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빨간 주부의 부엌에서 보는 세상 (8)

낡은 것으로 돌아가기
뉴스일자: 2013년07월03일 14시36분

지금껏 사용하던 스마트 폰은 3G다. 남편이 재작년까지 사용했던 휴대폰도 3G였다. 그것도 모르고 이동통신 지점에 가서 "저, 스마트 폰을 2G 폰으로 바꾸려고 왔는데요?" 라고 말하면서 자신만만하게 남편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담당 도우미가 "유심카드가 있는 이것도 3G예요." 하는 것이었다. 휴대폰을 바꾸기로 마음먹고 알아보니, 언론에는 2G 폰도 판매 중이라 했지만 매장에는 디스플레이용밖에 없었다. 낡은 폰이 없었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스마트 폰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제한된 범위 안에서 고르는 것이 ‘(선택의) 자유’라고 말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장점이라고 자랑한다. 기회비용을 들먹이면서 결국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택의 다양성이 말 그대로 ‘다양한가’에 대해 의구심이 생겼다.

정보가 자산(資産)인 이 시대는 초고속 통신망과 스마트 폰으로 정보의 속도에 조응해야 한다고 광고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대의 흐름에 불응하는 낙오자가 된다. 모뎀으로 통신하던 시절부터 곰곰이 따져 보면, 생활비에서 통신료의 비중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집 전화와 분리된 인터넷 통신망, 식구마다 가진 휴대 전화기, 거기에 따른 비용은 통신료뿐만 아니라 전기세도 포함된다.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기웃거리고 번호 이동하면 공짜라는 선전에 현혹되어 늘어나는 비용은 안중에도 없었다. 소비가 미덕이란 말에 포획 당해 씀씀이가 커지는 데에 둔감해졌다.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신제품 중에서 하나를 구매했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처럼 우리의 자유의사가 혹시 비가시적인 누군가에 의해 암묵적으로 강요된 것은 아닐까. 개인이 가진 물건이 그이를 나타내는 ‘기호’로 작동하는 현대에 우리는 타인에게 ‘당신은 그것을 소유할 만큼 잘 사는 군요.’ 혹은 ‘당신은 그런 수준의 사람이군요.’라는 선망과 인정의 눈길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게다가 우리는 컴퓨터와 전화기의 편리함으로 세계 각지에 흩어진 사람과의 빠르고 복합적인 소통을 내세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울림 있는 소통'인가 생각하면 의문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는 기계와 대화 하는 것이다. 화면에 나타난 문자에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 감정상태 같은 신체 언어는 보이지 않는다. 이모티콘, 사진, 때로 영상으로 신체언어의 부재를 메우는 노력을 시도하지만, 이미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카카오 톡, 문자메시지, 채팅방의 대화는 소통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모습일 뿐이다. 대면할 때 마주치는 신체언어와 음성언어를 통해 전해지는 말의 뉘앙스, 감정의 울림이 있는 대화가 익명으로 파편화 된 우리의 마음을 데워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과감히 낡은 것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했다. 궁극적으로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물론 그동안 익숙했던 수단에서 멀어지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편리를 이유로 사람과 사람을 섬처럼 고립시키는 자본주의 체제에 불만을 품으면서도 정작 현실논리에 순응했다. 비록 휴대폰 바꾸기가 달걀로 바위 치기 같은 쓸모없는 저항처럼 보일지라도 체제의 틈을 만드는 데 몸짓을 시도할 것이다. 손 편지로 안부를 전하고 마음을 전하는 오래된 과거의 소통 방식으로 되돌아가 볼 작정이다. 이거, 너무 거창하다 해도 한 번 시도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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