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만화산책] (8) 새로운 영웅의 탄생. <부르카 어벤져>

슈퍼 히어로의 공식을 깬 부르카 어벤져
뉴스일자: 2014년03월25일 14시30분

제가 학교 다닐 땐 두발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귀밑 3센티가 규정이었죠. 당시 저는 존재감이 없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튀고 싶은 생각이 누구보다 강렬했습니다. 어느 날 머리 뒤통수에 당시 유행하던 '뽕'을 좀 집어넣어 봤죠. 하필이면 그날 악명 높은 영어 교사가 복장 검사를 할 게 뭡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가치중립적인 교사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교사의 죽도는 제 뽕을 사정없이 뭉갰습니다.

그리고 날아온 한마디, "니가 일진이야?" 뽕은 일진이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는 학생과 일진만이 있었죠. 저는 그런 공식이 싫어 학창시절이 끝나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런 공식은 사라지지 않는 겁니다. 오히려 공식이 아닌 게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죠. 학교를 마치면 직장을 얻어야 하고, 직장을 얻으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하면 애를 낳아야 하고, 애를 낳으면 결혼을 시켜야 하고…. 이 모든 게 공식이었던 겁니다. 대부분 사람이 동의하는 것, 그러므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인생살이가 쉬워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바로 그게 포인트였습니다. 쉬워진다는 것. 존재감 없음을 극복하기 위해 머리에 뽕을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보다 뽕은 일진이라고 생각하는 게 훨씬 쉽지 않겠어요? 교사는 저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그는 선생님이 아니라 교사이니까요.

공식은 복잡한 대상을 기호로 처리합니다. 기호는 간단합니다. 그러나 사람살이는 절대 간단하지가 않죠. 복합적인 판단 과정 없이 공식의 법칙만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도그마의 탄생이죠. 니체식의 표현으로 하자면 바로 비극의 탄생인 것입니다. 도그마는 다양성을 파괴합니다. 다양하지 않은 것은 창의성을 억제하지요. 그것은 예술의 패륜이고 영혼의 파탄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식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야기에서 가장 도식적인 소재 중 하나가 바로 영웅입니다. 신화, 전설, 민담 등, 어느 시대에나 영웅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비슷합니다. 영웅에겐 현실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과제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영웅은 그것을 극복할 능력이 있지요. 이것은 백성들에게 애국심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웅이야기에 목말라 있는 나라가 있었죠. 미국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은 국민을 뭉치게 할 영웅 신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건립된 것은 유럽에서 합리주의가 시작되었을 무렵이었죠. 과학적인 합리주의가 유행인데, 도무지 신화적 판타지를 넣을 순 없는 겁니다. 그러니 미국 영웅 신화는 일상에서 찾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렵, 공상 과학 마니아였던 두 남자가 전설의 영웅들을 모두 합친 슈퍼 히어로를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슈퍼맨이었습니다. 수많은 퇴짜를 맞은 후에야, 슈퍼맨은 액션 잡지 만화로 신문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과학적 합리주의에 가장 적합한 일상성의 영웅이 탄생하자, 할리우드의 유대인 제작자들은 이 미국식 영웅의 변용을 반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국기와 비슷한 옷을 입은 슈퍼 히어로가 나치를 쳐부수는 시나리오를 만들었고, 이는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했죠. 슈퍼히어로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할리우드는 의심 없이 매년 슈퍼히어로 영화를 쏟아냈습니다.

역사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구체적인 인종이나 나라를 악의 축으로 묘사하기도 했지요. 적으로 인지되면, 히어로가 때려눕히는 형식이었습니다. 이런 형식은 약 70년 동안 계속됐죠. 그리고 슈퍼히어로의 범람 속에서 우리는 70여 년 동안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는 영웅 이야기에 익숙해졌습니다. 이 액션을 이끌어내기 위해 악당은 더욱 폭력적이고 과학적이고 교묘하게, 미국이 관련된 전쟁을 적당히 반영하며 변모해 갔습니다. 이젠 미국의 슈퍼히어로라면 보기 전부터 대강의 장면이 짐작될 정도입니다. 영웅의 공식이 확립된 것이지요.

▲[출처=http://www.burkaavenger.com/]

그런데 지난 2013년, 인권 지향의 슈퍼 히어로가 등장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파키스탄의 <부르카 어벤져>입니다. 주인공 지야는 여성입니다. 주인공 지야는 낮에는 평범한 선생님이지만, 밤에는 브루카를 씁니다. 그녀는 소녀들의 교육권과 자유를 위해 부패한 정치인,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에 맞서 싸웁니다. 그녀의 무기는 책과 펜입니다.

▲하룬 라쉬드 [출처=http://en.wikipedia.org/wiki/File:HaroonRashid.jpg]
이 이야기를 만든 이는 파키스탄의 사업가이자 팝스타인 하룬 라쉬드입니다. 2010년, 한 사건이 연일 신문기사를 장식했습니다. 여학교 폐쇄 사건이었습니다. 종교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이었죠. 그들은 여성의 학교 교육을 반대했습니다. 기사를 본 순간 하룬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 여학교를 지켜줄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바로 부르카 어벤져의 영감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의 노동 문제, 성차별, 혹은 종교적인 폭력의 심각성을 다루기 시작했지요.

여성이 슈퍼히어로인 경우는 할리우드에서도 종종 있었습니다. 원더우먼, 캣우먼 등이 바로 그것이죠. 그러나 하룬은 그들을 모델로 삼지 않았습니다. 할리우드의 여성 슈퍼히어로들은 딱 달라붙는 옷에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는데, 하룬은 그런 성 상품화의 전례를 따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성을 성 소유물로만 보는 극단주의자들에게 또다시 그런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는 그녀에게 부르카를 입혔습니다. 정형화된 슈퍼 히어로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부르카 어벤져>의 탄생과 함께, 기존 슈퍼 히어로의 도식은 깨어졌습니다. 파키스탄의 여자 어린이들은 자기 자신의 소중함과 권리를 슈퍼 히어로로부터 배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애니메이션은 파키스탄 현지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단순한 제3세계의 2D 애니메이션이, 블록버스터급 CG를 자랑하는 기존의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들을 뚫고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존의 이미지에 대한 성찰입니다. 도그마의 극복에는 성찰만큼 좋은 처방은 없습니다. 인류의 근대사를 열어낸 그 위대한 한마디, 르네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은 여전히 오늘 지금 우리에게 유효한 것입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성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류의 유일한 진화 방법일 것입니다.

 


강기린
만화도 문화다, 오락 그 이상의 만화,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강기린은 척척팩토리의 서브라이터이자 만화평론가입니다.
척척팩토리는 만화 창작집단으로 네이버에 <7번국도아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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