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이 없는 나에게 살 수 있는 방도 줬어요.
여름엔 푹푹 찌구요. 겨울엔 고드름 생겨요.
<우리 기숙사 좋아요. 정말 좋아요.>
나에겐 친구가 있어요. 바퀴벌레와 곰팡이
기숙사 돈 10만 원 내요. 월세보다도 싸요.
<먹여주고 재워주고 좋아요.>
우리 기숙사 좋아요. 낡아빠진 컨테이너
우리 기숙사 좋아요. 바퀴벌레가 살아요.
<니가 살아봐요 컨테이너>
작년 8월 17일 고용허가제 폐지 집회 때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던 내용 중에 하나다.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동사”
“아파트 현장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사망한 중국노동자”
“새벽 컨테이너 기숙사 화재로 베트남 이주노동자 사망”
우리는 종종 언론에서 이런 기사들을 본다. 이런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찹찹하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떠나온 고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비명횡사한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돈 많이 벌어오겠다며 밝은 웃음으로 타국으로 떠난 어린 자식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차디찬 시신으로 맞이할 부모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그래도 잘 산다는 대한민국에서 자식이 불에 타 죽거나 얼어 죽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주노동자들의 고된 삶의 현장을 가다 2.
일임에도 특근을 하는지 쿵쾅거리는 기계음을 따라 성서공단길을 달려 또 다른 공장의 기숙사를 간다. 이곳은 계단을 두고 1층과 2층은 일하는 현장이고 3층은 노동자들이 기거하는 기숙사다.
섬유공장이라서 그런지 계단에 발을 밟을 때마다 폴폴 피어나는 먼지구덩이를 지나 기숙사 입구에 들어선다. 순간 망설인다.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 하는지 벗고 들어가야 하는지...
수명이 다한 듯 켜졌다 꺼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희미한 형광등이 불을 밝히고 있는 복도를 지나 방안으로 들어선다. 한겨울임에도 밖 온도와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방안은 차다. 두 개의 전열기가 고개를 좌우로 쉴 새 없이 돌려가며 방안의 차가운 공기를 데운다. 그리고 스티로폼과 박스테이프로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방주인이 하루의 고단한 몸을 누이는 침대는 전기장판이 깔렸다.
이곳 기숙사는 현장사무실을 고쳐서 만든 곳이기 때문에 보일러 설비 자체가 되어 있지 않다. 오로지 전기온열기와 전기장판에 의지해 겨울을 나야 한다.
겨울이 제일 싫어요.
공장 먼지구덩이에서 종일 일하고 퇴근하면 따끈한 물에 샤워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서 갓 지은 따끈한 밥을 먹고 노곤한 몸을 따끈한 방에 뉘어 티비를 보다가 포근한 이불 속에서 잠을 청한다. 이것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생활의 패턴이다.
그러나 이곳은 그런 일상적인 생활조차 꿈꿀 수 없는 그야말로 참담한 공간이다. 여러 명이 같이 기거하는 기숙사에 하나뿐인 세탁기는 순서를 기다려 겨우 빨래를 돌릴 수가 있고, 공동으로 샤워하는 샤워실은 한 사람이 사용하고 한참을 지나서야 다시 물이 데워지고 일을 마치고 들어서는 기숙사 방안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그래도 지금은 한국생활 오래 해서 견딜만해요. 그런데 처음 한국에 와서 처음 맞이한 겨울은 너무너무 추웠어요.”
더운 곳에서 살다가 난생처음 맞는 겨울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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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때가 잔뜩 끼어있는 샤워실은 샤워를 해도 몸이 깨끗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사진=임복남] | | |
오랜 한국생활로 이제는 겨울에도 끄떡없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는 겨울이 춥고 싫다.
자다가도 불려 나가는 현장
방을 나오면 복도 한쪽 모퉁이에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식당이라고 해봐야 식탁도 없고 다 부서진 싱크대에 가스레인지 하나뿐이다. 가스레인지가 작동하기는 하는 걸까?
“여기서 밥 잘 해먹지 않아요. 일 마치고 기숙사 오면 씻고 자기 바빠요. 그리고 회사에 일이 있으면 새벽에 자다가도 불려 나가요.”
이곳의 기숙사는 쉼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현장의 일에 따라 불려 나가는 5분 대기조의 대기공간이다. 그렇다 보니 아무런 꾸밈도 없이 최소한의 도구들만 있다. 이렇게 살고 싶으냐고 아무리 일하러 한국에 왔지만, 최소한 쉴 수 있는 공간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내가 오히려 그이가 사는 환경에 열 받아서 목소리를 높인다.
“밖에 방을 구할까도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방값 너무 비싸요. 그리고 여기 기숙사에서 나가면 공장에서도 쫓겨날지 몰라요.”
도대체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것들을 이주노동자들은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 기숙사의 풍경과는 달리 기숙사에서 바라본 저녁노을은 정말로 아름답다.
니가 한번 살아봐라. 기숙사.
이주노동자들이 사용하는 기숙사에는 변변한 난방시설도 없고 상하수도 시설도 엉망인 공장이 많다. 대부분 공장들은 이러한 기숙사를 무료로 제공하지만, 이 엉망인 시설에도 기숙사비를 적게는 5만 원 많게는 30만 원씩 임금에서 빼는 경우도 있다.
공장에서 사장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숙사가 열악하여 공장 밖에서 살고 싶다고 해도 회사는 일 시키기 쉽고 관리가 쉬운 기숙사에 살 것을 강요한다. 둘째는 열악한 시설임에도 기숙사비를 빼 임금을 한 푼이라도 적게 주기 위함이다.
가끔 퇴직금이나 임금, 관리자의 폭행으로 인해 상담 오는 이주노동자를 대신해 사장에게 전화를 걸면 “먹여주고 재워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는 못된 새끼”라고 욕하는 회사에 가보면 백이면 백 기숙사가 컨테이너이고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라고 믿기 어려운 곳이 많다. 그럴 때면 그 사장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니가 한번 살아봐라.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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