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빨간 주부의 부엌에서 보는 세상 (15)

판타지에 거는 기대, 드라마 두 편 <밀회>와 <쓰리 데이즈>
뉴스일자: 2014년03월20일 21시21분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 관계로 실시간 시청이 어렵다. 화제가 되었던 방송은 다음 날 웬만한 네티즌은 알고 있는 사이트를 통해 본다. 사전 지식을 갖고 보는 방송은 생동감이 떨어지지만, 장점은 건너뛰기가 가능해서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 연예기사는 대부분 드라마 내용이나 스타의 미니홈피,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수준이라 굳이 방송을 안 봐도 방송 내용을 대충 꾄다. 발로 뛰는 기사가 아니라서 발로 쓰는 기사다.
 
요 며칠 늦은 시간에 운동하러 가서 드라마 두 편을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쫀득하고 쫄깃한 드라마 두 편은 잘 쓴 각본의 모범을 보는 듯했다. 손석희 앵커의 9시 뉴스가 끝나면 시작하는 종합편성 채널 드라마는 김희애와 유아인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었던 <밀회>다. 내가 봤던 장면은 두 사람이 슈베르트의 연탄 곡을 연주하는 부분이었다. 작년에 봤던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에도 피아노가 하나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주인공 소녀가 성(性)에 눈뜨고, 성장하는 모티프로써 사용되었다. 대기업 소유 예술기획단의 실장 오혜원(김희애 분)과 퀵서비스 배달원이며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유아인 분)의 연주 연기는 사실 보는 이로 하여금 손발이 오글거리게 했다.

▲JTBC드라마 <밀회>의 한 장면. [출처=http://drama.jtbc.joins.com/secret/]

그러나 그 장면은 두 사람이 몸을 섞지 않아도 하나가 되었고, 희열에 빠졌으며, 열락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특히, 피아노 연주는 꿈 분석할 때 성(性)의 상징으로 자주 인용되곤 했다. 소설로 치면 두 사람의 감정 변화를 몇 페이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드라마는 몇 분의 영상으로 연출했다. 두 배우의 표정변화와 건반 위에서 서로의 손을 넘나드는 모습과 음악으로 말이다. 그 후 이어지는 두 배우의 여운을 담은 감정 연기와 회상장면은 연주의 떨림이 일으키는 파장이 지속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별거 아닌 에피소드 같은 오혜원이 이선재의 자취방에서 끈끈이(쥐덫)를 밟는 장면은 그녀의 인생이 제대로 ‘덫’에 걸렸음을 암시한다. 단지 나이 든 여자와 젊은 남자의 연애가 아니라 배경으로 음대 입시 비리와 1%의 탐욕, 그리고 거기 빌붙어 살아가는 오혜원과 같은 계층의 부조리를 깔고 시작하는 드라마 <밀회>는 아주 차지고 쫄깃한 ‘쫀득한 드라마’로 다음 회가 기대된다.
 
두 번째 드라마는 수요일 밤에 본 <쓰리 데이즈>다. 첫 회에 아버지를 잃은 경호관 한태경(박유천 분)의 눈물 연기를 보면서 눈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는 느낌이 들어 보다가 말았다. 어제는 드디어 대통령(손현주 분) 암살의 배후가 밝혀졌다. 전임 대통령과 국정원, 군대, 경찰, 검찰 등 소위 권력의 핵심이었다. 더구나 드라마 속 대통령 이동휘는 특검의 압박으로 사면초가 상태였다. 마치 어느 분의 죽음을 떠오르게 했다. 그분의 죽음을 엄밀하게 따져서 사회적 타살이라고 전제하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IMF 체제에서 벌어진 일을 상기시키는 장면은 그분이 임기 중 저질렀던 몇 가지 오류를 떠올리게 한다.

▲sbs드라마 <쓰리 데이즈>의 한 장면. [출처=http://program.sbs.co.kr/builder/programMainList.do]

그러나 충실한 경호관 한태경의 질문에 그는 “했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려는 게 아니라 시인하고 뉘우치며 바로 잡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작가는 그분이 생존했다면 이란 가정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오욕의 고통을 견디고 잘못을 인정하고 그릇된 점을 바로 잡는 지도자를 그리고 싶은 게 아닐까. 권력과 자본의 결탁, 미국 군수산업의 국정개입, 내부자 고발을 처리하는 방식, 왜곡된 정보로 오도된 국가관 등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심장이 쫄깃해진다.
 
어제 뉴스에서 봉급쟁이의 급여체계를 바꾸겠다는 정부 발표를 보았다. 연봉서열 체계를 개선해서 성과급 위주의 경쟁으로 바꾸겠다는 의도로 비쳤다. 노노 간 경쟁으로 노동자의 단결을 차단하고, 청년 실업 문제를 저임금 노동으로 해결하겠다는 심산으로 정부가 누구의 편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다. 그 며칠 전에는 국가가 육성하는 새로운 직업에 ‘사설탐정’이 등장했다. 이미 오래전에 사설 경비업체와 민간 군사 기업이 탄생했으니, 국가가 담당해야 할 사회적 안전망이란 책임도 점점 개인에게 이양되는 추세다.

이곳저곳에서 생존의 기본 조건 때문에 사라져간 이들의 절규는 드라마와 오락에 가려지고, 뉴스의 단신으로 처리된다. 드라마가 현실의 문제를 가리는 판타지의 기능도 하겠지만, 판타지는 늘 그렇듯 그 끝이 허무하다. 쫀득하고 쫄깃한 두 드라마가 지금 여기에서 판타지에 은폐되었던 추악한 탐욕의 실제를 보여주는 것에 그칠 게 아니라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어설픈 희망이 아니라 작으나마 가능한 희망이면 더욱 좋겠다. 어쩌면 드라마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거는 이 마음이 무모할지라도. 희망이 안 보여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영화 한 편, 드라마 한 편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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