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김종노의 발칙한 클래식 (1)

세상은 바뀌어도 전통은 이어진다
뉴스일자: 2013년09월18일 13시20분

경계는 무너졌다. 벽은 허물어지고, 자의든 타의든 나뉘어 있던 것들이 뒤섞여서 하나가 되거나 새로운 의미를 가진 무언가가 되곤 한다.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것이 쉬이 바뀌곤 하며,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바뀌고 변하는 건 많지만, 그것을 예측해서 대응하는 건 힘든 일이다. 우리들은 변덕스럽고 복잡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과연 이 세상에 잘 적응해서 살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가? 행여나 우리의 발걸음보다 세상은 더욱 멀고 깊이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정신없는 와중에 변치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것들, 그리고 그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키고 안고 갈 만한 가치를 지닌 미덕들을 우린 전통이라고 부른다. 변덕스럽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옛 시절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니어 현대의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우리는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을 접하면서 변하지 않고도 아름답고 찬란할 수가 있음을 인식한다.

왜 클래식이 지겨울까?

클래식. 클래식이란 단어 자체만으로도 어떤 사람은 답답함과 묵은 냄새를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단어의 뜻 자체가 ‘오래된, 고전의’라는 뜻이 있음은 물론,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고 쉽게 질리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 반대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겠다. 흔히 오래된 물건이나 역사를 지닌 것에 클래식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마련이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슈트(Suite)나 구두, 자동차와 같은 것에도 클래식이란 단어를 붙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클래식이란 말이 가장 많이 통용되는 것은 바로 음악일 것이다. 모차르트, 베토벤과 같은 작곡가가 만들어낸 음악들을 우린 클래식 음악이라고 부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양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곡된 작품을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같은 서양의 전통적인 악기들로 연주한 ‘서양의 전통적인 고전 음악’을 클래식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말만 들어도 쉬이 정이 가질 않는다. 왜 우리는 우리의 유서 깊은 전통 음악(국악)을 두고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하는지 불만이 생길 수도 있을 듯싶다.

클래식 음악의 의미는 이전까지 중세에서 근, 현대에 이르는 서양음악의 역사와 그 역사를 이루는 작품의 종류라고 한정되어 일컬어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국악도 아닌 서양음악의 역사를 반강제에 주입식으로 학습하거나 또는 국영수 중심의 학습으로 인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버리기 십상이었다. 게다가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교양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흥미와는 전혀 상관없이 피아노나 플룻, 바이올린을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고 반복되는 지겨운 레슨을 시키기 마련이어서 이내 아이들은 학을 떼고 클래식 악기, 그리고 클래식 음악에 멀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물론 이 와중에 악기에 대해 흥미와 적성을 찾는 경우도 더러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아주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뿐인가. 빠르고 정신없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우리들 또한 빠르고 쉽고 재미있는 것에 자연스레 흥미를 가지고 열중하게 된다. 게다가 자극적이기까지 하면 더 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클래식음악은 쉽게 흥미를 가지기에는 너무나도 길고 정적이며 부드럽다는 인식이 많다. 클래식 음악을 접하는 방법 또한 문제요소 중 하나이다. 오랜 시간동안 딱딱한 좌석에 앉혀놓고는 휴대전화도 제대로 못 만지게 한다. 심지어 알아듣지도 못할 기나긴 음악이 몇 번이나 반복되는 것을 참고 있노라면 분명 보통 고역이 아닐 것이다.

클래식을 왜 들을까?

그 지겹고 어려운 클래식을 왜 들을까. 심지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 1등석 티켓은 왜 40만원이 넘는 티켓이 전회 매진될까? 유명 연주자의 LP판을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하고 수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고생을 사서 할까? 사실 클래식음악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언제나 공존하고 존재한다. 하지만 단지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인식을 제대로 하질 못하는 것뿐이다. 적어도 우리가 클래식 음악을 멀리 하려고 해도 클래식 음악 자체는 우리에게 멀어졌던 적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록 반 강제이긴 했으나 학원에서 배웠던 피아노와 플룻 등의 악기 뿐 아니라 초등학교 시절 ‘오카리나’나 ‘리코더’ 또는 드물게 ‘핸드벨’ 같은 악기를 한 번 쯤은 손에 잡았던 기억이 있다. 인기 있는 발라드 음악을 해부해볼까? ‘바이올린’, ‘첼로’와 같은 현 선율과 ‘피아노’ 소리 같은 클래식 악기의 연주가 들어가지 않는 발라드 음악이 존재하는가? 강렬한 비트의 클럽 음악에서 ‘드럼’의 경쾌한 리듬이 빠진다면 우리는 그렇게 흥겹게 춤을 출 수 있을 것인가? 락 페스티벌에서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락 밴드에게 일렉트릭 기타와 일렉트릭 베이스가 없었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에 열광하고 두 손을 흔들 것인가? 헐리우드 영화에서 우렁찬 관현악으로 연주되는 주제곡과 BGM이 없다면 과연 얼마나 무미건조 했을지 감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한마디로, 클래식 악기와 클래식 악기가 기초가 되는 전자악기들, 그리고 클래식 악기로 연주하는 연주는 이미 우리에게 있어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

게다가, 클래식 음악의 발전이 곧 우리가 듣고 유행하는 음악의 발달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모차르트가 피아노 협주곡 23번(Piano Concerto No. 23)에서 사용한 불협화음은 이제 재즈를 이어 대중음악에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코드로 자리매김 하였고, 각종 협주곡에서 연주자의 기량과 기교를 자랑하는 순간이었던 카덴차(Cadenza)는 재즈에서 즉흥연주(Improvisation) 또는 가수들의 애드 립(ad-lib) 으로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 이런 몇몇 예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에서 기초된 많은 형식과 방법들의 결과물이 현대에 이르러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클래식! 도전하자!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 클래식 음악을 서양 고전 음악이라고 단정 짓고 멀리하는 것은 이제 구닥다리 사고방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클래식 악기가 사용되는 음악은 모두 클래식 음악에 빛을 진 것이고, 지금 유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음악은 모두 클래식 음악과 관련이 있다(심지어는 그 모두를 클래식 음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대중음악을 즐겨 듣는다면 곧 클래식 음악을 들을 준비 또한 되어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또한 클래식 음악이 모두 길고 머리 아픈 음악만 있는 것도 아니다. 처음 들어도 깊이 빠져 들 수 있는 작품들이 많지만 선입견으로 인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앞으로 독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여 역사적 의미가 깊지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 아닌, 듣기 쉽고 깊이 빠져들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하여 들려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예정이다. 어느 새 클래식 음악에 한 발짝 다가서 있는 독자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모쪼록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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