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6조(무상교육 및 무상보육권)

고졸이 행복한 나라(정재형 조항)
뉴스일자: 2013년11월04일 18시15분

제6조 (무상교육 및 무상보육권)
① 대구 시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 모든 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② 학생들의 인권은 기타 자치단체의 학생인권조례를 최저한으로 보장한다.
③ 대구 시민의 자식은 대구 시민들이 보육할 의무가 있으며 무상 보육을 실현한다(공감세대토크 조항).
④ 대구 시민은 교사의 교육권을 존중하며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선행학습을 자식들에게 시키지 않으며 대학 평준화를 위해 노력한다(박모 교사 조항--- 위 조항은 경북에서 중등 교사로 근무하는 박모 교사가 독일의 예를 들며 독일에서는 선행학습이 제철학습을 하는 아동들에게 심각한 폐해를 주고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되며 이를 어길 경우 교사가 학부모에게 경고조치를 하고 있다고 하며 사교육 방지 및 제철 교육을 받을 타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아울러 학교 교육 만악의 근본은 대학입시이므로 대학 평준화를 통해 지방자치를 담보하자고 제안함).
⑤ 대구 시민은 고졸이 행복한 대구를 만들기 위해 정치,경제,사회,문화와 의식개혁을 위해 노력한다(정재형조항).

고졸(高卒)이 행복한 나라(제안자 주석)
총선이 끝나고 새로운 국회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지라 국회는 대선의 종속변수의 역할에 그칠 뿐 새로운 입법과 행정부통제 등의 문제는 뒤로 처진 듯하다. 그리고 대선을 향한 예비 후보들의 각종 몸짓이 선거구호로 구체화되어 나오고 있다.

우리는 분명히 장점이 많은 민족이고 활력이 넘치는 국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장점이 과잉된 탓인지 반대편 그림자의 길이와 폭도 커지고 있다. 사회의 양극화, 지나친 교육열, 계층간 변동성의 약화, 수도권의 비대화 과밀화와 비수도권의 소외와 공동화, 안정된 일자리의 축소 등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 오른지 오래되었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 중의 핵심적인 하나는 공교육의 파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터넷을 뒤져서 주요국가의 대학 진학율을 살펴보니, 미국 60%, 일본47%, 프랑스41%, 독일35%, 우리나라는 84%로 OECD 국가 중에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2010년 국세청 통계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대학졸업자 44만명 중 51%만 취업하였고 이중 37%는 비정규직이며 정규직 중 21%가 월소득이 150만원 미만이라는 심히 부끄러운 결과도 확인할 수 있다. 고등학생 100명 중 84명이 대학에 진학하지만, 대졸자 84명도 4년(또는 2년)이라는 시간과 엄청난 학비(대학 학비가 주요국의 2위)를 투자하고도 본전을 건지지 못하는 결과라는 것이다.

반대로 100명 중 16명은 대학을 진학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들이 우리나라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얼마 전 전문대학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여고를 졸업하고 공단의 생산업체에 취직해서 2-3년간 근무하다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과로 입학한 학생의 이야기이고, 그런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학생을 자신이 2년간 가르쳐도 입학 이전에 받던 급여 수준을 받는 안정된 일자리를 얻어주기가 어렵다는 말을 그 교수가 한다. 그리고 그런 학생이 왜 자신이 봉직하는 학교로 오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면 수긍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학생이 대학으로 오는 이유는 ‘고졸’이라는 딱지를 가지고 대한민국을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84:16의 사회에서 고졸 학력은 비주류, B급 시민이라는 우리 사회의 낙인이 있기 때문이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인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고졸’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에는 우리사회의 학벌 수준이 너무 인플레되어 있고 난무하는 대졸자의 틈에서 버티어낼 수 없기 때문에 지명도가 별로 없는 2년제 대학이라도 진학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왜 고졸자가 12년이나 수학한 고졸이라는 학력을 부끄러워해야 할까? 물론 개인차이도 있고 자긍심을 가진 고졸자도 많겠지만 지금은 고졸자가 성공하면 그것이 신문에 날 정도로 ‘신화화’될 지경이 되어 버렸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고졸자가 소수여서 문제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고졸자가 소수가 되는 것은 우리사회에 내재한 모순 때문이라는 점이고 아울러 이러한 특이한 학력 비율을 가진 사회는 구성원 누구에게도 행복을 주지 못하고 고통을 준다는 점이다.

논의를 돌려 우리를 돌아보자. 먼저 지금 중고생을 자식으로 둔 학부모의 인생을 살펴보자. 지금 40대 – 60대에 이른 시민들은 학벌이 가장 유용한 출세의 도구라는 경험을 인생을 통해 체득한 세대이다. 자신이 대학을 졸업했거나 그렇지 않거나를 불문하고 대학졸업장이 우리사회의 좋은 직장을 얻는, 보다 나은 보수를 받는, 사회에서 유력한 발언권을 얻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대학의 진학을 강요하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좋은 대학에 자식을 입학시키기를 요구하고 있다. 때마침 급성장한 국민소득수준은 대부분의 학부모의 요구를 충족시킬 정도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고 무분별한 대학증설로 인해 영양가 없는 대학이 남설되고 대학은 입학은 시키지만 그 투자비용을 책임질 수 없는 방관자로써 학위장사로 전락한 곳도 생기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간과한 것은 대학진학비율이 84%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한데 있다. 즉 자신의 자식뿐만 아니라 동네의 모든 청소년들이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는 생태계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 이제 학부모들은 깨닫기 시작한다. 모두가 대학을 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지만 예전보다 나아진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대학을 가기 때문에 대학을 나와도 취직할 자리는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 이르면 학부모의 대응전략은 그 의미를 변경하게 된다. 자식을 편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대학을 보내는 적극적인 동기로부터 대학을 보내지 않으면 소수자로 전락하고 만다는 소극적 방어논리로의 전환이다.

여기서 우리사회가 잃어버린 생태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고졸자들이 차지할 자리가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다. 고졸자로 채워졌던 직장의 말단 하위직들이 대졸자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고졸자를 임용대상으로 하고 있는 9급 공무원시험, 단순 기능직, 환경미화원, 은행, 매장의 창구직원, 경리직원 등이 대졸자로 채워지고 있고 그러한 자리는 고졸자 사이의 리그가 아닌 대졸자의 경쟁의 장이 되었다. 이제는 예전에 고졸자면 넉넉히 차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대학을 가야할 이유가 또 하나 추가된 셈이다.

고졸자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소수가 되어 버렸다. 친구들 중 대부분은 대졸자이고 자신은 친구를 만날 때마다 학력격차를 느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어떤 자리에서던 ‘몇 학번인가?’라는 질문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비주류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대학을 가야하기 때문에 대학입시는 국가적인 행사가 되어 버렸고, 고졸자가 대부분이던 과거에 비해 초등학교부터 대학입시를 염두에 둔 파행적 교과과정과 엄청난 비용과 스트레스를 요구하는 사교육이 쓰나미처럼 도도히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이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않던 80년대 이전의 중, 고등학교 교육은 고졸자를 위한 교육이었지만 지금 그 과정은 대졸자를 위한 교육이 되어 버렸고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의 고유한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대학입시를 위한 식민지, 과도기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행복한가, 고졸자는 설자리가 없고, 대졸자도 고졸이 하던 일을 할 뿐이다. 고유의 의미를 상실한 중 고등학교의 교육은 대입 입시학원의 역할을 할 뿐이고 그 나마 그 역할의 대부분은 사교육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고등학생에게 고등학교 교육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가르치는 교사가 학부모가 학생이 있을까? 도저히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 대학에 갈 처지 못되는 학생이 선택할 여지가 남아 있을까? 편의점 아르바이트 같은 임시직을 전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번듯한 자리가 아닌 구석진 곳에서도 자신보다 나은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라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적극적인 발언권을 가질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대학을 회의하는 학생들에게 대학이 아닌 다른 영역을 우리가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잘사는 나라를 설계해야할 정부와 정치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한 세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붕괴되어 버린 고졸자의 영역을 복구해야 하는 것이 시대적인 사명이라고 믿는다. 고등학교 교육은 그 자체로 완결적이어야 한다. 학생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히 설 수 있다고 믿어야 하고 학부모도 대학은 선택사항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믿음과 주장은 사실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고졸자의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고졸자가 담당할 수 있는 고유영역을 지켜주어야 한다. 대학으로 진학함으로 인해 상실할 수밖에 없는 기회가 있고 고졸로서 당당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정부가, 우리사회가 보장해주어야 한다. 고졸이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예전에 고졸자가 담당했던 일자리에 대학교육의 혜택을 입은 사람의 진입을 차단하는 것이 제일 먼저 할 일이다. 그러므로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정부출연기관, 공법인이 먼저 앞장서야 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입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특례보충역의 확대를 통해 고졸자에게 직장에 복무하는 것으로 병역의무를 대체할 수 있는 파격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직장에 근무하면서 전공분야의 학습을 병행할 수 있는 평생교육기관의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고 고졸자에게 교육의 기회를 부여해줄 수 있어야 한다.

고졸자가 자신의 영역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84%에 이르는 학생들이 대학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한 경쟁의 강력한 압력이 아이들을 밀어내는 중, 고등학교 교육도 자기완결적으로 정상화되지 않을까? 대학을 가지 않아도 담당할 사회에서의 역할 이 있다면 학부모도 자식에게 고액의 과외와 육체적 혹사를 강요하지 않고 자식과 눈을 맞추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게 되지 않을까? 주말과 방학에도 학교공부에 방해된다는 핑계도 집안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자기검열을 중단하지 않을까? 한편 대학에 진학하는 소수의 학생들도 그들이 졸업할 때쯤이면 보다 넉넉한 대졸자를 위한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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