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처조카를 보았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오랜만에 보았더니 부쩍 키도 커졌고, 제법 청소년티가 난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에 거침없이 욕설을 섞어 말한다. 초등학교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생각하다가 알아보니, 초등학교 때 주위에 친구들은 욕설을 쓰고 있었지만 자신 스스로 쓰지 않았다는 건데, 중학교에 들어가니 욕설을 하지 않고는 친구들과 대화가 원활하지(?) 않더란다. 문득 얼마 전에 보았던 김규항 씨의 글이 생각났다. 인용해 보면
“ 아이들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오늘 우리 아이들이 욕을 입에 달고 산다는 걸 아는가? 하긴 어느 아이도 제 부모 앞에선 그렇게 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마치 옛날 양아치들처럼 아무런 이유도 감정도 없이 욕을 한다. 드라마 속 일본인이 입을 벌릴 때마다 ‘아노’ 하듯 그들은 입만 벌리면 ‘씨발’ 한다. 폭력적인 미디어가 문제인고? 싱거운 소리 마라, 아이들이 무슨 앵무새더냐. 그게 다 신음이고 비명이다. 아이들 사는 꼴을 봐라. 그 정처 없음이 입에 욕이라도 달지 않으면 하루라도 견디겠는가?”
- 김규항, ‘불가사리’ ,<한겨레 신문 2009.04.02.> -
아이들이 이럴 진데 아이들하고 마주보고 있는 선생님들은 이 글을 읽고 어떤 심정일까? 그리고 그 선생님이 국어교사라? 국어선생님이라 국어순화차원에서 좀 더 순화된 신음과 비명을 가르칠 수 있는 노릇도 아니다. 수행평가다, 일제고사다, 진도를 내야 할 교육현장에서 교사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교육자로서의 자기 가치는 또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한 것이랴.
얼마 전 부산, 울산, 경남의 국어교사모임에서 여름 연수가 있었다. 나에게 치유와 성찰의 공연을 부탁했다. 작년 주제는 “시대”였는데, 올해 주제는 “치유와 성찰의 국어교육”이다. 프로그램을 보니 선생님들의 진솔한 고민이 묻어있다. 어느 노교사의 ‘젊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부터 청소년의 뇌를 임상생리학적으로 이해하는 꼭지까지, 선생님뿐 아니라 부모도 꼭 한번 들어보고 고민하면 좋겠다는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다. 나는 선생님들이 들어봤으면 하는 아이들의 노래를 골라 자료집에 실어달라고 보냈다.
그리고 마침 내가 알고 있는 선생님이 직접 글을 쓰고 곡을 쓴 “수업 좀 잘하고 싶다” 란 노래를 불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연 날 여러 노래를 불렀다. 선생님들도 치유가 필요하다. 이 이율배반적인 교육현장에서 자신이 교육자로서의 품었던 젊은 날의 다짐을 얼마나 지키기 힘들까, 그 속에서 갈등하며 얼마나 또 속은 문드러졌을까? 철밥통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며 지식의 전달자이로만 보여지고, 아이들이 등 뒤로 내뱉는 수많은 욕설을 들으며 아이들과의 소통의 문제를 한숨 섞인 탄식으로 고민했을 우리 선생님들.
내가 그날 만난 선생님들은 적어도 외로워 보였고 아팠으며, 쉴 자리 하나 내주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나의 노래로 치유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찰을 향한 선생님들의 눈빛은 그윽하고 깊었지만 따뜻했다. 수많은 공문과 보고서 작성에 지쳐 아이들과의 수업이 자신에게도 늘 성에 안 차 교재연구 좀 잘해서 제대로 수업 한 번 잘하고 싶다는 선생님의 바람이 노래가 되어 나온다. 내 노래보단 이 노래가 선생님들에겐 위안이고 치유요, 성찰이 담긴 노래가 아닐까 한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가정과 부모들은 늘 부재하거나 딴소리를 할 뿐. 학교 안 구석구석을 내가 다 알 순 없지만, 못난 어른들이 만들어낸 교육시스템 안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아이들과 선생님들께 미안한 마음과 함께 힘내시라고 노래씨앗하나 또 뿌린다.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