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병원의 유령, 청소노동자의 하루

“경대병원은 공짜로 일시키는 병원, 환자 볼모로 잡는 병원”
뉴스일자: 2013년11월27일 13시00분

한철 여름에도 해가 뜨지 않는 새벽. 이명주(가명) 씨는 출근을 준비한다. 버스 첫차에 오르면 어두운 하늘만큼 적막이 가득한 얼굴을 한 몇몇 사람이 우두커니 앉아 있다. 이 씨는 그늘진 얼굴을 보며 아마도 자기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 씨는 경북대학교병원(경대병원)의 청소노동자다.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 건물 지하층에 유배당한 듯한 누추한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집에서 싸온 밥을 먹는다. 혹시나 사람이 내려올까 불도 켜지 않고 모든 근무 준비를 마친다. 간혹 담배 재나 쓰레기가 떨어져도 직원이나 환자보호자의 눈칫밥은 먹지 않으니 이 씨는 어둑한 이곳이 차라리 편하다.

▲지하에 마련한 휴식 공간

“처음 있던 곳은 보일러실이에요. 병원이 보일러실은 위험하다고 내보냈어요. 나와서 여기 지하로 왔죠. 사실 병원은 여기에서 쉬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어요. 다 알면서 공간은 내 줄 수 없으니 모른 체하고 있는 거죠. 복도 청소를 하다 보면 분명히 비품만 쌓아놓고 활용하지 않는 공간이 있어요. 병원이 그런 공간을 내어줄 리 만무하죠” (이명주 씨)

손진아(가명) 씨도 같은 시간 출근한다. 손 씨가 자리 잡은 곳은 경대병원 본관 외곽의 계단에 있는 작은 공간이다. 다리 뻗치고 누울 수도 없는 이곳은 보일러 관이 지나치는 곳. 거주용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이곳에 손 씨는 외풍을 막으려 돗자리를 사서 얼기설기 붙여 놨다. 보일러는 손 씨가 자리 잡은 곳을 데워주진 않지만, 손 씨는 한 몸 비빌 틈이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경대병원의 한 청소노동자가 마련한 휴식공간

경대병원에 간접고용 된 청소노동자 90여 명은 이렇게 하루를 숨죽인 채 시작한다.

휴식시간에도 긴장 놓지 못해
점심시간·휴식시간 상관없이 병원 수시로 지시해
직원들의 부탁으로 초과업무도 다반사

경대병원 청소노동자(응급실, 수술실 등 일부 파트 제외)는 오전 여섯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 아홉 시간 동안 병원에 상주한다. 오전 여덟 시 반부터 삼십 분간의 휴식시간과 열한 시 반부터 한 시까지 점심시간이 있지만, 마음 편히 쉴 수는 없다. 병실이 빠지는 경우나 새로운 환자가 입실하게 되면 즉시 청소를 해야 한다. 환자들이 갑자기 토하거나 피를 흘릴 때도 재빠르게 치워야 해, 병원에 상주하는 매 순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다. 청소노동자들은 청소업무 외에도 병원의 직원이나 병원 이용자들로부터 거절하기 힘든 요구를 받는다. 길 안내 같은 사소한 일에서 병실의 침대 시트 교체 등 정직원이 해야 할 일도 부탁받는다.

청소노동자 구유선(가명) 씨는 “외래에서 일한다. 청소하다 보면 길 안내를 하거나 환자가 힘들 때는 바래다주기도 한다”며 “어떤 경우는 간호사들이 치워야 할 것도 대신하는데, 간호사들도 인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대면하는 사이니 그냥 나서서 도와준다”고 말했다.

이계옥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민들레분회 분회장은 “병원에서 마음대로 부리려고 휴식시간을 두 시간으로 잡았다. 그만큼 임금을 못 받아도 일은 일대로 할 수밖에 없다”며 “국공립병원들은 대부분 하루 8시간을 인정한다. 하지만 경대병원 측은 동산병원이나 영대병원 같은 열악한 사립병원과 비교한다”고 지적했다.

노조 활동하며 근무조건 개선돼
정규직 노조도 비정규직 노조에 적극적 지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의 정년보장이 안 돼 있거나 임금도 낮은 사립병원과 달리, 노조(민들레분회)가 있는 5개 (서울대, 울산대, 경북대 등) 국공립 병원은 근무조건이 비교적 나은 편이다.

노조 없던 시절 경대병원은 여느 병원 못지않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홀대했다고 한다. 이 분회장은 “옛날 노조가 없을 때는 반장(용역업체 관리자)이 막강했다. 반장 눈밖에 벗어나서 조금이라도 힘든 자리로 밀려나거나 불이익 받을까 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며 “노조가 처음 생기고 힘이 없을 때 간부를 응급실에 배치해서 종일 밖에 나오지도 못하게 하며 노조활동을 방해했지만, 청소노동자들이 노조에 전원 가입하며 힘이 세져 이제 반장도 함부로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민들레분회는 병원 측과 면담(실질적으로 협상)을 하기도 한다. 간접 고용하는 사용자 측에서 으레 하청업체를 내세우며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와 달리, 이들이 실질적인 협상까지도 가능한 이유는 정규직 노조(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경대병원분회)가 적극적으로 함께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노조의 선전물을 배포하는 조합원

올해 민들레분회와 경대병원분회는 조합원 투표를 통해 공동파업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들은 ▲칠곡 경북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철회 ▲상시지속업무 정규직화 ▲칠곡경대병원 환자식당 직영전환 ▲수익성 추구하는 제3병원 건립계획 백지화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의 핵심 요구였던 칠곡경대병원 해고자 복직 등이 잠정 합의되며 경대병원분회는 예정했던 파업은 철회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협상하지 못한 민들레분회와 경대병원의 면담자리를 마련하는 등의 노력을 이어갔다. “지부의 기조가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함께한다는 것”이라는 우성환 의료연대 대구지부장의 설명이 이해된다.

병원의 급작스런 협의안 파기로 민들레분회 파업 돌입

한편, 민들레분회는 파업을 예고했으나 결국 26일 저녁까지 있었던 병원 측과의 면담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민들레분회는 ▲상주시간 9시간 중 8시간 근무시간 인정 ▲ 2014년도 임금을 2014년도 시중노임단가 적용 ▲정년 65세로 연장 ▲상여금 300% 지급 등을 핵심적으로 요구해왔다. 26일 저녁 무렵까지만 해도 요구안 대부분이 병원 측과 조율돼 잠정 합의서까지 만들었으나 병원 측이 돌연 진행됐던 합의를 철회한 것. 결국, 민들레분회는 27일 오전 6시부터 파업을 시작했다.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마다 빠지지 않는 ‘환자를 볼모로 파업한다’는 친기업적 언론의 보도와 간접고용으로 고용불안에 노출되는 청소노동자의 파업은 순탄치 않다. 또한, 병원의 정규직조차도 부족한 인력에 시달리는 걸 잘 아는 청소노동자들은 마음 한편에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이계옥 분회장

“청소하는 사람들은 정규직과 같이 있으면 늘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 하는 일이 병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라 우리 스스로 당당해지려 해도, 환자나 보호자들, 그리고 관리자들이 우리를 지저분하고 허드렛일 하는 사람쯤으로 본다면 스스로 몸을 웅크리게 돼요.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우리가 불합리한 대우를 받을 수는 없어요. 병원 업무의 특성상 우리의 쟁의행위가 공격받기 쉬운 건 사실이지만, 잘못은 그걸 빌미로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 병원에 있는 겁니다.”(이계옥 분회장)

몸을 비집고 들어오는 한파 같은 시선을 딛는, 경대병원 청소노동자 파업 1일차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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