭔가가 부족해...그게 뭘까?”
갸웃거리다가
“앗~! 맞다”

자신을 닮은 인간을 만들자. 이건 성경의 창세기도 그렇고, 단군신화도 그러하며 기타 여러 지역의 창조신화가 거의 엇비슷하더군요. 인간이 있어야만 세상이 딱 떨어진 작품이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창조자는 대리인을 내 세우죠. 대리인에게 던져주는 선물들의 메뉴도 비슷해요. 바람이니, 곡식의 씨앗이니, 농사짓는 법이니 매우 실용적인 선물들이죠.

그런데 이런 실용성과는 거리가 있는 엉뚱한 것을 신주단지처럼 모신 곳이 있더군요. 수메르 지역에 엔키라는 대리인이 있었지요. 엔키의 주 무기는 운명을 자기 맘대로 주무르는 능력이 있었던거지요. 건너 동네에, 인안나 라는 신이 후발주자로 등장했어요. 문명을 일으키려고 슬슬 프로젝트를 진행했지요. 인간세상의 문명사회를 신장개업 하려니 필요한 게 어디 한 두개 였겠어요? 농사법도 익혀야 겠고, 수리시설 토목도 연구해야 될테고, 곡식 종자 연구도 해야겠고, 상당히 분주했겠지요.

그러나 인안나의 관심은 그게 아니었어요. 문명을 세우려면 운명을 주도해야 한다는 사실에 초점이 모아진 거예요. 실용성보다는 이념에 집중을 한 것 이지요. 이래저래 수소문을 했겠지요. 건너 동네 엔키의 소문을 들은거지요. 엔키가 술을 좋아한다는 중요정보를 입수했지요. 인안나는 엔키에게 콜을 때렸죠.

“언제 우리 술 한잔 하입시다요~!”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엔키였기에 당장
“ 빙고~!” 했던거지요.

둘은 치어스를 외치며 딩가 딩가의 밤낮을 보냈지요. 인안나는 엔키의 똥구멍을 살살 간질이며 오만가지 아부를 떨었죠. 기고만장해진 엔키는 취중허언을 마구 쏟아내었겠지요.
“까짓것, 운명 그거 줄게... ”
인안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운명주도권을 훔쳐서 돌아갔죠. 술이 깬 엔키는 방바닥을 두드리며 제 머리를 벽에 찧으며 후회했지만, 운명주도권은 인안나에게로 넘어갔지요. 그후 엔키와 인안나의 싸움이 시작되었겠지요.
“ 운명 돌려 달라”
“ 못 준다”
달라, 못준다.......... 뭐 그건 각설하고....

문명의 시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놀랍지 않습니까? 문명은 물질(바람, 곡식, 농기구 등등)이 아닌 메타포 였다니. 이념, 이야기의 시작이었다니 말입니다. 이건 매우 의미있는 부분입니다. 문명의 시작은 물질이 아니라, 운명에 도전하는, 저항하고 역행하는 정신에서 시작 된다는 걸, 평범하지만 만고불변의 진리를 이 신화는 담고 있네요.

자아, 그렇다면 이번엔 중국 쪽을 한번 들여다 볼까요? 여기에도 창조신의 대리인이 있었지요. 창조신 반고는 여와라는 여인네를 대리인으로 내 세웠어요. 이 여인네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세상에 나온거죠.  심심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지요. 왜냐? 꽃하고 놀 순 없잖아요, 곰이랑 사랑 나눌 수도 없고, 벌꿀이랑 춤출 수도 없으니까요. 물론 처음에 그렇게 놀았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인간이란게, 인간하고 놀아야지, 혼자서 그러고 있으라면 그것 만한 형벌이 어딨겠어요.

심심함에 몸살을 떨던 여와는 마침내 흙으로 인간을 만들기 시작 했죠. 해보니 재미가 있었던거지요. 슬로건을 벽에 턱하니 붙이기 까지 했겠죠.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흙으로 정성스레 빚고 다듬고 조이고 영혼을 불어넣고, 애무하며.... 이걸 매일 단순 반복하다보니, 이 여인네 또 다시 심드렁해지는 거예요. 전형적인 작심삼일 스타일이었나 봅니다.

대량복제나 해볼까? 새끼줄을 꼽니다. 진흙탕 속에 새끼줄을 휘휘 젖습니다. 새끼줄을 주욱 당겨 올립니다. 흙들이 묻혀 올라옵니다. 대충 툴툴 텁니다. 하나씩 떨어져 나간 흙덩이가 인간이 됩니다. 이러니, 못난 놈, 찌그러진 놈, 울퉁불퉁한 놈, 결점 투성이의 인간들이 마구 쏟아집니다. 불량품 대량 생산이었던 거지요. 개중엔 운 좋아서 반듯한 인간도 가끔은 반짝거렸지요. 바로 인간 불평등의 시작이었던 거지요. 잘난 인간, 못난 인간, 반짝 인간들은 자기 의지가 아니었던 거지요. 단지 운명에 맡길 수 밖에. 그런데 가만 생각해봅시다. 이것은 인간에게 근원적인 불평등의 재앙이었을까요? 다양한 인간세상의 풍요로움일까요?

위의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운명은 그저 던져진 것일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거스르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는가?

이 중요한 화두에 대한 해답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이 이야기 속에 담겨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야기 폐인은 어느 시대의 유행이 아니라는거죠. 이야기는 인간의 기본 욕망이라는 거지요. 식욕, 성욕, 수면욕. 이 세 가지 욕망은 인간이 생존해 가는데 절대적인 요소이지요. 이것 없이는 인간의 생존자체가 없어지니까요. 이 세 가지를 인간 기본 욕망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야기가 없다고 사람이 당장 죽는 것은 아니지요. 이야기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요. 그런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이 이야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네요. 그리고, 이야기 욕망에 너무나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 넣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최근에 밝혀진 인간 유전자 배열중에 FOXP 라는 것이 눈에 띄네요. 이 유전자 배열은 인간의 언어와 관련된 유전자이지요. 실험에 의하면 어린 아이들도 스스로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이 유전자 배열과 관련이 있다고 하네요. 즉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할 능력을 타고 났다는 거지요. 이야기는 우리 일상의 단순한 여흥 정도가 아닌 것이 밝혀진 셈이지요. 이제는 인간의 삼대 욕망인 식욕, 수면욕, 성욕에 하나를 더 첨가해야 겠네요. 바로 이야기 욕망 말입니다. 


김전한
1991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당선
2008.03~ 동아방송예술대학 영화예술과 겸임교수
2005년 영화 녹색의자 (각본)
2007년 영화 69년, 달의 궁전 (각본 및 연출)
2011년 영화 다슬이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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