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일기](2)“지구” 없는 ‘지구의 날’을 염려하며

‘친환경’과 ‘무공해’ 뒤에 숨은 전력낭비, 축제의 사업화
뉴스일자: 2013년04월29일 13시05분

하루 일을 마치고 나니 벌써 밤 9시. 늦은 저녁을 먹으러 식당을 찾습니다. 이 시간까지 열려있는 곳이야 뻔해서 그냥 보리밥을 먹기로 합니다. 식당에 들어서니 벌써 10시, 밥만 먹기 아쉬워 막걸리를 한 병 시킵니다. 밥과 반주를 허겁지겁 먹다가 배가 불러 고개를 들자 그제야 TV가 눈에 들어옵니다.

대구경북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뉴스가 나옵니다. 엉터리로 만든 보가 부서지고 주변 농지가 침수되어 농작물이 썩어버리는 피해가 발생했답니다. 괜한 사람을 위한다며 자연에 엉터리 성형수술을 하다가 생기는 부작용들입니다. 막걸리 때문인지 뉴스 때문인지 모를 우울함에 문득 이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지구를 망쳐 놓은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산에다 도로를 뚫겠다며 지구는 동의하지도 않은 피어싱을 뚫고, 자동차와 산업공해로 원치 않는 간접흡연을, 폐수와 기름을 매일같이 혈관에 들이붓고, 핵발전소, 핵쓰레기 따위의 암 덩어리를 온몸에 퍼뜨리는 폭력이 매일 뉴스에 소개됩니다. 엘니뇨현상, 해수면 상승 같은 일들이 어쩌면 이런 폭력에 못 이긴 지구의 자살시도는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런 폭력적인 인간들에게도 양심은 있는지 지구라는 하나의 생명체 위에서 살아가는 지구인들이 지구를 위로하고 조금이나마 폭력을 줄여보고자 만든 날이 있습니다. 매년 4월 22일이 되면 전 지구적으로 기념되는 ‘지구의 날’이죠. 서두가 길었습니다. 이번 녹색일기의 주제는 지구의 날입니다.

‘지구의 날’,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레이건의 반환경정책 반대하는 운동 일환으로 확대

지구의 날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그저 ‘지구를 위한 날’ 정도로 알고 있을 분들을 위해서 조금만 설명을 해보자면, 지구의 날의 효시는 1969년의 캘리포니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69년 1월 28일 캘리포니아 주 산타 바바라 인근에서 미국 정유 회사 유니온 오일사가 폭발물을 이용해 시추 작업을 하던 중 시추 시설 파열로 갈라진 틈에서 원유 약 10만 배럴이 쏟아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태안반도에서 경유선이 좌초하면서 쏟아져 나온 기름이 약 8만 배럴(1만 2,547㎘)이니, 그보다도 25%나 더 유출된 셈!

이를 계기로 1970년, 미국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이 지구의 날을 만들 것을 선언하고, 당시 하버드생이던 데니스 헤이즈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첫 번째 지구의 날 행사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경제성장이라는 패러다임에 밀려 근 20년 동안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일까요? 당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의 반환경적인 정책이 지속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민간주도적인 움직임과 각국의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에 힘입어 1990년, 미국본부의 제안으로 세계적인(100여개국, 500여 단체) 지구의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한국 역시 1990년 미국본부의 제안으로 공해추방운동협회, YMCA, YWCA,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한살림모임 등 6개 단체가 지구의 날 행사를 주최하게 되었고 이후, 매년 4월 22일 민간환경단체의 주관으로 지구의 날 기념행사가 개최되어 왔습니다.

대구서 열린 지구의 날 축제

올해 대구 지구의 날 행사는 주말을 이용하기 위해 4월 22일이 아닌 21일에 열렸습니다. 이번 지구의 날 행사에는 저도 대구녹색소비자연대(녹소연) 상근자로서 녹소연 부스, 올레걷기 행사 진행을 위해 참가했습니다. 올해 행사에는 녹소연뿐만이 아니라 녹색 교통, 문화, 건강 경제, 에너지 분야로 나뉘어 100여개 단체가 참여했습니다.

▲ '장보러 올레'를 시작하며 [사진=이형석]

축제는 당일 오전 00시부터 시작된 차 없는 거리에서의 캠핑과 버스킹공연, 스윙댄스타임까지 저에너지 소비적인 놀이에 이어 11시부터 시작된 지구의 날 기념식과 아트바이크, 자전거, 걷기가 어우러진 녹색대행진, 그리고 이어진 시민참여 프로그램들과 공연으로 채워졌습니다.

녹색대행진 행사에서는 걷는 사람, ‘녹색스러운’ 교통수단을 이용한 사람들 등 엄청난 인파가 모여 함께 동성로와 중앙로를 행진했습니다. 자전거대행진 행사에서는 대구의 모든 자전거 라이더들이 다 모인 듯 많은 이가 함께 자전거를 끌고, 타고 행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녹색대행진을 마치고서는 대구올레팀의 대구올레 함께걷기 ‘장보러 올레’를 진행했습니다. 대구 도심의 기원인 서문시장을 목적지로 서문시장에 얽힌 3.1만세운동 이야기, 대구역사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서문시장에 도착. 각자가 미리 준비했던 용돈으로 장도 보고 지구의 날과 관련된 인증사진을 찍어 경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장 생태계를 파괴하고 사용인구대비 에너지 효율면에서도 크게 효율적이지 않은 대형마트에 비해 시장이 얼마나 다채롭고 재미있는 곳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별로 기쁘진 않습니다만, 대구시장도 이 프로그램을 보고 칭찬했다는 후일담입니다. 이 기회를 발판삼아 시장살리기 프로젝트라도 해봐야겠습니다.

‘장보러 올레’를 마친 후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른 부스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는데요. 자전거 용품을 벼룩시장 형태로 사고팔기도 했고, 동물권에 대한 운동을 하는 단체, 재활용품을 활용한 작품들, 모종 만들어 심어보기, 천연화장품, 반아토피 캠페인, 재활용품 벼룩시장 등 ‘다채롭다’라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다양한 활동이 소개 및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지구”는 없고, 생색내기 사업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지난해 지구의 날 행사에 4대강 자전거길을 달리는 행사를 떡하니 편입시켜 4대강 사업이 친환경적인양 포장하려던 계획에 반대하던 대구의 환경운동단체들이 빠진 틈을 메우지 않은 채 진행된 축제였고, 녹색대행진 또한 형형색색 패션을 뽐내던 시장이 사진을 찍은 후 대열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과연 지구의 날이 누구를 위한 행사 인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 지난 21일 열린 대구 지구의 날 행사에 김범일 대구시장, 우동기 대구교육감,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또, 모든 행사를 진행하는데 있어 그저 ‘친환경’과 ‘무공해’라는 것을 표방했을 뿐 큰 무대를 뒷받침하던 많은 장비와 행사장을 오가던 행사차량, 지구의 날 취지에 부합하는지 의아스러운 사회적 기업 부스의 향연은 진정한 지구의 날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행사는 없고, 지구의 날이 점점 생색내기식 사업으로 변질되어 “지구”를 돌아보기는 힘든 ‘지구의 날’이 되어 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행사가 커지면서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친환경 의제를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생각이 없습니다만,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쓰레기가 남발되는 체험행사 위주의 일회성 기획이 주가 되는 자리가 과연 지구를 위한 행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전기를 쓰지 않고 통기타와 목소리만으로 공연을 할 수 있었다면, 좋은 자전거 한 대를 중앙파출소에서 중앙로 네거리까지 타고 가며 사진찍기를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았다면? 대구 환경단체들과 지구의 날 목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그것에 걸맞은 좀 더 섬세한 접근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1970년 처음 시작된 지구의 날 행사는 그렇게 크지 않은 작은 축제였다고 합니다. 대구에서도  지구의 날 행사를 처음 시작했던 초기에는 이렇게 덩치가 큰 행사이기보다는 도로를 시민에게 내어줌으로써 땅과 길이 자동차의 것이 아닐 때에 얼마나 자유로운 일들이 가능한지를, 그리고 이런 일들이 지구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행사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부디 내년에는 이렇게 큰 행사가 아니더라도 인간이 저지른 폭력으로 지구가 품고 있을 고통을 해소하고, 더 소중한 가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나아가서는 큰 행사라 할지라도 지구를 위한 좀 더 섬세한 접근을 할 수 있는 행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 이형석 대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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