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정만진의 대구여행 (23) 비슬산 일대

세계 최대의 암괴류, 참꽃 군락, ‘빨간 마후라’, 그리고 사효굴
뉴스일자: 2013년06월08일 01시10분

옛말에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본다(見樹不見林)’, ‘사슴을 쫓는 자 산은 못 본다(逐鹿者不見山)’고 했다. 산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그 산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비슬산 역시 마찬가지이다. 산의 정상인 천왕봉이나 대견사지 뒤편의 토르 위에 올라서는 비슬산의 전경을 볼 수가 없다.

비슬산은, 주위의 다른 봉우리에 오르면 전체적 장관을 볼 수 있는 여느 산들과는 또 다르다. 비슬산과 더불어 대구의 2대 명산인 팔공산만 해도 초계봉, 용암산성, 가산바위, 도덕산 , 한티재(뒤편) 등에 가면 장쾌한 팔공산맥의 기운을 생생하게 눈과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비슬산은 다르다. 비슬산을 보려면 반드시 유가사 건너편의 초곡산성 터에 올라야 한다. 그곳에서만 비슬산의 전경을 맛볼 수 있다.

▲대구 달성 초곡산성

초곡산성에 가려면 유가사 정류장 왼쪽의 다리를 건넌 다음 6km를 걸어야 한다. 길은 대부분 임도에 줄곧 평지 수준이다. 하지만 거리가 간단하지 않으니 쉽게 볼 일도 아니다. 게다가 성터에는 볼 만한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허위허위 올라온 보람이 반쯤 사라진다. 하지만 비슬산 쪽을 바라보는 순간 그런 허탈감은 정말 구름처럼 사라진다. 비슬산의 웅장한 고위 평탄면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어느 방향에서도 결코 전모를 드러내지 않는 비슬산이 유독 이곳 초곡산성 정상에서만은 남김없이 나신(裸身)을 보여준다!

짙고 푸른 산빛, 거의 직선처럼 간명한 산등성, 광활한 고위 평탄면, 기러기처럼 창공을 흐르는 하얀 구름조각들 앞에서 길손은 저절로 눈이 부신다. 그렇지 않아도 유가사 시방루(十方樓)의 황금빛 지붕은 정말 특이하다고 평소 생각해 왔는데, 초곡산성 성터에 서서 아스라이 바라보는 그 찬란한 빛깔은 정녕 사람의 마음을 부푼 풍선처럼 노오랗게 물들여준다. 

일연스님께서 23년간이나 수도 생활을 했던 비슬산은, 그 중심사찰인 유가사의 황금빛 지붕도 특이하지만, 빙하기 때의 화강암 산 형성과정을 정말 잘 보여준다. 정상 일대가 100만㎡나 되는 고위 평탄면인 것도 그렇고, 장장 2km에 걸쳐 펼쳐지는 세계 최대의 빙하기 암괴류는 더욱 남다른 장관이다. 물론 교과서에도 수록된 천연기념물이다. 

▲비슬산 암괴류

비슬산이 암괴류의 세계적 보물 창고라는 사실을 실감 나게 보려면, 소재사에서 곧장 등산로로 오르지 말고 자연휴양림 복판에서 오른쪽으로 난 포장 임도를 걸어야 한다. 그 길은 대견사지까지 이어지는데, 계곡 건너편에 있기 때문에 산비탈을 타고 흘러내린 둥글둥글한 암괴류(Block stream)와 날카롭게 각이 진 애추(Talus)들이 끝없이 쌓여 있는 광경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 광경을 보면 빙하기 암괴류를 왜 ‘돌강(江)’, ‘바위강(江)’이라 부르는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비슬산 암괴류 중 토르(tor, 바위산)는 대견사지 일대에 모여 있다. 저 깊은 땅속에 묻혀 있다가 8만∽1만 년 전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 때에 불쑥 모습을 드러낸, 집채 이상 크기의 기기묘묘한 바윗덩어리들 군집 앞에 서면 놀라 벌어진 입을 도무지 다물 수가 없다.

▲대구 달성 비슬산 유가사
▲대구 달성 비슬산사 효굴 입구

비슬산 높은 곳의 바위들은 옥구슬[瑜]과도 같고 부처[伽]와도 같다. 그래서 절 이름의 유가사(瑜伽寺)로 정했다고 한다. 기기묘묘한 토르들의 형상을 보노라면 유가사 작명(作名)의 논리는 저절로 수긍이 된다.

비슬산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절경을 보려면 5월 초순에 대견사지를 찾아야 한다. 이즈음이면 대견사지 바로 뒤 토르 군집 위 대마루능선에서부터 천왕봉 병풍덤 아래까지의 100만㎡에 이르는 평지가 온통 붉게 핀 참꽃으로 가득 채워진다. 특히 소재사나 포장임도 쪽으로 올라온 이들은 대견사지에서 숨을 고른 후 집채 같은 토르 사이로 머리를 내밀었을 때, 참꽃 만발이 하늘까지 뒤덮고 있는 장관을 응시하는 순간, 그 누구든 저절로 무아지경이 된다.

참꽃 군락을 뚫고 4km를 걸으면 비슬산 최고 꼭대기, 그러나 그저 평평한 들판인 천왕봉 번치에 닿는다. 만약 어디로 내려가도 무방한 자유가 있다면, 길은 여러 갈래이다. 유가사 반대편으로 내려가 일연스님이 주지로 있었던 경북 청도 용천사에 닿아도 좋고, 줄곧 앞으로 나아가 석조계단(石造戒壇/보물 539호)을 자랑하는 용연사에 이르러도 또한 좋다.

물론 그리로 가면 도성(道成)대사가 도(道)를 통(通, 成)한 바위[岩]이자 암(庵)자인 도통암(道通岩) 및 (道成庵), 그리고 일연 스님의 정취가 깃든 유가사는 볼 수 없다. 만약 그들을 모두 보려면 도성암으로 내려와야 한다. 도성암에 들렀다 오면 유가사와는 산 아래에서 저절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대구 달성 비슬산 도성암 대웅보전 삼신각

자녀와 함께라면 꼭 ‘빨간 마후라’기념관과 사효굴에!

▲유치곤 장군 기념관

‘빨간 마후라’ 기념관의 공식 명칭은 ‘유치곤 장군 호국 기념관’이다. 이 기념관 탄생에는 유가면민들의 평상시 마음가짐이 결정적 밑거름이 되었다. 평소 유가면 사람들은 고향을 빛낸 인물- 영화 <빨간 마후라>의 실제 모델 유치곤 장군을 기리는 기념관을 짓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던 중 유가면의 민간단체 ‘유가 애향회’가 2002년 3월 처음으로 기념관 건립을 논의하였고, 그 이후 ‘유치곤 장군 호국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현삼조)가 앞장서서 활약한 끝에 2005년 6월 15일 준공의 결실을 보았다.

기념관의 정점은 <빨간 마후라>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과, 기념관이 외형만이 아니라 내부도 비행기의 실체를 그대로 살려서 건축되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뜰에 진열된 전투기들과 ‘빨간 마후라’ 노래비, 유치곤 장군 동상도 좋은 볼거리들이다. 장군의 동상 위로 비슬산의 거대 토르들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 또한 장관이다.

사효굴(四孝窟)은 유가사 방면 답사의 마지막 볼거리이다. 사효굴은 이름 그대로 네 명의 효자에 얽힌 전설이 깃든 동굴인데, 자세한 내용은 대구‘직할시’가 펴낸 <대구의 향기>에 실려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그 책을 구해서 읽어보기는 어려우므로 줄거리만 간략히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때, 유가면 쌍계동 곽재훈씨 가족이 이곳으로 피난했다. 어머니는 예전에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와 네 아들(결, 청, 형, 호)이 동굴에 숨었다. 왜적이 다가왔을 때 평소 해소병을 앓던 아버지가 기침했다. 아버지를 살리려고 장남이 굴 밖으로 나와 참살되었다. 아버지가 또 기침해서 차남이 죽었다. 아버지의 기침은 멈추지를 않아 다시 삼남이 목숨을 잃었고, 끝내는 막내아들까지 비명에 죽고 말았다.

그러고도 아버지는 기침을 멈추지 못해 결국 왜군에게 잡혔다. 사정을 알게 된 왜군들은 노인의 등에 ‘四孝子之父’(네 효자의 아버지)를 써 붙여 다른 왜군이 노인을 죽이지 않도록 했다. 그 일 이후 사람들은 이 굴을 사효굴이라 불렀다.

▲대구 달성 비슬산사 효굴 입구

아이들과 함께 온 비슬산 답사라면 ‘빨간 마후라’ 기념관과 사효굴은 꼭 가보아야 한다. 밥만 먹고 하산한다면 교육적이지 못하다. 세계적 천연기념물인 암괴류, 엄청난 고위평탄면, 보기 드문 참꽃 군락, 일연 스님의 정취가 깃든 유가사, ‘빨간 마후라’와 네 명의 효자가 ‘살아 있는’ 비슬산, 과연 대구를 대표할 만한 ‘명품’ 답사지라 상찬하고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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