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공단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노동자들

[기획연재] (14) 택시, 버스, 노점, 식당 노동자의 하루
뉴스일자: 2014년01월15일 19시46분

아직 해가 뜨기 전 어둠이 깔린 성서공단은 아침 7시에도 출근하는 노동자들로 분주하다. 아침을 먹지 못하고 출근하면서 들리는 작은 토스트노점에도, 쉴 새 없이 공장으로 실어 나르는 택시, 버스 안에도 노동자들이 가득하다. 공단 도로변에서 청소하는 노동자, 밤을 새운 편의점 노동자 이렇게 수많은 노동자들이 성서공단을 함께 움직이고 있다

성서공단역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택시노동자 박태희 씨를 만났다. 박 씨는 오전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14시간 핸들을 잡는다. 박 씨는 “저는 노동시간이 적은 편이에요. 지난해 하루 사납금이 올라 12만 2천 원인데 이 돈을 못 채울 때가 많아요. 그러면 제가 메꿔 넣어야죠. 25일 치 사납금을 다 채우면 월 99만 8천 원인데, 여기서 세금을 떼면 92만 원가량 받습니다. 이것 가지고는 아이들 대학 등록금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저야 처가 조그만 식당이라도 하니까 근근이 버티죠. 하루에 20시간씩 일하는 택시노동자들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박 씨는 “여기서 대기하다 주차감시 카메라와 파파라치 때문에 고발당해 벌금을 수차례 물었죠. 회사로 스티커가 날라 오면 그 자리에서 3만 2천 원 현금으로 냅니다”라고 덧붙였다.

공단 자체가 저임금인데다가 일만 빡시게 시키니까 “중소기업들 부자 됐다”는 말을 기사들끼리 한단다. 한국 노동자들은 자기 차들이 있는데, 이주노동자들은 차도 없으니 주로 일요일에 장 봐서 기숙사로 가거나 야간 일하고 낮에 잠시 병원이나 볼일 보고 공단으로 들어가는 이주노동자들은 사납금을 채워주는 고마운 손님들이란다.

“미등록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뜻이 아니라, 불법이란 걸 악용해서 사업주들이 월급 잘 안 주고, 챙겨 먹고 내쫓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들도 먹고살기 위해 왔는데...”라는 박 씨는 요즈음 택시 승강장 주변에서 “‘택시 안 타요?’ 하면 ‘돈 없어요. 일 없어 일 없어 그럽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 택시 타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준 것 같아요. 단속되어서 공단을 떠났는지, 택시 요금이 올라 부담이 되는지, 공단 경기가 안 좋은 것 까지 겹친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아침에는 주로 한국인 노동자들이 택시를 탑니다. 7시부터 여기가 북적북적하니까, 도대체 집에서 몇 시에 나오는지... 아마 출근카드를 찍기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죠, 새벽같이 나와서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택시로 연결해서 출근하는 것 보면 쫌 안타깝죠. 시내버스인 성서1번이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에는 더 자주 있어야 해요. 버스가 자주 있으면 없는 돈에 택시를 덜 타도 되잖아요”

“최저임금이 올라야 우리 택시 월급도 따라 오르지만, 사납금을 못 채우면 우리가 채워 넣거나 월급에서 깎이니까, 우리는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어요. 한 마디로 불쌍합니다. 노동시간은 긴데 돈은 적고, 새벽까지 출근해서 밤 9시 되어야 퇴근하는데, 성서공단은 없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입니다. 노동자들이 없으면 사장들이 우째 사는지 묻고 싶습니다. 같이 삽시다. 제발”이라고 힘주어 말을 남기고 손님을 실어 출발한다.

성서 5차단지 운행을 위해 오늘은 새벽 5시 30분부터 운행을 했다는 성서3번 버스노동자 이상현 씨는 “지하철과 연계하여 버스를 타는 출근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나, 성서3번은 25분 간격으로 노동자들이 불편을 호소한다”고 한다.

같은 노선을 운행하는 남대식 씨는 “시내버스 간격이 10분 이상이면 시내버스가 아니라, 시외버스죠”라고 말하며 웃는다. 이어 남 씨는 “5차단지 입주 공장이 늘어 노동자들도 늘어나고 있는데 주변 노선에서 한 대만 더 공단으로 운행하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첨단단지니 뭐니 떠들면서 출퇴근 버스노선 하나 제대로 배치 못하는 대구시의 탁상행정이 한심하죠”라고 지적한다. 버스 안에서 눈을 붙이고, 출근시간에 쫓겨 허둥대는 노동자들을 보면 이래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늘 든단다.

출근시간에 토스트와 붕어빵을 파는 전인숙 씨는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밀가루 반죽을 준비하고 앙금을 챙겨 5시에 집에서 나선다.

전 씨는 “여기서 11년을 했는데, 단골들이 많습니다. 주로 혼자 사는 젊은 남성, 여성들이죠. 집에서 아침 해먹을 시간이나 조건이 안 되니 토스트 한두 개로 식사를 대용하고 바삐 나섭니다”라며 “퇴근길 겨울철은 오뎅과 붕어빵을 사 먹죠, 종일 일하고 출출할 때 들러서 먹는 맛이 꿀맛인지, 모두 잘 먹었다 하고 인사들하고 가요. 성서공단 노동자들 참 착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지금은 자리를 잡아서 리어카도 두고 퇴근하지만, 몇 년 전까지는 리어카를 몰고 집에 왔다 갔다 하다가, 단속 오면 피하고 여간 힘들지 않았단다.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 나라가 좀 먹고살게 해주면 안 되나?”라는 생각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변함없단다. 자기도 섬유공장에서 잔뼈가 굵었기 때문에 성서공단노동자들 보면 옛날 고생했던 생각이 든다고.

점심식사 준비를 위해 분주한 성서공단 내 식당에서 만난 이미숙 씨는 요즈음 식수가 점점 줄어 어렵다고 한다.

이 씨는 “경기가 어려워지면 일용직들 먼저 자르잖아요. 그리고 잔업도 많이 줄어 저녁에 식당이 썰렁할 때도 있죠. 다른 물가는 다 올라도 공단 밥값은 그대로입니다. 밥값 백 원에 사장들이 밥집을 옮기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죠. 이러면 점점 부실해지는 식단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 밥 먹는 노동자들만 피해가 가지요”라며 “요즘 유명 외식업체들이 공단에 들어오니 구멍가게 같은 우리 매점식당들은 점점 어렵지. 그리고 오후에 참도 줄었지, 전에는 여름철 국수, 겨울철 라면을 먹었는데, 빵 우유로 바뀌거나 없어지거나 하니 점점 더 어려워요. 보통 회사는 거래장에 사인하고, 월 말에 결제하는데, 외상장부 보면 알지만 밀린 데가 많지, 그런데 가끔 야반도주하는 경우도 있죠”라고 말한다.

“우리 식당 지하공장에서 일했던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결국 체불임금을 받지 못하고 여기서 떠났습니다. 회사에서는 기계를 팔아서 월급을 갚는다 하고서는, 기계는 다 팔았는데 그 노동자들은 아직 임금 못 받았다고 해요. 참 안타깝지. 그 스리랑카 노동자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애태웠는데. 우째 해 줄 수도 없고, 일이 힘든데 많이 먹지도 못해서...”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방끈이 짧으니 월급이 약한데, 그래도 많이 먹고, 안 남기고 잘 먹었습니다 하면 가장 기분이 좋지... 노동자들이 밥심으로 일하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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