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주] 기자질을 시작한 지 만 2년이 지나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많은 것들이 서툴다. 일을 시작하며 그리던 기자의 모습은 여러 특종과 단독 보도를 따내는 것이 아닌, 에드가 스노우(미국의 저널리스트, 중국혁명 대장정을 다룬 〈중국의 붉은별〉저자)나 조영래 변호사(〈전태일 평전〉의 저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단독 보도는 많이 했다. 아마 나만 눈여겨 보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고민 없이 가다가는 정말정말 재미없는 기사만 써 대는 C급 기자에 머무를까 봐 겁이 덜컥 났다. 요즘 방영 중인 <굿 닥터>의 주원(박시온 역)이 내게 “빨리 수술해야 합니다.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합니다”라는 말을 마구 뱉어내는 기분이다. 그래서 기사로는 나오지 않은 취재 과정에서 일어난 소소한 이야기를 풀고, 독자의 조언을 듣고자 한다. 레벨업을 위해서는 무한반복되는 몬스터 사냥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난 9월 27일 저녁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외근기사로 근무하던 임 모씨가 뇌출혈로 사망했다. 흔히 A/S기사라고 부르는 이들이 지난 7월 14일 노조를 결성하며 열악한 노동환경과 삼성전자서비스-협력업체로 이루어진 불법파견 의혹 문제로 이슈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일이었다.
SNS와 취재소스 발굴
임 씨가 사망한 시각은 27일 저녁 6시 20분경. 본인이 이 소식을 접한 건 그보다 3시간 더 지난 시점인 저녁 9시 50분경이었다. 임 씨가 조합원으로 있던 노조(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서 연락이 온 것은 아니었다. 생계를 위한 일주일에 2번 2시간씩 공을 들이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진이 빠져 담배 한 대 입에 물고 무심코 든 핸드폰으로 페이스북을 열어 확인한 사실이었다. (물론 한 시간 후에 안 사실이지만 본인이 들어가 있던 카카오톡 단체방에도 그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과로사로 추정되는 뇌출혈로 조합원이 목숨을 잃었다는 위영일 지회장의 글을 옮겨 놓은 페친의 담벼락을 보았다. 고인은 대구 칠곡센터에서 근무하던 외근기사였다. 빈소가 마련된 곳도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이었다. 갑자기 ‘빨리 취재해야 합니다’라는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급하게 페친에게 전화를 걸어 고인의 이름을 묻고 경북대병원으로 향했다. 예상 도착 소요 시간은 20분 후. 이동하면서 얼마 전 위영일 지회장 인터뷰 기사를 쓴 <미디어충청>의 정재은 기자에게 연락해 지회장 연락처를 물었다. 지회장은 서울 쪽에서 대구로 내려오는 길이라고 해, 닥치고 빈소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날 일정을 조절했다. 다음날 오전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대구경북 동조 단식 기자회견 취재 일정은 다른 기자에게 넘겼다. 본인 또한 50시간 동조 단식에 동참하기로 했던 터라 조금 갈등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활동하며 단식하기로.
흔히 기자는 담당 출입처를 둔다. 이 출입처로는 경찰서를 포함한 관청이 많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기자들이 관청에 뭐하러 죽치고 앉아 있나’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본인이 거기에 앉아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기삿거리가 거리에 널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정보 접근에 한계를 느끼면서 관청에서 오가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종종 관청에도 들어간다. 관공서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는 항상 찬양, 고무 일색이라 취재에 도움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공적 기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는 것은 필요하기에 기본적인 정보수집은 필수다.
갑자기 출입처 이야기를 하는 건 1차적 취재자료 확보를 말하고 싶어서다. 담벼락, 짹짹이, 일촌월드 등 사회적이면서 개인적인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모 신문이 제기한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따위와 같은 정보는 올라오지 않지만, 억울하고 답답한 이야기를 이곳에선 자주 찾을 수 있다. 연예인 신변잡기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연예정보 매체에서는 이들 스타의 SNS계정을 체크해 기사를 무더기로 쏟아낸다. 궁금하지도 않았던 연예인의 사생활 이야기가 포털사이트 검색순위에 떠 있기 때문에 무심코 클릭하게 된다. 이러한 연유로 SNS를 취재소스로 활용하길 주저하는 기자들도 있는데, 이건 똥과 된장을 구분 못하는 거다. SNS에서 올라오는 짧은 글과 사진은 중요한 1차 취재처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이 필요한 거다. 그걸로 끝나서 문제일 뿐, SNS 자체가 저평가 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취재원과의 관계, 디테일과 인간적 고뇌 사이
다시 취재 밑바닥 이야기로 가보자. 빈소에 도착해 임 씨의 동료 조합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동료 외근기사들의 업무스케줄표와 업무실적 압박과 관련한 자료를 모으고 근무환경과 관련한 증언을 들었다. 장례 첫날이라 유가족과 인터뷰는 자제했다. 아직 본인이 레벨업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인데, 차마 유족에게 일일이 캐묻는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간략하게 묵례하고, 임 씨의 실명과 영정 사진 공개 여부만 물었다. 대략의 취재를 마치고 장례식장 휴게실에 앉아 첫 기사를 썼다. 이 때문에 2년 만에 얼굴을 보기 위해 먼 곳에서 내려온 친구는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1시간가량 쪽잠을 잤다.
기사 작성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유족에게 무언가를 더 물어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자정이 넘었지만, 사측 입장을 들어봐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와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들을 잃은 유족에게 무언가 더 묻지 못한 건 ‘연민’이 아니었을까. 필요하다면 해야 했다. 상황에 따라 다시 판단해야겠지만. 아무튼 그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쾌할 수 없었다. 시각이 늦어 사측에 연락을 취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정보부족 때문이었다. 불법파견 논란이 있기 때문에 바지사장(협력업체사장)이 아닌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한 취재가 필요했는데, 정보가 없었다. 그렇게 피곤함에 잠이 들었다.
 |
▲삼성전자서비스 홈페이지. 연락가능한 대표전화가 콜센터와 회원문의 전화번호 밖에 없다. | | |
삼성 자본의 힘, C급 기자의 한계
28일 오전 삼성전자서비스 홍보팀 연락처를 찾기 위해 웹사이트를 뒤졌다. 그런데 웬걸. 서비스센터라 대표번호도 삼성전자서비스 상담 관련 번호뿐이었다. 삼성그룹 홈페이지를 뒤져도 삼성전자서비스는 서비스센터 콜 번호뿐이었다. 콜센터에 전화해 홍보실을 부탁하니 콜센터 노동자도 당황했다. 돌아온 대답은 “네? 홍보실이라구요? 저희도 정보가 없는데...”였고, 더 알아보겠다는 말을 하고 끊었다. 몇 군데 더 전화를 해보다가 삼성전자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5분여 만에 삼성전자서비스 홍보실 연락처를 알 수 있었다. 정보와 취재원을 찾는 데 굼뜬 스스로를 반성하며 동료들에 대한 추가 취재를 했다. 다행히 고인의 핸드폰 잠금장치를 풀어 추가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기사를 쓰고 난 2시간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삼성그룹 관계자라고 자신을 밝혔다. 삼성그룹 내 인터넷망은 하나의 IP로 접속하는데, 뉴스민 사이트 접속이 안 된다는 것. 혹시 뉴스민에서 이 아이피 접속을 방화벽으로 막아놓았는지 물었다. 확인 후 연락을 주겠다고 대답하고는 네트워크 확인 요청을 했다. 문제가 없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서 우리는 막아놓지 않았고, 그쪽에서 막은 것 아니냐고 물었다. 발신번호가 개인 휴대폰 번호라 진짜 삼성그룹 관계자인지 유무는 확인할 수 없으나, 어디선가 삼성전자서비스와 관련한 우리 기사가 접속이 안 됐던 것은 분명했다. 치밀하고 철저하다. 고작 작은 인터넷신문에 난 기사마저도 접속 차단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삼성자본의 힘.
주말을 지내고 30일 월요일 오전, 다시 빈소를 찾던 길에 삼성자본의 막강한 힘을 새삼 느끼게 됐다. 30일 오전 삼성전자서비스에서 ‘협력업체 지원과 협력 계획’을 발표한 것. 200억의 지원금을 투입해 ‘시간 선택제’ 일자리라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와 꼭 맞아 떨어지는 이 계획 발표 보도자료는 다수 언론이 ‘상생’, ‘윈-윈’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삼성 일가 관계사인 JTBC는 ‘삼성전자, 대기업 최초 하루 4시간 근무 시행, 삼성 세계혁신기업 8위 선정’이란 자막으로 보도했고, 임 씨의 사망과 관련한 뉴스는 내보내지 않았다.
애당초 언론은 ‘객관적’이지도 않으며 ‘정론 보도’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흩어진 팩트의 조각을 입맛대로 짜 맞추는 것이 언론일 뿐이다. 기사의 취사선택도 해당 언론사가 중요시하는 ‘팩트’의 수집에 따르는 것이다. 때때로 독자의 항의와 사회적 요구로 언론의 팩트 취사선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이 한계치는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
빈소를 찾아 노조 관계자들과 삼성전자서비스가 발표한 계획과 관련해 이야기를 마치고 곧장 임 씨가 근무하던 강북센터를 찾았다. 임 씨 사망과 관련한 취재 때문에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근무하던 많은 직원의 눈이 나에게 쏠렸다. 나를 응대하는 직원의 눈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임 씨의 사망 이후 처음으로 문을 연 서비스센터의 풍경은 전과 다름없었다. 미소로 고객을 응대하는 내근기사들과 북적이는 손님들, 임 씨의 죽음을 기리는 어떤 문구도, 물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나타나 자신을 ㈜대구서비스 소속이라고 밝힌 외근기사 관리팀장. 삼성전자서비스 소속이 아님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센터장은 회의에 참석해 취재에 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연락처를 주면 센터장에게 전달하겠다고 했고,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 센터장은 연락이 오지 않았다. 도리어 내가 연락을 몇 번 시도했으나, 통화조차 할 수 없었다.
기자의 한계,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
30일 저녁 추모제 취재를 위해 다시 빈소를 찾았다. 삼성전자서비스 A/S 기사임을 알 수 있는 티셔츠를 입은 이들이 대거 모여 있었다. 50여 명이 시작한 추모제는 마칠 때쯤 100명이 넘었다. 취재를 마치고, 장례식장 휴게실에 앉아 기사를 쓰던 내게 A/S기사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졸업하고 15년 만에 처음 만난 초등학교 동창 친구였다. 목숨을 잃은 임 씨의 직속 후임이라는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추가 취재를 마음먹었다.
10월 1일 오전 고인의 발인이 진행됐고, 나는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임 씨의 죽음으로 알려진 삼성전자서비스의 모습이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때문이었다. 다만, 그 어렵다는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고 금속노조에 가입해 싸움을 시작한 노동자들의 의지만이 삼성자본과 맞서 싸울 힘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나는 노동조합이 절대 선이며, 기업이 절대 악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각자 집단의 이익을 위해 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기업의 이익을 편드는 언론이 절대다수라는 사실과 노동조합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언론이 절대다수라는 사실이다. 다수 사람이 노동자임에도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이야기를 팩트로 수집하는 언론이 드물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파급력이 적은 언론, 기자로서 한계는 분명하다. 누구나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싸울 수 있다. 자본이 가진 무기 중 하나로 거대언론을 사용한다면, 나는 적어도 노동자에게 짱돌 하나쯤은 되고 싶다. 그리고 그 작은 짱돌을 끈질기게 공급할 것이다. 기다려라, 아직 취재는 끝나지 않았다.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