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폭력에 희생 당한, 故 하중근 열사 7주기 추모제 열려

"민주노조 사수하는 것이 열사정신 계승하는 것"
뉴스일자: 2013년07월27일 05시42분

7년이 지났지만, 의문사로 남겨진 故 하중근 열사의 죽음. 경찰의 과잉 진압에 의한 죽음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적으로 수사가 이루어졌지만, 건설노동자의 죽음은 아직 정부 당국의 사과 한마디 받지 못했다.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포항지부는 26일 오후 4시 경북 포항시 해도근린공원에서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故 하중근 열사 7주기 추모제’를 열고 진상 규명과 함께 민주노조 사수를 외쳤다.

2006년 포스코 현장 토목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며 9시간 노동 거부를 선언하자 사측은 해고했고, 포항건설노조 4천여 조합원은 파업에 돌입한다. 그해 7월 16일 형산강로터리에서 열린 집회를 경찰은 폭력적으로 진압했고, 하중근 열사는 뒷머리 우측 부근을 가격당해 쓰러진 후 뇌사 상태에 빠졌다. 결국, 8월 1일 운명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11월 27일 하중근 열사의 사망사건에 대하여 경찰의 과잉 진압을 지적하면서 경찰의 집회, 시위 강제해산과정에서 열사가 사망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인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유족과 열사대책위원회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3년을 끌다가 2009. 12. 1대법원은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시우 플랜트건설노조 포항지부장은 “바로 이곳에서 15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경찰의 폭력적 방폐와 소화기 진압으로 (열사는) 숨졌다. 정권이 두 번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 규명과 사과가 없다”며 “저승에 계신 하중근 열사는 노조를 중심으로 노동해방의 길에 함께 가길 염원할 것이다. 노조를 중심으로 뭉쳐서 민주정권을 되찾아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자”고 말했다.

이용대 전국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은 “하중근 열사는 숙제를 남기고 갔다”며 “대정부 사과와 보상을 받아내고, 노동자의 신성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내자”고 호소했다.

박해욱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위원장은 “인천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어용노조인 국민노총과 한국노총에 아무 망설임 없이 가입원서를 쓰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어떻게 지켜온 현장인데 일 몇 달 하자고 어용노조에 가입할 것인가.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 열사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연 민주노총 경북본부 비상대책위원장은 “7년이 지났다. 노동자가 안 죽어도 될 만큼 노동권이 성장할 때도 됐는데, 얼마 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또 자결했다. 정권이 두 번 바뀌었어도 노동자는 여전히 인간이 아니다. 절대로 우리노조 빼앗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중근 열사 영정 사진과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

교육혁명대장정을 진행 중인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7년 전 하중근 열사가 자본과 정권에 악랄하게 짓밟혔을 때를 똑똑히 기억한다. 자본과 정권은 사과 한마디 없다. 이것을 해결할 방법 중 하나가 교육혁명”이라며 “국어, 사회, 도덕 교과서 어디에도 당당한 노동자의 모습이 들어있지 않다. 노동자가 세상의 중심이고 주인이라는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이 교육혁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제는 참가자들의 헌화를 진행하며 마무리됐다.

민주노총 경북본부는 7월 한 달을 ‘열사추모주간’으로 정하고 열사에 대한 소개와 추모의 시간을 진행하고 있다.


고 하중근 열사 약력

1962. 7. 11 경북 포항 호미곶 구룡포(현 포항 남구 대보면)에서 태어남
1981 포항 수산고등학교(현 포항해양과학고) 졸업
1981 원양어선에서 항해사로 10여 년 근무
1993 건강보조식품 사업
1995 소형 통발어선 운영
1997 포항건설노조에 가입해 제관분회 소속으로 활동
2006. 7. 16 포항 형산강로터리 집회에서 경찰폭력으로 쓰러져 뇌 손상 판정
2006. 8. 1 새벽 2시 55분 뇌사 상태에서 끝내 운명
2006. 9. 6 포항에서 건설노동자장으로 장례/화장 후 고향 앞바다에 뿌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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