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감독의 로망과 알렉스 퍼거슨

네이키드 조창의 병맛 축구 (3)
뉴스일자: 2013년05월25일 03시10분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 출처=맨유 공식홈페이지

2011년 여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저브팀 경기장에 꽤 흥미로운 장면이 포착됐다. 전 에버튼의 감독이자, 퍼거슨의 후임으로 맨유의 감독에 임명된 데이비드 모예스(Daveid Moyes)가 온 것이다. 한국 축구팬들도 그가 수첩을 들고, 선수를 관찰하는 모습을 담은 ‘짤’을 어렵지 않게 봤을 테다. 언론에 따르면, 그가 그 경기를 보러 온 이유는 선수를 물색하기 위함이었다. EPL의 터줏대감인 에버튼이지만, 이적 자금이 워낙 부족해 다른 팀의 리저브 선수들을 물색하며 싼 선수를 찾아다녔던 것이다. 리저브의 어린 선수들은 실력이 있더라도 검증되지 않아 가격이 싸니깐.

뭐. ‘악의 팀’과 그 팀의 새로운 지도자의 인연을 강조하고 싶어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고 싶은 건, 축구에서 매니저(manager)와 코치(coach)의 차이를 꺼내기 위해서다. 둘 다 한국에서는 ‘감독’으로 번역되지만, 엄연히 둘은 다른 개념이다. 영국 축구에서는 주로 매니저라는 직책이 쓰이고, 스페인에서는 주로 코치라는 직책이 쓰인다. 다시 말해, 아스날의 아르센 웽거나 맨유의 전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에게 붙는 직책이 매니저라면 레알마드리드의 무리뉴에게 붙는 직책은 코치다. 한국에선 그 개념의 구분이 잘 안 돼 있을 뿐이다. 쨌든 한국의 감독과 코치 관계로 헷갈리지 말자!

영국은 매니저, 스페인은 코치

이를 구분해서 쓰는 이유는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의 매니저는 선수 선발과 전술을 짜는 것에다 선수의 영입과 계약, 리저브팀과 유스팀의 컨트롤타워 역할까지 총괄하는 개념이다. 거의 CEO에 가깝다. 주식 지분은 없지만 거의 전권을 위임받는다. 반면 스페인 형의 코치는 1군 팀의 전술적인 부분으로 그 역할이 제한된다. 선수 영입에 대해서는 구단에 요구할 수 있지만, 사주느냐 마느냐를 결정하지 못한다. 선수의 영입과 계약은 단장(director)이 맡는다. 아까 CEO를 꺼내썼으니, 이를 스페인식을 비교하면 COO(최고운영책임자)와 CFO(최고재무책임자)로 나뉘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깐 지난해 여름, 레알마드리드의 모드리치 영입은 무리뉴의 작품이 아니라 단장(사실상은 회장)의 작품이고, 맨유의 반 페르시 영입은 총괄지휘를 퍼거슨이 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매니저는 ‘이혼제조기’라 불리는 3대 악마의 게임 FM(Football Manager)의 매니저랑 같다. 축구 클럽 관련 대부분의 일의 최고책임자다. (영국에서도 첼시, 토트넘같은 팀의 감독은 매니저보다 코치에 가깝다)

쨌든, 처음에 썼던 모예스의 사례는 영국 축구에서의 매니저의 역할을 보여준다. 구단에 돈이 없으면 감독이 저렇게라도 발품을 팔아, 싸고 쓸 만한 선수를 물색해야 한다. 무려 모예스의 안구에 습기 차는 에버튼 시절에는 선수 이적 자금이 너무 없어, 모예스가 ‘유로밀리언’복권을 사던 장면이 잡히기도 했다. 매니저란 그런 존재이다. 만약 스페인의 클럽의 경우라면, 모예스 대신 스카우트들이 그 자리에 앉아있었을 것이다. 

스타일 축구를 만드는 매니저 시스템

매니저는 축구 감독들의 로망이다. 비록 자기가 고른 선수들로 최고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 또 2군 선수들뿐 아니라 리저브 선수들까지 자신의 입맛에 맞게 키울 수도 있다. 감독으로써는 거의 꿈과 같다. 현 첼시의 감독 라파엘 베니테즈는 2004년 리버풀로 팀을 옮겼다. 발렌시아의 ‘코치’로 레알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꺾고 프리메라리가 우승 2회를 했으며, 바로 그 전 해에는 UEFA컵 트로피를 들기도 했던 그다. 그가 리버풀로 옮긴 이유를 들어보자. “소파를 사달라고 했는데 스텐드를 사주더라”. 썩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그 맥락은 대충 알만하다. 원하는 선수로 팀 구성을 하고 싶지만, 단장들은 코치의 말을 정확히 반영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장은 기본적으로 ‘비지니스맨’이다. 그 선수가 팀 전술에 얼마나 어울릴 지보다, 선수를 다시 파는 가격(resale)까지 고려한다. 코치가 원하는 선수라면 실패했을시 그 위험부담이 훨씬 커지는 것이다. 결국, 라파엘 베니테즈는 리버풀의 ‘매니저’로 자리를 옮겼고, 1990년대 이후 리버풀 부활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감독으로 기록돼 있다.

나도 거들어서 띄워 주고 싶지 않은, 퍼거슨 영감이 27년 동안 집권한 배경의 핵심 중의 핵심 역시 ‘매니저 시스템’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왕조’를 열 수 있는 조건이 ‘유망주의 동시다발적 폭발’이라는 평이 많다. 맨유의 90년대 황금세대가 대표적 예다. 스콜스, 긱스, 베컴, 네빌 형제 등이 터져주니 몇 년간의 건드릴 수 없는 ‘왕조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유망주 발굴은 매니저 시스템과 관련이 높다. 괜히 퍼거슨과 웽거가 유망주 발굴에 뛰어났던 게 아니다. 매니저 시스템으로 어린 선수들을 지속해서 관리할 수 있었고, 그에 맞는 코치를 선임할 수 있었다. 어린 선수들은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로 성장했고, 누구보다 빨리 1군 팀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아스날의 파브레가스, 윌셔와 같은 선수들도 대표적인 ‘매니저 시스템’의 수혜자로 볼 수 있다.

팬들의 처지에서 봐도 ‘매니저’ 시스템은 매력적이다. 매니저란 한 인간은 곧 그 팀이자, 철학이자, 역사가 된다. 아르센 웽거를 예로 들어보자. 아스날은 곧 웽거 그 자체다. 그의 유명한 말 중 하나는 “나의 꿈은 수많은 타이틀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가 그라운드 위에서 단 5분이라도 지속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철학은 현재 아름다운 축구를 하려 노력할 뿐, 골을 넣는다거나 타이틀을 따는데 별로 관심 없는, 아스날 축구의 지향점 그 자체를 보여준다. 팬들은 그에게 이적료를 많이 쓰지 않아 우승을 못한다고 혀를 차면서도, 웽거의 경제적인 지출에 자부심을 느낀다. 또한, 비교적 마른 선수들로 빠르고 세밀하고 기술적인 아스날 축구스타일 그 자체를 소비한다. 웽거가 아니라면 그 누구가 아스날에 이런 ‘스타일’을 입힐 수 있을까. 웽거가 ‘코치’의 역할만 맡았다면 아스날 ‘스타일’이 나올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퍼거슨의 맨유 역시 마찬가지다. 맨유의 가장 큰 장점은 좋게 말하면 위닝멘탈리티고, 그냥 말하면, 관대함 하나 없는 이기는 것밖에 생각 안 한다는 점이다. 맨유는 중하위권 팀과 동점이나 지고 있는 상태로 후반 70분이 넘어가면 파상공세를 시작한다. 강등권 팀이 경기를 잘했으면, 박수라도 받게끔 해줘야 하는데, 맨유는 그런 자비가 없다. 그냥 학교 일진이 약한 애 괴롭히듯이 패널티 박스를 둘러싸고 두들겨 팬다. 추측건대, 이는 퍼거슨 감독의 성격이 잘 녹아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그는 선수들 면전에서 헤어드라이기의 바람이 나오듯 소리치고 화내는 것은 물론, 베컴에게 축구화를 걷어차 눈두덩이가 찢어지게 하는 행위를 꺼리지 않는다. 승리라는 목표에 멀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의 성향과 비슷하게 선수단도 기술과 실력이 떨어져도 어떻게 해서든 좋은 결과를 쥐어짜 내는 모습이다.

위험부담을 줄이려는 코치시스템

하지만 최근 이 매니저 시스템에 변화가 보인다. 클럽에 대규모의 컨소시엄이나 비즈니스맨과 같은 자본들이 유입되면서다. 대표적인 예가 리버풀. 미국인 존 헨리의 팬웨이스포츠그룹( FSG, Fenway Sports Group)이 2010년 10월 인수했다. 팬웨이스포츠그룹은 존 헨리, 톰 워너, 더뉴욕타임스컴패니(The New York Times Company)가 합작해 만든 회사로, 미국 메이저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 팀을 보유하고 있다. FSG는 첫 2년 정도는 축구계 발을 들여놓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본격적인 클럽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 시즌 시작에 앞서, 클럽 레전드인 케니 달글리쉬를 경질하고부터 전체적인 시스템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단추로 ‘매니저 시스템’을 해체하려 시도한다.

‘매니저’직책을 ‘코치’로 바꾸고 그 위에 ‘스포팅 디렉터(Sporting Director)’란 직책에 무게를 싣는 형태다. 스포팅 디렉터란 현재 지네딘 지단이 레알마드리드에서 맡은 역할이다. ‘고문’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클럽의 축구 전반에 걸친 철학과 방향, 또 그에 맞는 선수 영입과 협상 등을 총괄하는 직책이다. FSG의 구상은 레알 마드리드보다 스포팅 디렉터를 더욱 강화시키는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스포팅 디렉터를 통해 큰 그림을 그리고, 그 밑에 선수단의 전술을 완성하는 코치와 협상을 담당하는 이사, 통계를 담당하는 이사를 둬 구단을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FSG가 보기엔 스페인식 모델인 ‘코치-단장’체제가 이윤을 유지하는 데 안정적이다. 매니저 한 명이 실패했을 때의 위험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가령 리버풀은 케니 달글리쉬 시절 3500만 파운드(현재 환율로 590억)에 뉴캐슬로부터 앤디 캐롤을 영입했지만, 브랜든 로저스로 매니저가 바뀌자 그는 임대형식으로 웨스트햄으로 떠나게 된다. FSG 입장에서는 3500만 파운드의 본전은커녕 절반도 회수하지 못한 상황에 부닥쳐진 것이다. 반면 단장체제는 그런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 책임 분담이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FSG의 스포팅 디렉터는 ‘코치-단장’체제의 진화형이다. FSG의 눈으로 보더라도, 맨유나 아스날, 바르셀로나와 같이 클럽만의 고유한 스타일이 있는 팀이 매력적이고 인기가 좋다. 그래서 스포팅 디렉터를 통해 구단의 장기적인 비전과 철학을 그리고, 그 아래 코치와 디렉터를 두는 형태로 만든 것이다. 
 
그 로망의 정점, 알렉스 퍼거슨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 출처=맨유 공식홈페이지

FSG의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유능한 감독들이 모두 스포팅 디렉터 밑에서 일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흐름이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지 않다. 대규모 자본들이 계속해서 축구 클럽을 인수하고 있으며, 그 자본들은 속성상 위험부담(risk)을 관리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들은 더는 ‘매니저’를 용납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코치’에서 매우 전문적인 이들을 선호할 것이다. 맨유 역시 모예스를 매니저로 영입했으나, 그 결과 신통치 않다면 또 어떻게 변화할지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렉스 퍼거슨의 퇴장은, 감독들의 로망인 ‘매니저 시스템’의 정점이었기에, 더이상 축구 역사상 ‘클럽보다 큰 인물’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아쉽다. 그 어떤 명장이 오더라도 알렉스 퍼거슨과 같이 과감한 결단을 내릴 권한을 가질 수 없을 것이며, 감독 자신의 존재감을 클럽 곳곳에 뿌리내리지 못할 것이다. 노숙인 출신인 축구 선수인 베베를 700만 파운드에 영입하는 뻘짓도 볼 수 없을 것이며,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을 2800만 파운드에 데려오거나 중국인 덩팡저우를 영입하는 일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리그 최고의 공격수 반 니스텔루이를 사온 가격보다 싸게 파는 거래도 없을 것이며, 벤치에 앉아만 있어도 급료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올 데이비드 베컴을, 본인 성질난다고 이적시키는 일을 하면서도 27년 동안 한 팀의 감독을 맡는 일은, 더는 이 축구계에서 볼 수 없을 것이다. 알렉스 퍼거슨은 어쩌면 축구 역사상 매니저의 로맨스의 정점을 찍은 인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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