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공무원노조 부정선거 논란에 부쳐

선거는 민주주의의 무덤인가
뉴스일자: 2014년02월03일 14시04분

최근 뉴스민에 전국공무원노조 임원선거에서 부정 시비 관련 보도가 나왔다. 대구경북본부 임원선거도 그 예외가 아니다. 대경본부 선거에서 나타난(조합원 수의 반 정도만 실제 투표권을 가지며 나머지는 임의투표를 했다는 사실, 후보의 자격시비) 사례들을 볼 때 부실, 부정투표의 논란은 가히 심각한 수준이다.

왜 이런 추문들의 끝이 보이지 않는가? 국가권력을 동원한 박근혜 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촛불이 거리로 쏟아지는 시기에 왜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에서조차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가?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시비로 소위 진보진영이 일그러진 영웅이 된 기억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에 말이다.

당시 통합진보당 내 조직 간 상호 비방 수준의 선거부정 폭로와 자기조직 중심의 알리바이 조작에 대해 당원들에게 그리고 운동사회에 통렬한 자기 성찰을 했던가. 공무원노조 선거 부정과 박근혜 정권의 부정선거에서 어떤 차별성을 대중 앞에 내어놓고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

▲공무원노조 대경본부 임원 선거 홍보물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노동조합의 조직 보위를 위해 선거 부정사실을 쉬쉬하는 주장을 보면 과연 보위해야 할 조직은 무엇인가 되물어 본다. 이는 민주노총 내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서도 여실 없이 드러났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우익언론의 먹잇감으로부터 피하자는 방어논리가 결국은 조직 내 환부에 칼을 들이대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 오늘날까지도 한국현대사를 오욕으로 점철시키고 있듯, 정작 두려운 것은 조중동이 아니라 조직 내 기득권 박탈이 아닌가. 조직의 허명이라도 지켜야 한단 말인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덮겠다는 발상은 여전히 구태로 남은 운동사회의 한 단면이다. 결국, 지켜야 할 것은 민의이지 어떤 조직도 아니다. 조중동을 극복하는 것도 보안 속에서 감추어서 해결될 수 없고, 각성한 대중의 힘만이 불의를 극복할 수 있을 뿐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했던 지난 시기 운동 풍토에서 벗어나야 한다. 운동사회에 남아있는 ‘내가 하면 로맨스’식의 사업풍토를 벗어야 한다. 세력 간 진영논리는 제로섬게임에 갇혀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차악들을 선택한다. 세력 간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대중의 바닷속에서 뒹굴며 대중의 마음과 신뢰를 얻어가면 된다. 자기 조직의 완결성만 추구하는 폐쇄적 조직보호논리는 진영논리만 강화할 뿐이다.

민주노조 내부에서 발생한 부정문제는 조직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과의 유불리에 따라 외부의 재판에 넘겨 판단을 받겠다는 것은 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운동조직이 가져야 할 독립과 자주성 훼손을 가져온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비리, 부정한 사태에서 조직이 무엇을 배우고, 자정능력을 확보해 하는가다.

민주노총 임원직선제는 약인가, 독인가

드디어 올해 직선제 논의가 시작된 지 15년 만에 민주노총 선거가 치러진다. 가장 민주적인 조직이라고 자임하던 민주노총이 이렇게까지 직접선거를 미루게 된 이유는 비용과 인력난도 아니다. 기실 집행부도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예상되는 부실, 부정선거의 공포가 가장 컸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정설로 들려온다. 즉, 선거를 치르면 발생할 부정, 부실 선거 시비 탓에 민주노총의 신뢰가 실추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뢰 실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아니면 민주노총의 민주를 떼어버리든지.

민주노총의 주요한 위기 요인이 상층과 현장의 괴리감임을 볼 때 직접선거를 통한 조합원 직접 참여는 꼭 필요하다. 직선제 그 자체가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은 아니나, 직선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운동의 방향과 투쟁, 조직 전반에 걸친 혁신방향을 제출하고 이를 대중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독이 되든 약이 되든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먹으면서 전진하고, 실패로부터 배우면서 전진해야 한다.

종이 짱돌을 들 것인가? 거리에서 짱돌을 들 것인가?

한국현대사에서 공정한 선거와 선거권 확대는 민주주의 확대와 맞물려 있다. 3.15부정선거규탄봇물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87년 직선제 쟁취투쟁이 민주화 투쟁의 분수령이 됐다. 이런 점에서 공무원노조 부정선거 비판이나 민주노총의 임원 직선제 도입은 민주주의의 진전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선거로 모든 것이 보증받을 수 없다. 막걸리, 고무신 선거에서 미디어 선거로 바뀌었을 뿐, 선거는 ‘깨끗한 한 표보다 더러운 몰표’를 좇아가게 되어 있다. 일상의 운동보다 선거 운동에서 로또가 가능할 수 있고, 한 판 뒤집기가 가능한 선거공학이라는 물신이 있는 한 더 이상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 아닌 민주주의의 무덤이다. 선거는 결과를 통해 정당성과 정통성까지 부여받으며, 결과는 과정을 덮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거제도를 통해 세상이 바뀔 것 같았으면, 부르주아지는 선거제도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은 선거제도의 환상을 씻어주기에 충분하다.

신동엽 시인이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했듯이 껍데기가 된 선거도 가고, 부정한 선거꾼들도 가라. 다만 노동자 민중의 각성한 힘만 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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