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이 바람을 일으켜 길게 자란 머리칼을 휘날린다. 지하철 바람에는 지하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뒤섞여 있다. 브레이크를 잡은 지하철 바퀴가 레일을 갉아먹으며 내는 매캐한 냄새도 섞였다.
대구지하철해고자 전경배 씨는 지하철 특유의 냄새를 맡으면 8년 전 대구지하철공사에서 전자·기계 장비 수리담당으로 일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하철 운행 종료 후 모터카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면 전 씨는 “오늘 하루가 끝나는구나!”라고 읊조리곤 했다.
전 씨는 파업 주도, 업무방해 등의 사유로 다른 간부 3명과 함께 징역 및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며, 기다렸다는 듯 열린 공사의 징계위원회로 2005년 해고됐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2004년 노조는 지하철에 안전위원회 구성과 안전을 위한 인력 확충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했다. 해고 후 9년째, 전 씨는 지하철 냄새를 맡으면 몸에 익어 생생한 노동의 기억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전 씨는 해고자로 추석을 9번 보냈다. 그때마다 친척들로부터 받았던 불편한 시선도 이젠 익숙해졌다.
“처음에 해고되고 추석을 쇠러 친척들 걱정이 많았어요. 대구지역의 특성이 있으니, 파업 같은 건 하지 마라, 괜히 나서서 무슨 꼴이냐, 심지어 골수분자들이라며 타박을 주기도 했죠. 지금은 서로 익숙해졌지만 속으로는 항상 무거운 짐이 있는 추석이죠.”
지하철 파업에 유달리 강경한 대응한 대구시, 여전히 해고자 복직 못 해
해고기간 폐암으로 해고자 한 명 사망, 나머지 해고자들 생계 어려워
당시 해고된 13명의 해고자는 여전히 투쟁 중이다. 그동안 해고자 중 한 명은 폐암으로 사망했다. 12명의 해고자는 여전히 어려운 삶을 버텨내고 있다.
“역에서 근무했던 서장환 씨는 아이가 하나 있었어요. 부인이랑은 해고 이후 이혼했죠. 고생 많이 했어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노조도 기존에는 하나였는데, 복수노조 시행되고 나서 국민노총이 들어와서 기존 노조에서 조합비로 지원해주던 생활비도 안 줬어요. 남은 12명의 해고자도 모두 어려운 삶을 보내고 있죠.”
전 씨는 유난히도 대구가 지하철과 악연이 있다고 했다. 파업 당시 함께 연대파업 했던 서울·인천·부산지역에서는 해고자가 전혀 없거나 전원 복직했는데, 유달리 대구만 강경한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
“파업 당시 대구시장이 조해영 씨였고, 당시 정무부시장이 현 시장인 김범일 씨였어요. 김범일 시장이 지하철과 악연이 많죠. 부산과 서울은 해고자가 없고 인천은 5명이 해고됐다 전원 복직했어요. 더군다나 대구에서는 지하철 참사를 겪었고 그 때문에 안전위원회를 구성하고 안전을 위한 인력 확보하라고 요구했던 것인데. 저희로서는 너무 억울한 심정이죠.”
그럼에도 지하철 해고자들은 억울한 심정과 경제적 어려움을 딛고 여전히 투쟁중이다. 대구시는 지하철 3호선을 건설하며 올해 200여 명, 내년 180여 명 총 380여명을 추가고용 할 계획이나, 고용과 관련해 해고노동자들에 아무런 언급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해고자들과 대구지하철노조는 올해 5월 1·2·3호선 전 구간을 도보행진하며 대구지하철 3호선 안전문제를 알리기도 했다. 전 씨는 “지하철 3호선의 안전문제를 이야기하면 시민들이 크게 호응해준다”며 “3호선 안전을 위해서 무인운영 되어서는 안 되며, 하루빨리 해고자도 복직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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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8일 참사 당시 모습. [사진출처=대구지하철중앙로역화재사고백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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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건설 중인 3호선, 2014년 개통을 앞두고 있다. | | |
사망자 192명, 부상자 151명의 끔 찍한 사고를 내고도 3호선 안전문제 지적에 ‘안전하다’고만 되뇌는 대구시, 안전을 외치다 해고당하고서도 3호선의 안전을 외치는 노동자들.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투쟁해나가겠다는 해고자들. 추석만이라도 마음 놓고 쉬어야 하는데, 해고자들은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올해도 마음이 조금 편한 추석을 맞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는 전 씨. 다른 지역에서 복직한 사람들과 통화 할 때마다 서로 마음이 무거워진다는 전 씨는, 그럼에도 투쟁을 초연히 이어갈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 성묘를 가면 복직 할 수 있기를 빌 겁니다. 9년이란 긴 시간동안 힘들게 투쟁해왔으니 조금만 더 견디면 좋은 날이 있을 거예요. 12명의 해고자들도, 또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도 하루빨리 복직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대구시와 공사도 마음을 바꿔 하루라도 빨리 복직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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