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 창으로 만나는 시름 많은 노동자 (1)

[기획연재] (4) 하소연할 길이 없는 노동자
뉴스일자: 2013년07월26일 07시05분

[편집자 주] 저임금 장시간노동의 대명사인 성서공단. 성서공단노조, 성서공대위는 10년이 넘게 성서공단 노동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최근 금속노조 대구지부, 민주노총 대구본부 등과 함께 ‘성서공단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이 발족했다.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과 노동, 그리고 애환과 희망을 솔직히 드러내는 ‘성서공단, 노동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격주 수요일마다 <뉴스민>에 약 20회 연재한다.

출근하면 잠긴 문 앞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동자, 야간하고 퇴근길에 기다렸거나 아니면 잘려서 백수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이렇게 상담의 아침은 시작된다.

십수 년 전 성서공단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시작한 첫 사업도 상담이었다. 어디 하소연할 길이 없는 노동자, 억울해도 잘릴까 봐 말 못한 채 언젠가는 찾아갈 노조명함을 지갑 깊숙이 넣어 놓았던 노동자, 그만큼 크고 작고, 아프거나 눈물 나는 사연들이 상담소에 쌓여간다.

성서공단노조사무실이 해장국집 5층에 있을 때는 해장국집에서 벌렁거리는 가슴을 내려 앉히려고 낮술 한잔 먹고 올라오는 경우도 꽤 있었고, 아예 술자리로 와 달라는 상담 요청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한국노동자다. 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이주노동자보다 몇 배는 더 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상담실에 뒷문을 하나 만들어야 하나?’ 하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만큼 눈치와 두려움이 큰 것일 게다. 그래서 한국노동자는 전화 상담이 많다. 매월 이뤄지는 출근 선전전날 점심시간이면 선전물 상담코너 이슈에 따라 연차제도며, 5인 미만 사업장 퇴직금이며 이러저러한 상담이 줄을 잇는다.

이에 비해 방문상담은 우리도 마음을 길게 먹어야 한다. 빠르게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스마트폰 시대에 굳이 뒤 꼭지 감추며 낮술이라도 한잔해야 겨우 발을 옮겨오는 상담이라 절절하고 기가 막힌다. 그래서 들어야 하는 이야기도 많고, 듣다가 오히려 흥분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찾아오는 노동자들이 하는 말 중에는 “내가 당하고 나니까 상담하는 곳이 눈에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본인이 당하기 전 노조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는.

사건 중에는 노동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연들도 많다.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사례가 많기도 하고... 사연을 쭉 듣고 나면 “인자 갈랍니다. 어렵다는 거지예?”, “그래도 이야기를 쏟아놓고 나니 속은 쫌 후련합니다”하고 나선다.

이에 비해 이주노동자 상담의 사건 유형은 단순하다. 폭행, 체불임금, 퇴직금, 산재, 고용허가제 사업장이동 등.

한국인 상담은 검색도 하고, 듣는 풍월도 있어 걸러 걸러서 오니 사실 까다로운 것들이 많으나, 이주상담은 어딘가 도움이 된다면 바로 찾아오는 것이다. 인근 성주, 고령 골짜기에서 전라도 익산까지, 단속을 피해 도망치듯 사업장을 떠나 몸은 왔지만 남은 것은 퇴직금과 임금이다.

이주노동자 상담은 언어상 전화 상담이 거의 없다. 대신 손짓, 발짓, 콩글리쉬를 다 동원하고 심지어 통역하는 분들의 조력까지 있어야 한다. 그러니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정기 상담시간에는 대기자들이 많을 수밖에.

성서공단에서 이주노동자 퇴직금 상담들이 해결되니 한국노동자의 퇴직금 상담이 그 뒤를 잇는다. “아니 외국아들도 퇴직금을 주는데 우리는 와 안 주능교?”이다. 그래서 성서공단에서 퇴직금 정착은 이주노동자 상담을 통해서 정착되기 시작했다. 최저 기준이 높아지니 함께 높아지는 원리.

이런 사례들은 이제 이주노동자도 연차를 적용해나가고, 일거리 없다고 퇴근시켜 임금을 안 주는 휴업수당 미지급도 착착 적용해간다. 이렇게 되면 성서공단에도 연차와 휴업수당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이주와 한국인, 노동자와 기업주 이렇게 대비가 많이 된다. ‘이주’, ‘노동자’들의 거짓말 경우와 ‘한국인’, ‘사장’들의 참말 경우가 비슷하다. 퇴직금 상담으로 사장에게 전화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입사할 때 퇴직금 안 주기로 약속했어”, “퇴직금 쪼로 매월 더 줬어”라는 우리도 허를 찌르는 말이 있다.

전자의 경우는 “말이 안 통하는데 어떻게 약속을 했어요?” 하고, 후자의 경우는 “더 주었다는 것이 딱 최저임금인가요?”다. 도사 앞에 요령 흔드는 식의 거짓말에 넌더리가 난다. 그다음 많이 듣는 말은 “가가 회사 나갈 때 불량을 엄청 내고 나갔으니, 내가 받을 돈이 훨씬 많다. 그러니 이 정도에서 서로 퉁치자”한다. 그러면 불량 낸 건 증거 만들어 별도로 민사소송으로 해결하시고 월급은 달라고 해서 결국은 다 받아낸다. 이러니 이주노동자가 자국으로 돌아가면 반한노동자가 안 될 수 있을까? 특히, 손 잘리고 팔 잘려서 귀국한 노동자의 심정은 과연 어떻겠는가?

슬슬 사장의 거짓말이 지능형으로 바뀐다. 요즈음 신종 사기는 “이 친구 회사에 다니다 갑자기 다른 회사 갔다가 돌아왔어” 즉, 1년이 안 된 기간 내에 입퇴사를 반복하여 계속 일한 것이 1년이 안 된다는 말인데, 자기들끼리 입 맞추고 결근 장부를 조작하는 사례가 생긴다.
 
또 다른 저질 사례는 월급을 다른 사람의 명의로 입금하는 경우다. 이건 순 계획적인 고의로 월급봉투나 임금명세서, 출퇴근카드도 없고, 유일하게 남는 증거자료는 은행통장 일 텐데... 월급을 사장 이름과 제삼자 이름을 번갈아 입금하면서 다른 명의로 지급한 월급은 우리 회사에서 일을 안 했다는 증거란다. 여기서 더 진화하는 사기는 통장으로 반을 넣고 반 정도는 그냥 은행봉투에 아무런 이름 없이 지급하는 것. 퇴직금을 준다면 통장에 찍힌 만큼만 주겠다는 건데... 심지어 3년을 일한 스리랑카 여성노동자에게 “야는 본 적도 없고 우리 사회에 하루도 일 한 적이 없다”한다.

가끔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의 노동법을 설명하는데 막히는 경우들이 있다. 그 법이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더 민망하다. 진정 내고, 고소해도 “배째라”면서 떵떵거리고 다니는 사장들의 경우를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그래서 체불임금 해결하러 노동부에 가는 것보다 경찰서로 가는 경우들이 늘어난다. 집회신고 내서 투쟁을 하면 슬그머니 돈을 내민다. 부끄럽지만 덜 미안해지는 하루하루다.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