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만화산책] (3) 예술이 거대한 손을 만났을 때

The hand
뉴스일자: 2014년02월18일 13시39분

1972년, 영국인 과학자 제임스 러브락의 주장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지구가 살아있다는 겁니다. 그는 이 가설에 가이아(Gaia)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알려졌죠. 러브락은 지구를 생명체로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화산 폭발은 단순 재앙이 아니라, 지구 생존을 위한 체온 조절이라 보는 것이죠. 참으로 과학자다운 발상입니다. 어쨌든 유기체 생존에는 온도 조절이 매우 중요하니까요.

체온뿐만 아니라 마음 온도도 참 중요합니다. 사는 게 늘 내 맘 같지 않으니까요. 세상도 복잡하고, 우리의 욕망도 복잡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지와는 다르게 화를 품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지요. 그래서 마음 온도 조절이 필요한 겁니다. 화를 못 내는 사람일수록 마음의 병이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화산 폭발 없이 지구가 펑 터지듯 사람의 마음도 곪아 터질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화는 그때그때 내보내는 게 좋습니다. 예의를 지켜야 하니, 화를 요령 있게 내는 기술도 중요하지요.

그런데 이 화가 아예 폭발해 버리면 좋은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예술입니다. 예술엔 ‘무한한’ 상상력이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화는 인간 욕망과 현실 한계의 간극이 벌어지며 발생합니다. 그런데 상상력의 속성이 이 화의 속성과 닮아있습니다. 상상력은 현실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이거든요.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커지면 커질수록, 욕망은 분명해집니다. 이는 상상력의 기폭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정치, 종교적 억압이 있는 시대에 예술 폭발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우린 그것을 저항 예술이라고 부릅니다.

1960년대, 체코는 전체주의 사회였습니다. 전체주의란 국가를 위해서 인간이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예술 표현의 자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부는 체코의 문화, 예술을 오직 선전도구로만 여겼지요. 영화계엔 선전용 극작법이 따로 도입될 정도였습니다. 누군가는 분명 분노를 삭이며 자유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있었을 겁니다.

1965년, 한 예술가의 분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실체는 프랑스 안시 국제 영화제에서 드러났죠. 그 작품은 체코 애니메이터 이리 트른카의 인형극 애니메이션, The Hand였습니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한 도공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유일한 낙이 있었죠. 꽃이 피어나는 걸 상상하는 겁니다. 그가 매일 화분을 빚는 이유죠.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몸집보다 큰 손 하나가 방문을 두드립니다. 그는 말 그대로 큰 손입니다. 권세가 그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조각상을 만들라고 강요하기 시작합니다. 도공이 저항하자, 그는 도공의 팔에 줄을 엮어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립니다.

도공은 할 수 없이 새장에 갇혀 권력자의 조각상을 만드는 신세가 됩니다. 큰 손은 그에게 훈장과 재물로 보상하려 하지만, 도공은 모든 것을 뿌리치고 자신의 작업실로 달아나 버립니다. 그의 마음속은 오직 꽃으로 가득 차 있거든요.

방으로 돌아온 그는 꽃이 살아 있는지부터 확인합니다. 그러나 곧, 손이 침입할까 두려워 모든 문을 봉쇄하는데 집착하게 됩니다. 노이로제에 걸린 도공은 캐비닛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공포에 떨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그는 캐비닛 문에 못질하고, 그 반동으로 캐비닛 위의 꽃 화분이 그의 머리로 낙하하고 맙니다. 잠시 후, 큰 손이 죽어있는 도공을 발견합니다. 큰 손은 캐비닛 속에 도공을 누이고 장례를 치러 줍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손은 전체주의였습니다.  관중들은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전체주의의 손아귀에 잡힌 듯한 기분이었을 겁니다. 손의 억압에서 탈출한 도공은 관중들의 마음을 뻥 뚫어주었습니다. 전체주의의 만행은 애니메이션 속에서 더욱 구체적이고 상징적으로 형상화 될 수 있었지요. 그것은 트른카 속에서 끓어오르던 분이 예술 속에서 폭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의 애니메이션은 안시 국제 영화제에서 당당히 1등상을 탔습니다. 안타깝게도, 전 세계의 극찬을 받은 이 작품은 국내에 들어오고 머지않아 금지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The Hand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상징하는 명작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세계는 늘 누군가에겐 억압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민주주의라는 팻말 아래에서도 누군가는 늘 억울합니다. 종종 사람들은 예술가에게 예술이나 하라, 혹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비난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에는 정치적인 예술이 가장 중립적일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고통의 열기로 치우쳐 있을 때, 예술이 대신 그 마음에 작은 분화구를 하나 내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억압 속에서 누군가 정치에 대한 예술을 한다면, 그것은 아주 건강한 행위입니다.

강기린
만화도 문화다, 오락 그 이상의 만화,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강기린은 척척팩토리의 서브라이터이자 만화평론가입니다.
척척팩토리는 만화 창작집단으로 네이버에 <7번국도아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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