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범람의 시대입니다. 인터넷만 열면 뉴스가 쏟아지지요. 모든 것을 볼 순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각종 포털은 낚시꾼의 모습으로 머리말을 분장합니다. 우리는 자극적인 미끼가 있어야 눈길을 돌립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알기 위해 뉴스를 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알고 싶은 것만 볼 뿐일지도 모릅니다.
자극은 사람의 신경을 무디게 만듭니다. 가면 갈수록 더 짜릿한 것을 찾게 하지요. 그 마음속엔 뉴스의 내용보다, 뉴스가 주는 쾌감만 남게 됩니다. 그러다 정말 기억해야 할 것들을 놓치고 맙니다. 기억하는 게 없으니 되새길 것도 없게 되지요. 우리의 시선은 빠른 속도로 새로운 자극을 찾습니다. 제대로 느끼고, 생각할 겨를도 없지요. 이것은 신종 질환, 뉴스 중독 증상입니다. 이 증상은 집단 망각과 함께 다가옵니다. 만약 우리가 오늘 잊어버린 어떤 기사가 우리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었다면, 우린 우리 삶을 내버려두고 있는 게 아닐까요?
 |
▲영국의 대표적인 타블로이드 신문 <the sun> [출처=www.thesun.co.uk 갈무리] | | |
영국은 타블로이드 천국입니다. 타블로이드는 우리나라 스포츠 신문 같은 것입니다. 타블로이드에서는 같은 기사도 더 자극적입니다. 타블로이드의 목적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흥미 유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목을 끌기 위한 대문 사진이 중요합니다. 또한, 기사문은 짧고 가볍습니다. 짧은 기사문으로 관심을 끌자니 내용은 극단에 치우칩니다. 문제는 이러한 신문들이 대중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인종문제는 영국민에겐 중요한 이슈입니다. 영국의 인종이 다양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타블로이드는 인종 문제를 자극적으로 다룹니다. 이것은 종종 이방인 혐오증, 즉 제노포비아를 조장합니다. 타블로이드엔 사회적 책임감 따위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민의 타블로이드 중독 현상은 여전하지요. 중요한 사회 문제를 가벼운 시선으로 보는 데 익숙해진 겁니다.
2012년, 난민 주간을 앞둔 때였습니다. 타블로이드는 앞다투어 난민 문제를 자극적으로 보도했죠. 타블로이드는 난민이 국가 예산을 얼마나 잡아먹는지 보도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대중은 이에 쉽게 휘둘렸죠.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난민의 본질은 잊혀져 갔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염증을 느낀 이가 있었습니다. 모자이크 필름 프로덕션의 애니메이션 감독, 앤디 글린입니다.
앤디 글린은 메타포 리딩의 전문가입니다. 그는 전직 임상 심리학자였거든요. 환자들의 은유로 마음 상태를 짚어낼 수 있었죠.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해 Animated Mind(애니메이션으로 된 마음)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정신병의 메타포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정신병에 가장 근접하게 다가가 보고 이해하도록 도와주었죠. 그는 애니메이션이 대중성을 지니면서도, 은유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중들에게 본질에 대한 초점을 모아 보기로 했습니다. 난민 어린이들이 겪은 상황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겨 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곧 어린이들과의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인터뷰는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이었습니다. 앤디 글린은 우선 아이들의 마음을 끄집어내는 데 최대한 집중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풀기 위해 인터뷰 전에는 적어도 삼십 분 동안 아이들과 수다를 떨었습니다. 인터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뒤에도 아이들에게 그것이 자신들이 겪은 게 맞는지, 과장이 되었는지, 편집을 해야 할 지 아닐지 끊임없이 확인했지요. 그것이 다섯 개의 이야기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 이름은 ‘Seeking Refuge (은신처를 찾는 것)’입니다.
전쟁으로 어린이들이 난민이 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지요. 잃어버린 줄 알았던 어머니를 고아원에서 만난다거나, 사랑하는 부모님을 두고 혼자만 탈출해야 했을 때, 새 땅에서 이방인이라고 느꼈을 때의 감정 같은 것, 이러한 관찰은 영국 사회에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겨주었습니다. 타블로이드의 단편적 시선과는 정반대였죠.
그것은 각종 교육의 커리큘럼이 되었습니다. 또한, 난민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명징하게 보여주었지요. 대중적인 표현 수단으로 사회 문제를 새로이 다룸으로써, 타블로이드의 시선과 비교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더욱 건강한 영국 사회를 만드는 힘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많은 방법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때로 세상과 우리 사이의 시선을 보지 못합니다. 세상을 흥밋거리로 보게 하는 시선도 있고,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시선도 있습니다. 누군가 읽어주는 세계를 보기 전에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볼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흥미만 쫓다, 진짜 기억해야 할 것을 놓치고 말 테니까요.
오늘도 뉴스 기사란에 들어갑니다. 누군가의 비극에 놀라면서도, 그다음에 클릭할 기사 제목을 힐끔거리고 있네요. 빨리 다음 기사를 클릭해 보고 싶습니다. 나는 방금 읽은 기사를 모릅니다. 잊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돌아서면 망각하는 물고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강기린
만화도 문화다, 오락 그 이상의 만화,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강기린은 척척팩토리의 서브라이터이자 만화평론가입니다.
척척팩토리는 만화 창작집단으로 네이버에 <7번국도아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